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돌아간 2020년을 대강 기록해놓다.
1. 케바케란 말이 신조어로 등장했을 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사가 정말 case by case 아닌가? 그러다가 '사바사'가 등장했다. 와..이거야말로 대박이다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신조어를 창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싶었다.
1-(1).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원격수업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원격수업도 '학바학'이다. 학교 by 학교로 운영되는 실정이 2020학년도 원격수업이다.
1-(2). 어떤 학교는 전 교사에게 아이패드를 제공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업무용으로 제공하는 노트북은 원격수업 시, 학생들의 수업 중 태도 확인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화상 수업에서 카메라를 반드시 켜놓게 하는데 아이들이 간혹..원격수업 중에 자버리기 때문이다. 하품하고 눈 비비는 전조 증상도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원격수업 때 기본적으로 컴퓨터는 2대가 최소 필요하다.) 아이패드는 필기를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 꼭 필요하다. (기실 아이패드가 아니여도 '펜' 사용이 가능한 것이면 아주 좋다.) 그런데 이 학교는 전 교사에게 펜 사용이 가능한 매체를 제공했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1-(3). 내가 있던 교무실에서는 갑자기 언박싱 붐이 일었다. 다들 하나씩 기기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아이패드, 아이패드 에어, 아이패드 프로 등의 급을 IT에 무지몽매했던 나마저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기기를 구입한 선생님들은 원격수업 촬영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반면 학교에서 제공한 와콤 태블릿을 사용하며 원격수업을 준비한 선생님들은 필기가 원활하게 되지 않아 결국 사용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2. 아이들에게 한 학기동안 나와 어떤 공부를 하게 될지 계획을 안내하기가 용이했다. 교실 수업과는 다르게 원격 수업은 빠지는 날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쉬웠고, 진도 문제도 (교사 입장에서) 해결하기 쉬웠다. 갑자기 일어나는 사태가 학사 일정 속에 없으니(코로나로 인한 등교, 원격 주간의 재배치 문제를 제외하고) 내가 계획한 대로 수업 일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어 참 좋았다.
2-(1). 반면 업무 시간과 업무가 아닌 시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퇴근해서도 수업 촬영을 했었고, 편집도 했다. 학교에서 뭐 했냐는 질타가 있겠는데, 나는 담임이라 매 시간 우리반 출결 확인을 하고 수업 중에 출결 체크를 안한 못된 녀석들에게 전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요새 아이들이 전화 한 통이면 벌떡 일어나 수업에 참여할 줄 알겠지만, 그놈의 '무음' 으로 내 전화를 받기는 커녕,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라 교무실에 앉아 있는 나는 매 시간 열불이 터졌다. 학부모님께 도움 요청을 해도 직장인인 그 분들도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2-(2) 출결 문제로 담임 교사에게 욕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학급의 학부모님들께선 나를 믿어주셔서 감사하게 한 해를 보내고 있지만, 어떤 학급 학부모는 코로나 19와 관련된 출결 안내에 화를 내며 학교 행정에 대해 엄청난 언사를 일삼았다.
2-(3). 아무튼 이렇게 학교에서 다채롭게 살다가 집에서 수업 준비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인터넷을 켜놓고 있어 딴짓을 하게 마련인데 작년, 그렇게 교사들이 많은 욕을 먹는 기사들을 보며 의기소침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내 교무실 선생님들은 수업 편집 툴에 대해서 공유하고 어떤 어풀을 사용했을 때 촬영이 더 잘되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원격수업 준비를 다들 열심히 하시는데, 왜 기사 속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하나같이 링크만 걸고 놀아재끼는 걸까?
2-(4). 그렇게 서러워만 하다가 아이들이 등교했을 때 그 서러움이 조금 가셨다. 우리 학교 인근 고등학교 중에서도 EBS 링크만 걸어놓는 학교도 있다는 말을 아이들이 해주었을 때다. 얘들이 선생님 욕 안해? 했더니 "하죠."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 이래서 학부모들이 욕하나 싶었다.
2-(5). 인간이 모인 모든 집단에서 그 집단을 이끄는 것은 20%의 인원이라고 했다. 교직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이 학교 저 학교에 모여 있으니 어떤 이는 열심히 매진하고 어떤 이는 올해는 좀 쉬어가자 할 수도 있는 거고 어떤 이는 학생들의 공분을 살 수도 있는 거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사 집단에 대해 비판의 눈길을 가시지 않는 것은 어린 시절의 아픔 때문일 수도 있고, 교직은 성직이라는, 교사의 희생 정신을 당연히 생각하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분노 때문일 수도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현실에 가슴 아팠지만 이게 어디 우리 직종만 그런 걸까 싶었다. 우리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으니 그저 나는 내 길만 열심히 가야겠다 생각했다.
3. 어쩌나 저쩌나 2020년 한 해, 나름 상처도 받고 나름 좌충우돌하며 나름의 원격수업 방법을 터득했다. 지금은 겨울방학이지만, 우리반 아이들 상담과 아이들 방과후학교로 출근 중이다. 물론 '실시간 원격 수업'으로 상담과 수업을 한다. 나는 교수학습 방법이 아직 여물지 않아 아이들의 웃음과 반응이 없으면 수업 때 풀이 죽는 스타일인데, 원격수업은 내가 풀죽기 딱 좋은 수업 형태이다. 아이들이 눈만 떠 있고, 뭘 하는지, 어떤 느낌을 갖고 수업에 임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제는 한 녀석이 모니터 밖으로 사라져서 얼굴 보이기 싫어서 그러나보다 하고 있었더니, 졸고 있었다!!! 이런!!
4. 우리반 아이들을, 내가 수업 들어간 학급의 아이들을 온전한 얼굴로 교실에서 만나고 싶다. 마스크 속 예쁜 웃음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는 시절이 참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