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함께한 아이들의 졸업식을 마치고...
여느 헤어짐과는 다른 조용한 졸업식이었습니다. 이제 갓 성년이 된 고등학교 졸업반 제자들의 졸업식이 오늘이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의 졸업은 예년처럼 시끌벅적하고 왁자지껄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런 서글픔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하늘에선 어제부터 눈을 내려서 풍경만은 아름답게 꾸몄다는 느낌을 출근길에 받았습니다. 3학년 각 학급에서 방송으로 졸업식을 듣고 마지막 교가를 부르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는 졸업식이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조촐하고 엄숙한 졸업식을 마치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정든 교정과 선생님들을 찾으러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선생님을 외치며, 혹은 반가운 친구 이름을 부르며 쿵쾅대는 아이들이 복도에 가득합니다. 오랜만에 소란스러운 복도 모습을 보니 그제야 학교답다는 반가움이 들었습니다.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녀석이 편지를 내밀 때의 반가움이나 찾아올 것만 같던 녀석이 찾지 않을 때의 서글픔을 주고 받으며 아이들과의 작별 인사를 자분자분 해나갔습니다. 유난히 떠들썩해서 담임 생활을 하며 속을 많이 썩였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사진을 찍고 한 명씩 개별 사진을 찍으며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 하는 순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부터 2학년 수학여행을 함께 가고, 수험생이 된 3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 지켜봤던 아이들이기에 다가올 이별이 나에게 어떤 감정으로 들어올지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꽤나 마음이 휑했습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많은 학년이라 1학년 때부터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것이 사실인데 말입니다. 속상하게 한 일이 너무나도 많은 녀석들인데 이제는 복도에서 마주치면 그처럼 활기차게 인사를 해줄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자기 이름이 무엇이냐며 짓궂게 놀릴 녀석들도 사라지고, 함께 한 세월이 꽤나 길다며 수업 시간에 농을 주고받을 발랄한 아이들의 공간도 이제는 다른 성향의 아이들이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 기분이 참 휑합니다.
대학 진학 여부가 궁금해 물으면 어떤 아이는 묻지 말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눈물부터 쏟고, 어떤 아이는 자랑스럽게 대학 이름을 밝힙니다. 범인(凡人)과는 다른 존재라는 성인(聖人)으로 손꼽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울대나 하버드를 나오지 않았는데 대학 앞에서 무너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서울대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다룬 기사는 매년 쏟아지는데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작별 인사를 고하러 개별적으로 찾아온 아이들 중 얼굴을 보자마자 울어버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졸업식 때 우는 장면이 없다며 옛날과 다른 하 수상한 시기라고 말하던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이별을 겉으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은 존재합니다. 그것이 눈물이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졸업생들이 준 편지 곳곳에는 고등학교 생활 동안 자신들이 차마 밝히지 못했던 속사정들과 그 속에서 나와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그리고 보고싶을 거라는 닭살돋는 멘트까지 묻어 있습니다. 이렇게 아쉬움을 표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꽤나 이별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자들의 첫 졸업식이 아닌데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것이, 이 헤어짐의 감정이 늘 익숙하지 않습니다. 언제쯤 헤어짐의 공허함에 떨지 않게 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나를 거쳤던 옛날의 제자 녀석들도 지금은 건강한지 궁금한 졸업식 시즌입니다. 오늘 졸업한 아이들이 부디 세파에 덜 흔들리고 자신의 뿌리를 세상에 굳건히 내리길 조용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