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Dec 18. 2021

마음의 속도

잘가, 2021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이 질문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꼭 한 번씩은 듣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돌리고 싶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지금이 좋다고. 그때의 나는 할 만큼 했다고. 그때의 나로서는 할만큼 했기 때문에 10년 전보다 5년 전이, 5년 전보다는 1년 전이, 1년 전보다는 어제가, 오늘이 내게는 더 값지고 소중하다. 과거의 나는 과거의 나대로, 현재의 나는 또 현재의 내 모습대로 각각의 빛나고 지점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 것 몇 가지.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려면 지금의 내 선에서 해볼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의 내 모습과, 너의 모습, 현재를 잘 기록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힘이 필요할 때, 그것들을 꺼내보는 거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도록.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사진일 수도, 영상일 수도, 물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때의 감정이 담긴 글이다.

그때의, 지금의 '최선' / 영화 어바웃타임

기록을 하고 나서부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 몇 년 간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글 쓰는 시간 만큼은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 기분이 그냥 좋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내 생각을 내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있거나 아니, 여럿이 있을 때에도 종종 내 머릿속은 지구 밖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글 쓸 때 만큼은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래, 내 나름대로 괜찮게 살고 있구나'생각이 든다. 학교만 다니지 않았구나. 회사만 다니지 않았구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글쓰기는 내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힘들었지만, 그 힘듦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게 내 삶은 변한다.


좋았던 하루가 있으면, 슬펐던 하루도 있었을 것이다.

그 슬펐던 하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하루에 집중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명암은 함께 하니까.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록, 그 한 소절 / 영화 패터슨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안갯속에 허우적대던 내가 조금 더 선명히 보인다. 아~ 나는 정말 야근을 못 견뎌 하는 구나..(이건 누구나 하는 생각인가..?) 내 방에서 에너지를 쌓는 사람이구나. 귀여운 걸 잘 보는 사람이구나. 사소한 거에 쉽게 감동하기도, 또 사소한 거에 쉽게 울적해지기도, 이렇게 작은 것들을 잘 발견해서, 잘 느껴서  결국에는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구나. 생각의 확장이 결국 지구는 하나로 만들 기세다..이게 나구나.. :) 미우나 고우나 평생 함께해야할 나구나.


평생을 함께해야할 나라면, 내가 나를 존중해야지.

내 마음을 부정하지 말아야지.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지.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어서

어느 순간 푸릇푸릇 한 봄의 정원이 겨울을 지날 때에도

내가 나에게 물을 주어

다시 나만의 정원을 잘 가꾸어야지.


그 정원을 잘 가꾸는 방법을 시간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그 시간을 새로운 경험들로 채우는 것이다.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힘들었던 기억으로 성장한 과정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게 슬픈 감정이 몰려올 때, 나는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한 해를 보낼 때마다, 하루를 보낼 때마다 그 방법은 조금 더 세밀하고, 조금 더 깊이 있게 가득 채워질 것이다. 누군가가 와서 정원의 꽃을 몇 송이 꺾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꽃피울 수 있도록. 그 꽃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괜찮으니.

우리에게 틀린 감정이란 없다. 다른 감정만이 있을 뿐/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2021년, 사소하지만 특별했던 하루하루들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항상 만날 때마다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 주셨던 외할머니가 내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그날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어느 날 조카의 얼굴을 보고 힘듦이 바로 씻겨내려갔던 날에, 쿠사마 야요이 작품이 특별하게 와닿았을 때에, 내 경험과 생각들이 담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던 독자의 편지를 읽으며 집으로 돌아왔던 그 길에서, 내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그 영상물을 처음 봤던 그 새벽 어느 날에. 그 하루하루를, 그날의 내 마음의 온도를 잘 기록해두어야지.


그리고 2021년 새롭게 알게된 나의 모습: 크로와상 좋아, 힐 보다는 운동화가, 편한 옷이 좋아. 이성적인 사람도 함께 하면 좋아. 요가 보다는 필라테스가 좋아.  칼퇴/고양이/강아지/애기 는 항상 좋아! 그리고 자연스레 옮겨지는 타인의 취향.


작가의 이전글 진부한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