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너란 녀석
나는 장기 여행을 좋아한다. 짧게는 1주, 길게는 6개월까지.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한 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여성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것.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되면 '월경'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짧게 여행을 떠나더라도 월경 예정일이 여행 일정과 겹친다면 여행지에서 월경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고, 길게 여행을 떠나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이 녀석을 피할 수는 없다.
최근 나는 5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떠났다.
30일 정도 순례길을 걸었고, 20일 정도를 스페인, 포르투갈, 몰타를 여행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많은 여성 순례객들이 의외로 궁금해하는 것이 '월경'에 관한 것이다.
순례길은 가장 많은 순례객들이 걷는 '프랑스길'이 기본적으로 30일 정도 소요된다.
그래서 이 길을 따라 걷는다면 월경을 한 번 정도는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다른 나라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 순례길을, 매일 걸어야 하고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기숙사 형태의 숙소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월경'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많이들 궁금해한다.
그래서 이 질문으로부터 여행이 나에게 준 무수히 많은 변화 중 하나, 나의 '월경 이야기'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첫 시작은 패드형.
한국 여성들은 첫 월경을 맞이하면 기본적으로 패드형이 시중에 가장 많이 판매되는 제품이기도 해, 패드로 월경을 대처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에 하루에 5~6개나 일회용 패드를 교체해야 하는 불편함, 내 피를 깔고 앉아 있어야 하는 찝찝함과 더불어 패드와 살이 맞붙는 감촉까지 전부 통틀어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중간에 월경통이 심해 면 패드도 몇 번 사용해 봤는데, 감촉과 월경통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매일 세탁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월경을 경험한 지 10년쯤 지나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미국에 있는 친구 가족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12월 연말을 미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월경 예정일과 일정이 겹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패드를 몇 개 정도 챙겨갔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적중.
준비해 온 패드는 몇 장 밖에 되지 않아 당연히 새로운 패드가 필요했고, 미국 마트에 친구와 함께 패드를 사러 들렀다.
여기서 나는 내 월경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 마트 매대에는 한국에서 잘 볼 수 없었던 탐폰이 다양한 종류와 브랜드를 자랑하며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평소에 탐폰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직접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망설였지만, 알 수 없는 감촉의 새로운 패드를 일주일 내내 착용하는 것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쉬워 보였다.
처음에는 내 몸 안으로 솜뭉치를 집어넣는다는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탐폰 박스에 설명도 자세히 나와있고 인터넷에 정보도 찾아보며 사용법을 익혔다.
처음 3~4개 정도를 버리고 나서는 탐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삽입형을 사용하니 처음으로 내 몸 안의 구조를 제대로 안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탐폰은 나의 여행을 바꿔주었다.
30개 일회용 패드의 부피와 무게가 내 여행 캐리어에서 빠졌다.
탐폰의 크기는 손가락 사이즈로 일회용 패드보다 부피가 작다.
피부와 접촉하는 면이 적은 탐폰은 감촉을 특별하게 따질 일이 없어 어떤 브랜드든 외국 마트에서 쉽게 구매 가능했다.
'삽입하기 편한 구조로 되어 있는가?'에 집중해서 구매하면 된다(*플라스틱 삽입 보조 기구가 달린 제품 추천).
무엇보다 탐폰의 좋은 점은 삽입형이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어떤 액티비티든 구애받지 않았다.
월경일이라도 탐폰을 착용하면 월경혈이 새는 부담도 줄어들고, 속옷에 부착되어 있는 일회용 패드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몸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 물속에 들어가는 활동 등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탐폰을 사용하면서 나를 늘 고민스럽게 했던 것은 '독성 쇼크 증후군(TSS)'이었다.
탐폰의 면이 몸 안 속에서 오랫동안 월경혈을 흡수한 채로 있는 경우, 탐폰에서 발생하는 균이 감염을 일으켜 쇼크가 오는 현상인데, 심한 경우에는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탐폰 또한 경제적 그리고 환경적인 면에서 일회용 패드와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 달에 약 2만 원의 지출, 30개 분량의 플라스틱, 비닐 등의 쓰레기 배출.
이런 고민을 안고 있던 찰나,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던 나에게 지인이 '월경컵'이라는 신문물을 소개해주었다.
나의 마지막 종착지.
월경컵이 한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이다. 하지만, 월경컵은 1930년대에 고안되어 벌써 약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도구이다.
