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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Aug 23. 2019

엄마가 그리울 때는 밥상을 차린다

밥상을 차리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내 인생 최고의 밥상

  20살 겨울에 맹장 수술을 했다. 1주일 동안 입원했는데 나는 늘 입맛이 없는 편이라 병원밥은 더더욱 먹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날 저녁 받은 엄마의 밥상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특별할 것 없는 밥상이었다. 해마다 먹던 겨울 음식일 뿐이었다. 김장김치와 강된장.


  땅 속 깊이 묻어 둔 김칫독에서 꺼낸 배추김치는 겨울의 특유의 향기로 가득 차 병원에서 탁한 공기에 시달렸던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마치 내 입맛의 근원처럼 입맛도 불러냈다.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여기에 입맛을 돋운 것은 강된장이었다. 고추장 항아리에 박아 놓았던 고추를 된장을 푼 뚝배기에 엄지손가락 크기만 하게 숭덩숭덩 썰은 대파 서너 조각과 함께 바글바글 끓인 거였다. 아니 여기에서는 자작자작 지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자작자작 지져낸 강된장을 갓 지은 밥에 썩썩 비벼서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면 달큰한 겨울 대파 향과 짭조름한 된장 맛, 고추의 시큼한 듯 매콤한 맛이 입안을 장악한다.


  그날 밥을 두 공기나 먹었던 것 같다. 반 공기가 내 밥 양이었던 걸 생각하면 나는 그 밥이 무지 맛이 있었던 거다. 아직도 입맛이 없을 때면 그날의 엄마의 밥상이 떠올라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곤 한다.


  엄마에게 나는 무엇이든 먹여야 하는 자식이었다. 

  나는 입이 짧아 아무거나 잘 먹지 않는 아이였다. 이것은 냄새가 나서 싫고 저것은 질겨서 먹기 힘들고, 또 이것은 맵고......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먹고 싶다는 게 있다고 하면 바로 해주셨다.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가 달랑 한 조각만 먹고 마는 내게 "고작 고거 먹으려면 다시는 뭐가 먹고 싶다고 하지 마라."며 나무라셨다. 하지만 엄마는 말뿐이셨다. 엄마는 이걸 잘 먹으려나 저걸 잘 먹으려나 어떤 것이든 만들어 먹기를 바라셨고, 많이 먹지 않으면 다른 음식을 또 만들어 먹이시기를 반복하셨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언제든 내 입에 무언가를 넣어주시던 엄마는 내가 큰 아이를 낳은 지 100일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엄마의 음식은 추억이 될 뿐이었다.


 집밥의 소중함을 깨닫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가끔 카페 창업을 꿈꾸는 분들에게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엉뚱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밥상을 차리고 싶어 미칠 거 같아요."


 4년 전 카페를 오픈할 때(2016년 9월)는 큰 아이가 고3, 작은 아이가 고1 이어서 카페 창업을 생각했다.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작은 아이는 기숙사에 있으니 밥상을 차리는 일 등 집안일로 신경 쓸 일이 적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이 계산은 잘 들어맞는 듯했다. 새롭게 시작한 카페 일은 좋아하는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데다,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하며 즐거운 마음이 돼 좋았다. 무엇보다도 전에 하던 일보다 스트레스가 적어 살만했다. 게다가 카페는 운 좋게도 빨리 동네 커피 맛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과 마음이 물을 주지 않은 화초처럼 점점 시들고 있었다.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하니 당연한 결과다. 먹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더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카페 운영의 어려움이 밥 먹는 문제에서 생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밥상 테마는 '식당처럼'

   때로는 기사식당에서 먹는 돼지 김치찌개처럼, 때로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차려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다. 네 식구가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달그락달그락 숟가락 소리를 내며 밥을 먹노라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입 짧았던 내가 맛있게 먹었던 엄마의 집밥.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울 때면 더더욱 밥상 차리는 일에 몰두하고 했다. 나는 늘 대접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차렸는데 이른바 내 밥상의 테마는 '식당처럼'이다.

#아이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햄버거를 만들었다. 반나절의 시간이 들여 만들었지만 빵 여섯 개를 모두 만들자마자 먹어 버렸다. 반나절 노력의 흔적은 남지 않았지만 매우 즐거웠다.

  엄마에게서 받아본 정성스러운 밥상처럼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차려내는 일은 눈물 날 만큼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나를 닮아 편식이 심하고 입맛이 까탈스러운 딸에게 엄마처럼 조용히 입맛에 음식을 내놓으면 강된장이 보글보글 끓을 때 온도처럼 마음도 끓어오른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머니의 맛김치를, 잡채를, 멸치볶음을 해준다. 그런데 카페 오픈한 후 6개월 동안 ‘식당처럼’ 내 밥상을 차리지 못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작은 아이 학교에서 급식이  안된 날이 있었다. 소박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웠다. 엄마표 도시락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김치, 시금치, 스팸 구이, 깍두기, 밥, 감자

  “토요일은 6시 마감합니다.”

  내 밥상의 테마 '식당처럼'을 다시 시작했다. 카페에 매달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산다는 는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토요일만 6시에 마감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시금치를 다듬고 당근을 채치고, 당면을 삶아내고 엄마처럼 들기름에 볶아 잡채를 한 접시 만들어낸다. 4인용 가마솥에 미리 불린 쌀로 밥을 짓고 누룽지까지 만들어낸다. 특유한 삼겹살 냄새를 꺼리는 딸을 위해서는 무쇠 프라이팬으로 구워 고기의 깊은 맛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완숙 토마토를 골라 스파게티를 한다. 일주일간 눈맞주치며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은 입맛 가득 따뜻한 음식을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나눈다. 이렇게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나도 함께 둘러앉은 식구라는 이름의 가족도 그렇게 행복했다. 이런 게 소확행 아닐까.


  네 식구에서 두 식구가 된 지금 우리가 누린 소확행은 소확행이 아니었다.

  올해 3월 4일 같은 날에 큰 아이는 군대로, 작은 아이는 대학생이 돼 기숙사로 떠났다. 남편과 나 단 둘이 남았다. 남편과 나만을 위해서 식당처럼 밥상을 차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나는 가끔 엄마와 밥상을 차리는 상상을 한다. 네 식구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은 소확행이 아니라 그 이상의 대단한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반려견 '치즈'에게 시원한 물을 주며 말을 걸어본다.


  "형아가 보고 싶다고? 아, 누나가 기숙사에 들어왔는지 궁금하다고? 형아랑 누나 오면 맛있는 거 해 먹자~."




#살림 욕심 좀 있는 분께 강추. 무쇠프라이펜.고기 싫어하는 분도 맛있게 드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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