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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Sep 21. 2023

당나귀 공주님

Princess Donkey

아무도 당나귀는 원하지 않아요 공주님

울음소리도 영 짐승 같지 않고

생긴 것도 말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진흙과 오물 묻은 저 발굽을 봐요

털도 거칠고 퍼석퍼석한 게 기분 나쁜데

호박 순무 잡초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 치우잖아요


말은 어떠세요 공주님

우렁찬 목소리를 누구나 존경하고

언제나 왕자님이 그 곁에

매일 빗질받는 갈기는 비단결마냥 곱고

쭉 뻗은 다리에 반짝이는 발굽이 얼마나 우아한지

손질된 당근만 조금씩 먹는 것도

저 못난 당나귀와는 다르죠


모두들 말을 원해요

말은 애초에 말이니까 예쁘니까 귀하니까 말이니까

아무도 당나귀와는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공주님

모두들 말을 원한다니까요


언젠가 돌아와서 말이 될 걸 그랬어 하실 거예요

제가 다 알아요

모두들 말을 원하니까요

말로 사는 게 얼마나 편한데요

대체 왜 말을 거부하시는 거예요 그게 순리이고 도리인데


당나귀는 당나귀로 태어났으니까 당나귀는 당나귀인 거야


늙은 고양이와

더 이상 알을 낳지 않는 암탉과

짖기만 하는 개와

그리고

당나귀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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