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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쌤 Feb 13. 2020

한국 교육에 대한 고찰

과정 중심 평가에 대한 소견

  숲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해보자. 그 누군가는 분명 숲을 만들 때 ‘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지, 어떤 기능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한 ‘큰 그림’말이다. 그러나 그 숲을 이루는 각각의 나무들의 입장에서는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큰 그림’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다. 나무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서 어떤 풀이 자라나서 내 영양분이 빼앗기고 있는지, 어떤 흙에 물이 많은지, 태양빛을 받기 위해 가지를 어느 쪽으로 뻗을지가 아닐까? 과정 중심 평가에 대한 현장 교사로서 느끼는 나의 입장 또한 그러하다.


  과정 중심 평가에 대한 정의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박지현 외(2018)에 따르면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기반으로 수업과 평가를 연계한 평가계획에 따라, 교수학습 과정에서 보이는 학생의 특성과 변화에 대한 자료를 다각도로 수집하여,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한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평가“를 과정 중심 평가의 정의로 내리고 있다. 목적과 취지가 굉장히 좋은 평가다. 부인할 수 없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 외우고 찍었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 향상과 발달을 위해 노력하는 교육의 모습은 분명 대한민국 교육이 한 발자국 앞서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과정 중심 평가는, 교사가 처한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1. 교육과 대입의 사이에 놓인 인문계 고등학교


  인문계 고등학교는 참 힘들다. 특목고, 자사고와도 비교 대상이 되고, 주변 인문계 고등학교와도 비교 대상이 된다. 어느 학교가 더 특색을 살려 교육을 하느냐가 비교 기준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인원을 최상위권 대학교에 입학시켰느냐가 관건이다. 연말이면 특정 대학교 입학 인원에 따라 전국의 고등학교를 서열화하는 기사에서 씁쓸한 현실을 느낀다.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입에서 고등학교 교육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입을 위한 전초 기지로서 고등학교는 현상 유지되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은 들어온다. 과정 중심 평가를 진행하라는 개정 교육과정의 변화는 고등학교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교육과정이 바뀌고 개정되는 상황 속에서도 대학 입학을 위한 전형은 현장 교사로서 느끼는 현재, 변함이 없다. 여전히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 불리는 수시와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정시 사이에서 아이들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의 선택이 상위 대학 입학이라는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수능 과목 교사의 경우, 만약의 사태를 위해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 대비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5지 선다형 평가를 잘 대비시키는 교사여야 고등학생들에게 수업 잘하는 교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효율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수업을 들을 때, 고등학교 학생들은 안정과 만족을 경험한다. 이 수업을 들음으로써 모의고사에, 수능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말은 고등학교 교사의 현실과 과정 중심 평가가 얼마나 충돌하고 있는지를 밝혀준다.


  과정 중심 평가에 충실한 교과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성취수준에 맞는 교과 활동 수업을 계획하여 진행한다면, 학생들은 내신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교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 질문에 교사는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생님, 이거 수능 문제 풀 때 도움이 되긴 하나요?”

  과정 중심 평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5지 선다형 수능에서, 혹은 대입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학생, 학부모를 설득할 수 있을 때, 고등학교 교사는 안심하고 과정 중심 평가에 따른 교수 학습 과정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입에서 자유로운 고등학교 현장이 만들어지거나, 과정 중심 평가가 대입에 도움이 될 때, 비로소 과정 중심 평가는 고등학교 현장에 안착할 수 있다.


2. 과정 중심 평가? 그거 할 시간이 있을까요?


  사회에서 교사는 한직이라 여기지만, 내가 경험한 고등학교 교사의 삶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3월부터 학교 시계는 무섭게 흘러간다. 담임반 아이들 학년 초 상담과 1년치 교과 평가 계획 수립, 그러면서 중간고사 범위를 위해 진도는 부단히 나간다. 4월에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범위까지 진도를 나가면 중간고사다. 5월은 각종 학교 행사가 모여 있다. 수학여행을 갔다 오면 6월에는 기말고사 진도를 나가야 한다. 그리고 7월에 시험을 치르면 방학이다. 2학기는 이것보다 짧은 시간이다. 더 촉박하게 학교 시계는 돌아간다. 시험 계획에 맞춰 진도를 빼기 위해 현장 교사들은 남은 수업 시수를 셈하기 바쁘다.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하는 과정 중심 평가는 고등학교 내신이 대입에 반영되는 현실에서 교사에게 많은 부담을 준다. 한 학기에 정기고사를 한 번 치르고 수행평가의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시스템적으로 존재함을 안다. 그러나 학생, 학부모의 입장은 수행평가에 굉장히 부정적이다. 수행평가는 교사의 ‘주관성’이 강하게 개입되는 평가이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는 객관식 시험보다 신뢰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대입에 반영되는 고등학교 내신에 학생 간 경쟁 과열화 상태가 많은데 수행평가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두려움이 든다.

  또한 바쁜 학사 일정 사이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각종 행사가 있다. 교외 대회를 인정하지 않는 대입에 발맞춰 학교에서 각 교과마다 다양한 대회를 만들었고 일과 중 그 대회들이 진행된다. 어디 행사만 교사의 발목을 잡는가. 담임반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도 담임의 개입이 필요하며, 성적 결과가 대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담도 진행해야 한다. 또 수능 교과의 경우, 방과후학교도 열심히 수업해야 한다. 대입을 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과정 중심 평가. 대입으로 모든 것이 평가, 판단되는 인문계 고등학교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때가 많다.


3. 교육과정을 고민할 시간이 없는 교사의 시계


  성취수준에 따른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를 말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 하에서 그에 맞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현장 교사들은 그에 발맞춰 학교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현장 교사가 새 교육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과정 중심 평가는 학생들이 ‘성취수준’을 ‘어느 수준’으로 달성했는지를 평가하고 이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데 목표가 있다. 그렇다면 현장 교사들은 ‘성취수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이들을 조화롭게 융합하여 평가를 제작하고 평가 과정과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각각의 수준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그리고 앞으로의 교육이 바란다는 진정한 의미의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평가를 이끌어 갈 현장 교사들에게 ‘성취수준’에 대한 연수는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참고할 평가 루브릭이 있었는지, 혹은 루브릭을 제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수가 진행되었는지 고민해야 한다. 과정 중심 평가에 대한 오개념이 확산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개념의 평가관이 도입되었다면 그것이 기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현장에도 빠르게 전파되어야 옳다. 그래야 교사들도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 중심 평가는 과연 그렇게 진행되는지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나는 잘 느끼지 못하겠다.


  최근 소위 ‘금수저’ 가문의 고등학교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대입으로 인해 겪는 갈등을 담은 드라마 한 편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드라마를 쓴 작가의 의도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함이라는데,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내 아이의 대입을 성공시켜줄 코디를 찾고 있고, 드라마에 등장했던 뒤주 모양의 독서실 책상 구입 문의가 잦다고 한다. 각박한 현실에서 내 아이의 생존을 위해서 최선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좋은 학벌을 얻게 하려는 부모의 우려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다만 좋은 학벌이 현실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만연한 현실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변화 바람은 교육이 교육다워질 수 있는 방향성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서 이 방향에 발맞추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현실과 이상 그 간극에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이 존재한다. 내가 존재하는 숲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나무로서 간절히 알고 싶을 때가 많다.


참고문헌


박지현 외(2018), 과정 중심 평가 적용에 따른 학교수준 학생평가 체제 개선 방안[2018 KICE 이슈페이퍼] (ORM 2018-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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