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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크 Jul 04. 2023

마음의 여유공간 만들기 - 유보지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공간 만들기

 인생을 열심히 살다 보면 내 마음이 온갖 것들로 꽉 들어차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해보거나 마음을 쓸 여유가 없어진다. 신도시 도시계획을 할 때, 미래 산업변화나 행정수요, 시민들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것을 언제든지 지어야 할 수 있어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는 빈 땅, 유보지를 둔다. 내 마음속에도 언제나 유보지를 두어 새로운 좋은 것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을 때 생각의 씨앗을 뿌릴 공간을 두어보려 한다.


 작년 도시계획기사 실기를 준비할 때였다. 나는 완벽한 도시계획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도시계획기사 학원에 가, 나만의 예쁘고 빽빽하고 밀도 높은 도시계획을 할 기대를 가지고 갔다. 그런데 학원에서 유보지라는 개념을 듣고는 매우 신선했다. 모든 도시에 3% 이상씩은 꼭 두는 땅으로,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는 나대지로 남겨놓는 것이다. 그것도 도시의 핵심부, 중심에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정말 중요한 땅을 나대지로 남겨둔다는 것이 아깝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니 설득력이 있었다.


 "과거 마차를 끌던 시절, 자동차가 도로를 활보할 것이라는 것을 누가 생각했을까요? 도심이 빽빽하게 기 개발되어 주유소 부지가 없었다면 지금 자동차 인프라를 우리가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대형마트라는 개념도 최근에 만들어졌는데, 도심 내 유휴부지가 없었다면 대형마트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지금 고밀 개발된 도심에는 대형마트가 없습니다. 행정기관 신청사 건립, 창고형 할인매장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앞으로 수소차 시대, 드론 시대, UAM 시대, 메타버스 시대 도심 내 땅이 갑자기 필요할지 모르는데, 그런 미래 신산업과 새로운 시민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유보지는 꼭 핵심적인 지역에 넓게 두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 이후, 도시계획 구상도를 그릴 때 유보지라는 개념이 너무 좋아졌다. 각각의 계획 부지에 대한 설명을 쓰도록 하는데, 거기에 "도시 미래 발전을 위해 미래 신산업과 새로운 행정수요, 시민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핵심 부지를 유보지로 둔다." 라고 쓸 때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화려하게 꾸밀 수 있고,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할 수 있는 땅에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일단 한 번 세워진 것을 철거하고 새로운 것을 다시 설치하는 것은 너무 고비용이 들고 기간도 길어지고, 매몰비용이 아깝기도 하고, 낭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핵심지에는 진짜 꼭 필요한 것을 설치하기 위해 남겨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지어진 파주 운정신도시, 화성 동탄신도시, 김포 한강신도시 등에는 중심부에 유보지가 배치되어 있다. 만약 유보지의 확보가 어려울 때는 준 유보지를 설치하기도 하는데, 매우 저밀 개발되어 언제든 가변적으로 철거 후 토지를 재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설물을 많이 설치하지 않은 공원이나 광장, 철도부지, 낮은 밀도의 물류, 유통시설, 청년 창업공간, 모델하우스, 영화 세트장 등이 대표적이다.


           <동탄2 신도시 유보지> (출처 : 네이버 지도)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기"라는 것은 미덕에 가깝다. 하루 24시간을 풀로 중요한 것들로 채워 넣는 것이 성공과 자기 계발에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내 마음속을 확고하고 불변하는 철학과 가치관으로 채워 굳건하게 중심을 가지고 모든 사안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세워두는 것이 자존감이라고 믿는다. 마음속의 생각들을 꼭 좋은 것들만으로 가득 채워 넣는 것이 자기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내 스케줄을 빡빡하게 만들려고 했고, 항상 모든 사안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가지게 되고, 머릿속을 온갖 현자들과 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채워 넣어 진리를 탐구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세상은 엄청 빠르게 변화하고, 나의 자아도 계속하여 변화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지식들과 정보들이 나에게 쏟아져온다.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 오기도 하고, 새로운 말들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가치관, 생각, 철학이 이미 빽빽이 가득 차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을 공간이 없다면 이런 세상과 나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과 아무것으로도 채워 넣지 않은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보자. 내 안에 더 소중하고 좋은 것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핵심적인 시간 일부와 핵심적인 마음 일부를 덜어놓고 비워놓자. 만약 마냥 비워놓는 것이 아깝다면 저밀도의 언제든 철회나 취소가 가능한 활동들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약하고 가벼운 마음들도 만들어 두자. 그래서 나에게 더 소중하고 좋은 것이 찾아왔을 때, 나의 시간과 마음에 생각의 씨앗을 뿌려보자.


 나는 엄청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일도 하고 있고, 코딩 공부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산책과 운동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부모님도 정기적으로 뵙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여행도 다니고, 악기 연주도 하고, 부동산 및 주식 공부도 하고, 공모전에도 정기적으로 나가고, 자격증 취득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도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중요하게 정성을 쏟아야 하거나, 새로운 공부가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쉬는 시간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내 행위의 우선순위를 정해두어 다른 것이 중요해지면 저밀도로 나에게 하고 있는 일들을 과감히 중단한다. 가령 나는 여행, 악기 연주, 책 읽기, 친구 만나기는 다소 저밀도의 행위여서, 다른 중요한 행위가 있을 때는 중단하기 용이하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하루 만에 글 10개를 써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행정고시 공부를 할 때도, 늘 산책을 하고, 휴식 시간을 확보해 놓아 새로운 좋은 강의가 나오거나 강사가 새로운 특강을 내거나 학교 과제 등이 생기더라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 두었다.


 나는 주관이 강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여러 가지 사물과 유무형의 것들에 대한 나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철학과 가치관에 대해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수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 한 공간은 늘 새로운 것들로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비워두기도 한다. 최근에 드로우 앤드류의 이야기와 내 동생이 해 준 이야기에서, 자존감이 높은 것에 단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크게 거부감 없이 내 마음속에 수용이 되고 나의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자기 확신에 차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인정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상대방에게 공격적으로 들렸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자기 확신에 찬 말하기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 마음속 빈 공간에 저장하게 되었다. 나의 가치관 가운데 불변하는 것은 있겠지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변적인 것들을 많이 만들어 두고, 빈 공간도 만들어 두어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이 언제든 나에게 꽃필 수 있도록 만들어둘 때 미래에 더욱 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모든 일정과 모든 마음을 꽉꽉 고밀도로 채워두지 말고, 신도시 개발 시 유보지를 두는 것처럼 일정에도, 마음에도 여유를 두고 저밀도의 것들도 만들어 두어 언제든 비워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둘 때 미래에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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