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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21. 2019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with 고양이 여행 리포트

난 지갑을 잘 잃어버린다. 앗, 핸드폰도 잘 잃어버린다. 아니. 진짜 정확히 말하면, 모든 물건들을 다 잘 잃어버린다. 그래서 지갑에 메모지를 남겨 놓았다. "제 지갑을 찾아주시면, 꼭 사례하겠습니다! 010-****-****"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것 같은 공간들을 모조리 찾아간다. 경찰을 동원해 CCTV까지 돌려봤다. 구구절절 내 지갑의 소중함을 경찰에게 말한다. 가게 주인들에게도 전한다.


"정말 제 소중한 지갑인데.. 찾으면 꼭 전화 주세요!"


혹시나 몰라, 중고카페까지 뒤적거리며 내 지갑이 올라오지 않았나 확인하지만 흔적 하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친구가 새 지갑을 선물해줬다.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또 잃어버렸다. 그곳엔 내 번호도 적히지 않았고, 이전처럼 메모도 넣어놓지 않았다.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도 걸지 않았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 날 탔던 택시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는데,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래 다 끝났어. 내가 이렇지 뭐.' 발 닦고, 잠이나 자려던 찰나 전화가 온다. 띠링. 택시 아저씨였다. "**파출소에 맡겨놨으니 찾아가요."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을 뿐인데 누군가가 자꾸만 내 앞에 나타나는 건, 우연일까. 아니면 인연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별 것 아닌 것에 의미 부여하는 걸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나나'. 사람들이 움직이는 작은 소리에도 경계 가득한 눈빛을 한 채, 어두컴컴한 곳으로 잽싸게 숨어버린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만 반짝이는, 깜깜한 밤 어느 날, 나나는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리에서 뼈가 나왔던 그때, 나나가 떠올렸던 한 사람. 간간이 자신에게 간식을 주었던 '사토루'. 그에게 나나의 마음이 전혀 졌던 걸까.  때마침 그는 나나를 발견했고,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그는 나나에게 자신이 아닌, 새로운 집사를 만들어주려 했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신뢰감을 얻은 친구들, 그리고 그의 가족까지. 평생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사람들과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만 가고 돌고 돌아 다시, 나나는 '사토루'와 만난다. 나나와 사토루는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었던 농촌을 보았고, 바다를 보았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끝났을 풍경들을. 어쩌면, 인연이었던 사토루와 함께.


나나야. 너는 어떤 풍경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니? /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갖은 노력을 해도 절대 돌아오지 않는 내 지갑처럼, 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눈 앞에 나타나는 지갑처럼. 좋은 집사를 찾으려 방방곡곡 다녀도, 결국엔 '나나'에게는 '사토루'인 것처럼.


정말 너와 내가 인연이라면, 너와 내 사이의 모든 공기들을 모여 우연이 될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때 보는 우리의 풍경은 지금 보았던 농촌과 바다여도 좋고, 산이어도, 하늘이어도, 아니 그냥 시원한 바람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냥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그 공기는 분명, 여느 때와는 다를 게 틀림없어.


어느 풍경이든 상관없어. 너와 함께라면 /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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