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박완서전집 읽기 나목
나는 모처럼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좀 더 생기 있어 보이는 컬러를 골랐다. 오후 5시쯤이면 영혼도 반 나가 있고 화장기도 어디론가 다 사라질 때쯤이다. 그녀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벽돌색보다는 진달래색 립스틱을 열어 평소보다 힘주어 발랐다. 그리고 노트북 가방을 한 번 더 태블릿과 노트북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지퍼를 닫다가 다시 열었다. 요즘 들어 뭐든 한 번에 일이 마쳐지지 않는다.출근할 때도 현관문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나 다시 들어간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에 기억나는 것은 운이 꽤 좋은 편이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생각이 난다면 난감한 일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래도 도로 한가운데서 생각난 게 아닌 게 어디인가라며 위안삼을 정도까지 되었다. 마우스는 내가 지정한 지정석에 얌전하게 들어있었다. 나는 경쾌하게 지퍼를 올리고 배낭을 들어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었다. 외출 준비 끝.
따르르릉 전화 왔어요 전화받으세요.
070 주문 전화벨소리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8잔, 블루베리 스무디 2잔
내 이럴 줄 알았지.
조용하던 카페가 밥 좀 먹으려고 하면 손님이 오고,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전화주문이 밀려온다. 원래 우리 카페는 주문이 밀려 들어오는 그런 집은 아닌데.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반사적으로 머신 앞에 섰다. 외출 스케줄은 이미 머릿속에서 하얗게 되었다. 대신 투 샷을 8번 뽑아댔다. 옆에서 대신 카페를 봐줄 친구-내 딸-가 스쿱을 집어 들어 얼음컵을 만든다. 나는 샷을 내리기 시작하고, 8개의 얼음컵을 다 만든 친구는 재바르게 스무디를 만들 준비를 한다. 원래 그 친구의 별명은 똘똘이로 내가 믿거니 한다. 이 친구를 낳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고급인력이라서가 아니라 정서적 연대감이 더욱 돈독해지는 요즘이다.
결국 나는 10여 분도 더 지나서 출발하고 말았다. 이럴 줄 알고 10분 이상 여유 있게 외출준비를 하곤 한다. 그 사이 두드렸던 팩트 위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카페에서 일 좀 해본 사람은 알리라. 머신 앞이 얼마나 뜨거운지.-나는 운전하며 룸미러를 힐끗 거린다. 그래도 진하게 바른 진달래색 립스틱은 살아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그러나 아뿔싸. 이 조그만 시골 동네에도 퇴근시간에는 길이 밀린다는 사실. 알고 있었지만 망각하고 있었다. 내가 택한 노선은 -사실 내비도 안내한 그 노선은 비교적 한산할 거라 여겼다. 너무 만만히 봤나. 나는 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내 예상대로라면 5분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물건너갔다. 30분이나 지각. 퇴촌은 멀었다. 나는 정확히 6시 31분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주차장에. 두 번의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각 잡게 주차하느라 5분 이상 걸렸다. 천진암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카페였는데 아쉽게도 주차라인이 없었고, 이게 주차를 더욱 어렵게 했다. 대충 주차하면 다른 차들이 주차할 공간이 손해라 나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후진과 주차라인을 확인하면서 이미 자포자기했었던 것 같다. 어차피 지각이다. 침착하게 하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카페 문을 밀고 한 발을 들이고서는 급히 오느라 잠시 잊었던 설렌다는 감정이 올랐다. 오늘 우리 독서 모임 첫날이지. 책 좀 읽는 편에 속했지만, 심지어 책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해왔던 사람이었지만 독서모임은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속성 자체가 원래 설레는 거 아닌가.
박완서 선생의 첫 작품. 이 또한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는가. 소설을 읽으며 첫 작품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어찌하여 나는 나목은 읽지 않았던가. 선생의 여러 작품들을 읽은 경험이 있었는데 나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술술 읽히는 게 선생이 나이 마흔에 썼다는 이 소설에 그동안 내면에 잠재웠던 열정들이 드러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섯 아이의 어머니로 살면서 선생을 충만하게 했던 수많은 서사들이 어떤 것인가 읽혔다. 소설 습작생으로 몇 년을 살고 있는 나는 나의 결핍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면서 왜 그렇게 할 말이 없는 것인가. 아니 무얼 주저하고 꺼내놓지 못하고 있는가. 나목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자기 검열로 저 막장에 수장해 온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나목에 깊이 빠져 읽는 동안 나는 시골 마루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조그만 여자 아이를 기억해 냈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는 마루에 한편에 앉아있는 조그만 여자 아이가 있다.
조그만 여자 아이는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다. 마루를 빌려주고 친구들이 인형놀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할 뿐 그 아이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다. 그게 조그만 여자 아이가 노는 방식이다. 여자 아이는 성장하면서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지만 그것만큼은 어려웠다. 사회성이 좋다는 말처럼 굉장한 칭찬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그만 여자 아이는 소외된 아이 쪽에 속했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야 그렇다는 것을 인지했다. 비루한 살림살이에 부모는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조그만 아이의 머릿속에는 먹물이 진하게 배어있는 집안을 동경했고, 그래서 자신의 부모님을 보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사회성이 좋아지기에는 너무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조그만 여자 아이의 내면을 눈치챈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변에서 조그만 여자아이는 당차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좀 더 그런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러고 보면 조그만 여자 아이는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성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을 하곤 했으니까. 조그만 아이는 너무 애쓰며 살아있었다. 한 사건을 계기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평생의 친구 당뇨를 얻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일을 반의 반, 반의 반의 반으로 줄이고 잠에 빠져들었다. 당시 나는 눈에 실핏줄이 자주 서서 눈이 몹시 아팠는데 근 1년여는 책을 읽지 않았다. 노안이 함께 오면서 읽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글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렇게 넋 놓고 1년 가까이 지냈다.
미정 씨는 골다공증 영양제를 선물로 들고 왔다. 그녀는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함께 기쁨도 나눈다.
2024.03.25 카페물러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