자그마한 탐폰을 몸속에 넣는 것도 무서운데, 실리콘으로 만든 요구르트병 사이즈 정도의 컵을 몸 안에 삽입한다는 것은 이미 삽입형인 탐폰을 사용하고 있던 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월경컵'으로 전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건강 때문이었다.
월경컵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월경컵을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 월경컵 회사는 월경컵을 구매하면 월경컵 입문자를 위한 tmi를 공유해주기도 한다. 이런 정보들 덕분에 용기를 내어 월경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월경컵을 사용하고 나서 나의 일상생활은 물론 내 여행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월경 예정일이 여행 일정과 겹치더라도 탐폰이나 패드를 미리 구비하거나 현지에서 구매해야 할 경우에 대한 고민 없이, 월경컵 하나와 월경컵을 소독하는 컵 이렇게 두 개의 컵만을 준비하면 되었다.
내 여행 캐리어에서 부피와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여행 액티비티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았고, 말과 글이 통하지 않는 여행지의 마트에서 헤매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월경컵을 사용한 이후에 발리에서 6개월, 에스토니아에서 3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냈고,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도 월경컵 덕분에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걷는 순례길에서 중요한 것은 가방의 무게와 부피이다. 월경컵을 사용한다면 두 개의 컵만 가방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가방의 무게와 부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월경컵의 세척과 소독도 따뜻한 물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숙소에서 대부분 해결했고, 매일 5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 아침에 숙소에서 월경컵을 착용해 걷고 점심시간쯤에 다음 숙소에 도착해서 월경컵을 세척하고 재착용했다.
삽입형인 월경컵은 월경혈이 새는 경우가 흔치 않고, 걸을 때 패드처럼 피부에 이물감을 주거나 답답하지도 않아 평소와 다름없는 상태로 걸을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순례길을 걷기 전에 월경이 걱정되어 탐폰을 시도해 보려는 순례객도 있다. 탐폰과 월경컵을 둘 다 경험해 본 나로서는 '월경컵'을 더 추천한다.
여성이 탐폰이나 패드를 월경 때 사용한다면 생애 사용하는 탐폰 혹은 패드의 개수는 1만 2천 개 정도라고 한다. 비용적인 면에서도 생애 약 5백만 원 전후를 패드나 탐폰에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한 번 월경으로 사용하는 탐폰이나 패드의 개수를 30개 정도로 생각했을 때, 30개입 제품의 가격이 약 1~2만 원. 12달을 30년 정도 지속하는 경우)
쓰레기의 양을 생각해도 비용을 생각해도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월경컵의 경우 2년에 한 번 교체하면 되고 월경컵 한 개의 비용이 약 3만 원 대라고 생각했을 때, 생에 사용하는 월경컵은 약 15개, 비용은 50만 원 이하이다.
이렇게 탐폰이나 패드와 월경컵을 비교하니 수치적으로 환경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 월경컵이 소모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을 생각했을 때도 월경컵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져 있어 독성 쇼크 증후군이 나타나는 확률이 적고, 탐폰은 솜이 월경혈을 흡수하는 시스템이지만 월경컵은 월경혈을 컵에 받아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질 안에서 조이거나 이물질이 껴있다는 부담감을 적게 느껴, 내 몸에도 더 안전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주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경컵도 삽입형이기 때문에 월경통이 심할 때 느끼는 부담감과 위생 부분에서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점, 그리고 여행지에서 깨끗한 화장실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월경컵을 재삽입해야 할 때 난감한 점이 여전히 사용하면서 느끼는 단점이기도 하다.
그래도 월경컵 사용으로 인해 얻는 몸의 쾌적함과 안전, 활동성, 경제성, 환경친화적 측면은 내가 월경컵에 고착하게 된 이유이고, 덕분에 월경 예정일에 상관없이 일상처럼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일회용 패드가 90% 가까운 사용률을 보인다. 면 패드가 약 4%, 탐폰이 약 3%, 월경컵은 약 1~2%의 여성이 사용하고 있다.
미국 여성들은 6:4의 비율로 일회용 패드와 탐폰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이 녀석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화학 물질이 포함된 일회용 패드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여성 용품에 과도하게 부과되는 세금 pink tax,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사회.
나의 경우 여행이 월경을 대처하는 도구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좋은 계기였고, 여행으로 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직접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