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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카페인 Nov 03. 2022

에세이 만드는 법_이연실

읽는 습관


제목 : 에세이 쓰는 법 _ 이연실 (유유출판사) 

서점 : 무슨서점 (연남동)

구매일: 2022.10.27




- 흔히 도서기획안을 작성할 때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한다고들 말하는 항목이 있다. 바로 '타깃 독자'다. 그러나 나는 에세이 기획서에서 이 항목을 생략한다. 분명 출간 초반부터 이 책을 구매해 줄 '예비 독자'는 있겠으나, 나는 에세이의 타깃 독자는 결국 대중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에세이 편집자는 관련 주제나 작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관심도 없는 미지의 독자에게 '적어도 이 책 속엔 당신 꽤 흥미로워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방범을 찍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줄곧 믿었다. 책의 가능성과 경계를 한정 짓지 않는 것,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것은 에세이 편집자의 재미이자 특권이다. 


- 지금의 나는 어떤 원고가 확실히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저자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순 있다. 나는 2천 부가 나갈 책이라면 3천 부로, 3천 부 나갈 책이라면 5천 부로, 5천 부 책은 1만 부로, 5만 부 판매가 예상되는 책은 10만 부로 독자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더 많은 대중 독자에게 가닿는 길을 상상하는 사람이라고. 


- 나는 '최고의 마케터는 결국 그 책'이라는 출판 시장의 오랜 잠언을 믿는다. 


- "본인이 제안한 책 제목 가운데 이건 꽤 맘에 든다, 책의 운명을 조금은 돌려 놓았다고 생각하는 제목이 있나요?" 어찌 보면 난폭한 질문이다. '당신은 제목으로 책의 운명을 바꾼 적이 있는가'라니. 대체 그걸 누가 안단 말인가. 하지만 적어도 편집자 본인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책에 티끌만큼이라도 보탬이 됐다고 자부하는 제목이 편집 경력 중에 몇 개는 생겨야 한다.


- "내가 책을 만들어 보니까, 좋은 제목은 본문에 '숨어' 있더라. 제목을 억지로 '지어' 내려고 하지 말고, 원고를 천천히 다시 읽어 봐. 열심히, 잘 읽어 좋은 제목이 보일거야."


- 나는 책을 편집할 때 모든 영역과 순간에서 작가의 마음을 열심히 살핀다. 내가 좋아서 섭외하고 함께 작업한 작가가 나와 함께 만든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하고 오래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책은 읽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 전에 우리 스스로 간직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책의 주인공인 작가는 그래서 내게 언제나 모든 일의 1순위다. 


  - 에세이 편집자가 디자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태도는 아무 생각도, 의견도, 제안도 없는 것이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무색무취한 편집자는 저마다의 삶과 스타일이 녹아 있는 에세이의 겉모습을 무표정하게 만든다. 그런 편집자가 만든 에세이는 전체적인 꼴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딱히 구석구석 뜯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싫은 것, 불가능한 것, 심지어 디자인을 다시 헤야만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근거와 방향, 대안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편집자가 아름다운 이미지를 꿍쳐 둔 자신만의 갤러리 그리고 원고와 작가를 근거리에서 관찰하며 모아 둔 아이템은 바로 이런 순간에 당신을 도울 것이다. 


- 교정에는 정답이 있다. 출판사마다 띄어쓰기나 표기 규칙이 따로 있어서 원칙은 약간씩 다르지만, 한 출판사 내에서 합의된 표기 원칙에 따라 편집자가 대체로 정확히 맞춰야 하는 정답이 있고, 그 교정의 결과 값은 거의 동일해야 한다. 


- 교열은 비문과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을 가다듬는 작업이다. 이것은 편집자마다 다른 문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내가 갖는 원칙은 '정답'은 없되 '근거'는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누가 잠자던 편집자를 두드려 깨워서 '이 문장은 왜 이렇게 고쳤어요?' '왜 고쳐야만 했어요?'라고 묻는다 해도, 즉각 분명히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그냥 느낌상 더 잘 읽히지 않나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교열이다. 


- 윤문은 글에 '윤기'를 더해 주는 작업이다. 심심한 표현에 세부적인 묘사와 상황을 더해 주고 글이 매끄럽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표현을 보탠다. 이렇게 윤문 작업이 필요한 원고를 마주하면 나는 긴장한다. 사실 윤문은 어느 정도 편집자의 주관에 기댈 수밖에 없고 나의 윤문이 적절한지 과도한지도 명확히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같은 제안이라고 할지라도 저자에게 '이렇게 고치겠습니다' 통보하듯 남기는 것과 '이렇게 고쳐 보는 건 어떨까요? 더 좋은 표현은 없을까요?'라고 묻는 것은 매우 다르다. 저자에게 강요하거나 편집자가 함부로 확신하지 않고, 묻고 제안하고 선택지를 제시하고 더 나은 표현을 끌어내는 교정지가 결국 더 좋은 책을 만든다. 


- 유유출판사의 조성웅 대표님은 '저자는 최고의 마케터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여러모로 저자는 책의 조물주인 동시에 책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길잡이이다. 앞길이 막막할 땐 저지엑 물어보고 소통하면 많은 부분 새로운 아이디어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 에세이 보도자료는 이 원고가 출판계를 뒤흔들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다는 것을 주장하거나 웅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소소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는지를 최대한 살에 와닿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곁들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편집자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비평이나 추천사에 동원될 법한 무거운 어휘는 의식적으로 다 걷어 내고서 어깨에 힘을 빼고 마치 친한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에게 일어난 놀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듯이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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