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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Mar 11. 2023

[영화리뷰] 스즈메의 문단속

로드트립. 답은 늘 내 안에 있어요.

2011년 3월 11일. 나는 그때 멀리 큐슈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공강 시간에 점심을 먹으려고 잠시 기숙사에 돌아왔던 때,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면서 바닷가 발전소의 기둥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높이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 영화는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일본의 지진에 대해 다룬 영화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영화 감상평입니다.)



1.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 같다.

스즈메와 소타가 헤어져버리게 된 장면부터 몰입해서 보다 보니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스즈메와 소타의 첫 만남.


2. 일본 전역의 모습과 사투리. 큐슈에서 시코쿠, 혼슈까지. 혼슈에서는 코베에서 도쿄 그리고 센다이까지.

내가 대학교를 다녔던 오이타에서 멀지 않은 미야자키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일본 각지의 모습과 사투리를 충분히 담아낸다.  

한 지역의 모습이 아니라 일본의 다양한 지역을 보여주면서 각 지방의 아름다움을 담았고, 로드트립하는 느낌의 영화였다.

그리고 큐슈 지역의 사투리, 간사이 지방의 사투리, 동북 지역의 사투리 등이 나오면서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막으로도 전해지면 참 좋으련만.  


큰 도시만이 아닌 여러 도시들, 지역의 조그마한 도시들, 사라져 버린 마을들.

모두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가꾸었던 소중한 장소인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각 지역들은 큰 지진을 한 번씩 경험했던 도시라는 것이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해서 인상 깊었다.


3.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이번 영화의 특이한 점은 애니메이션 OST 뿐만 아니라 일반 가요들도 삽입되었다는 점이다.

코베의 스낵(술집)에서나 도쿄에서 센다이로 로드트립할 때의 차 안에서나.


이번 영화에서도 '너의 이름은'에서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던 노래를 부른 'RADWIMPS'가 음악 제작에 관여하였고, 주제곡도 무척 좋지만 스즈메의 모험 안에서 흘러나오는 일반 가요들은 일본의 70, 80년대에 유명했던 노래들로 스즈메의 마음과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는 찰떡과도 같은 곡들이 알맞게 장면마다 삽입되어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재미를 주고 있다.


체커스,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나 은하철도 999, 마녀 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음악들.


4. 아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영화 마지막 부분에 '소중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가지고 있었다.'라는 스즈메의 말이 인상 깊었다.


아픔이 있을 때 한국과 일본은 대처하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한국은 모든 아픔을 울고 소리 지르고 다 표현하고, 주위 사람들과 끊임없이 나누면서 서서히 치유해 간다.


일본은 아픔을 극복하는 힘을 내부에서 찾는다. 주위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옆에서 함께 해준다. 그러면서 조금씩 잊혀져 가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어느 것이 더 맞는지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아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보여준다.


결국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어린 스즈메의 아픔은 문을 통해 미래에서 온 스즈메가 어떻게 극복하는지 잘 알려주었고, 스즈메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모, 세리자와, 루미, 치카, 스즈메의 로드트립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은 그저 옆에서 그녀를 묵묵히 도와준다. 그들의 지원 덕분에 스즈메는 모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소타와 함께 요석을 제대로 박은 스즈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5. 그 장소의 추억들. 그리고 일본에서 겪은 지진들.

모교가 있던 오이타현 벳푸의 만. 파란 바다가 산 위에서 바로 보이던 곳.

스즈메의 고향 야마자키의 바닷가 풍경은 내 대학교가 있던 오이타의 벳푸만과 닮아 있어 추억이 몽글몽글 되살아 났다.

도쿄의 지진 뒷문이 있던 오챠노미즈는 도쿄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동네. 흐르는 강물과 주위의 벚꽃들, 강 위로 지나가는 지하철의 모습을 늘 좋아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1년 후 찾았던 이와테현 카마이시. 지진의 여파인 쓰나미로 인해 폐허가 된 잔재들이 쌓여있었다.

예전에 회사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입었던 지역 중 카마이시라는 도시에 자원봉사 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스즈메의 고향처럼 휑하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곳이 생각났다.


도쿄의 지진 뒷문이 있는 곳으로 나오는 장소, 오챠노미즈. 참 좋아했던 장소였는데, 영화에서 나와 반가웠다.

도쿄에서 살 때 지진은 참 자주 일어났었는데, 체감상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지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주일 때는 자주 일어났다. 도쿄에서 지진의 진동을 처음 느꼈을 때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터키의 지진에서 보듯 자연재해는 정말 한 순간에 사람의 환경을 바꾸어 놓는다.

일본은 지진이 덜 발생하고 더 발생하는 지역이 있을 뿐 전역이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다.

이제 한국에서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꽤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메와 소타가 지진의 뒷문을 닫을 때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재해가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또 그 위에 새로운 삶을 새울 것이다.


영화에서 나왔던 코베(오른쪽)와 내가 봤던 코베(왼쪽). 코베는 실제로 야경이 예쁜 항구 도시이다. 왼쪽 다리는 혼슈와 시코쿠를 잇는 다리 중 일부.
영화에서 나왔던 도쿄의 모습(왼쪽)과 내가 봤던 도쿄의 모습(오른쪽). 복잡한 도쿄의 모습을 잘 드러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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