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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26. 2019

진부한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때

with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월화수목금. 평일은 언제나처럼 내 예상대로 흐른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언젠가부터 그 오차 없는 하루하루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뭐랄까. 초등학교 때 내 일기장 같달까. '오늘은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갔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어서 집에 와서 숙제를 했다. 다 끝내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날씨로 시작해서 '참 재미있었다'로 끝나는 내 초딩 때의 일상. 20년이 흐른 뒤, 정확히 학교에서 회사로 바뀌었다. 아,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 '참 재미있었다'가 '참 고된 하루였다'로 끝났다는 것.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 일기를. 재미있게 끝내고 싶었다. 다시 20년 뒤로 시계를 돌려서. 나에게 재밌는 장치들을 일상 곳곳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시사회의 날이 왔다. 시사회 참석이 정해진 2주 전부터 내 마음은 두근거린다. 영화 후기를 써야 하기에 정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영화들만 꼼꼼히 선정한다. 정확히 그 기준을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에 이입할 수 있는지' 몰입할 준비를 2주간 하는 거다. 


그리고 퇴근 1시간 전, 갑작스러운 업무 마비가 걸려버렸다. 역시나 일할 사람은 나밖에 없죠? 마음은 급하고 쳐내야 할 일들은 순식간에 산더미. '대체 왜 퇴근 하기 일보직전에 이런 브레이크가 걸리는 거야. 대체 왜???' 속으로 외쳤다. '나... 어떡해' (꼭 속으로 외친다.)

 Q: "아직도 모험을 즐기시나요?" A: "그럼요" / 영화 알랭 뒤카스

회사에서 영화관까지 30분, 그리고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1초 만에 차오른 나의 '화' 울그락 불그락 전에 보이지 않았던 초인의 힘을 빌어 그 날에 꼭! 해야 할 일을 메일로 보내고서도 도저히 그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왜 하필 오늘이야. 오늘은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의 시사회인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드는 생각 하나.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거지?'


영화 시작 10분 후,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기다렸던 시사회였는데, 생각만 많아졌던 회사에서의 하루가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저녁에도 습도 가득했고 이마에도 등에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면서 나는 무엇을 쫓기 위해 이렇게 코엑스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영화를 보러 온 걸까.라는 생각이 스크린 속에 둥둥 떠다녔다. 


"전 정치는 안 해요. 제 신념이에요" / 영화 알랭 뒤카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보이는 열정이 오늘 하루 내 힘들었던 하루를 잊게 해 주었다. 베르사유 궁전 안에 그가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또, 프랑스 요리의 거장으로 이미 정상에 올랐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그의 모습에. 그의 생각과 말에.


"난, 아직 맛보지 못한 맛을 찾을 거예요."

"한번 성공하면, 그 성공은 오래 지속되더라고요."

"스스로의 미식을 믿어. 그리고 너를 믿어."


그리고 오늘 내 물음. '내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있지?'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오늘 힘들다면 조금 더 힘들다가, 또 나아질 거예요. 그건 정말 분명해요."


"오늘 힘들다면 조금 더 힘들다가, 또 나아질 거예요. 그건 정말 분명해요" / 영화 알랭 뒤카스


너무도 진부한 말일 수도 있는 그 문장이, 그날 내 마음속에 가장 위안이 되었다. 다시 나아질 거라는 말. 괜찮아질 거라는 말. 서로가 처해있는 상황이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가 알랭 뒤카스처럼 이미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내가 위안받았던 그 한 마디는 "괜찮아"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너무도 싫어하는 나의 일기장을 '참 재미있었다'로 바꾸어 준 그 문장. "다시 나아질 거예요. 괜찮아요."


오늘, 내가 만났던 영화는 이거 하나면 됐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준 것 하나면. 그만이다.  그리고 진부한 그 진실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어쩌면 그 한마디가, 오늘 내 일기장의 마지막 문장을 '참 재밌었다'로 만들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영화 <알랭 뒤카스:위대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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