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트라맨 Dec 08. 2023

가족으로 만나 남보다도 못한 사이

달려라 외톨이 디렉터스 컷


 지긋지긋한 인연이다. 가족으로 만나서 남보다도 못한 사이. 나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있다. 연을 끊고 싶어서 호적 등본(지금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변경)에서 이름을 지우려 해도 우리나라 법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 봐도 내 머릿속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왔기에 증오심만 남았다. 아주 어릴 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였을 때, 이 기억만은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있다. 한창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가 정말 지긋지긋했는지. 아이는 주방에서 칼을 들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그걸 본 부모는 기절초풍을 하며 방문을 두드리고 아이들 꺼내려했다. 부부싸움의 주제가 뭔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이가 했던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없어지면 되잖아,,!" 부부는 문을 따고 들어오는 순간 화들짝 놀랬다. 아이는 칼을 목에 대고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부모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아이는 가정법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엄마 둘 중 누구와 살 것인지, 그런 내용들을 묻는 자리였었다. 그렇게 잠시 친가에 맡겨졌는데 엄마와 떨어진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 그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을까. 헤어지기 전에 잠시 데이트를 하며 사주신 책이 있다. 논리야 놀자와 둘리 만화책. 그 책을 닳고 닳을 때까지 봤던 것 같다. 생각이 나면 보고 울음이 나올 것 같으면 보고.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친가에서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엄마가 다시 데려갈 시간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살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기뻤다. 그 어떤 것보다도 기뻤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지긋지긋한 인연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좋은 관계를 쌓아보려 노력했다. 주변에서도 그렇고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많이들 이야기했기에, 그리고 나도 가족이 있고 싶었기에. 처음 만나는 날 아버지는 멀쑥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초밥을 사줬다. 그때는 한창 배고프고 가난한 뮤지션이었기에 회전 초밥이 그렇게 비싸고 맛있어 보였다. 잠실 롯데 백화점 초밥집에서 맥주 한잔과 회전 초밥을 먹는데, 사람 참 실없지. 그게 또 그리 맛있더라. 20 접시였나? 한참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천안에 계시면서 사업을 하신 다고 했다. 값 비싼 초밥을 얻어먹으며 다음번 한번 뵈러 가겠다고 하고 그날 예비군을 다녀왔다.

 천안행 버스에 올라탄 뒤 이어폰을 꽂으며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앉아 있는데, '쉬익' 하면서 문이 닫히고 천안으로 가는 버스는 출발했다. 역에 도착하니 마중을 나와 계셨다. 그리고 만나서 천안 집에 방문을 드렸다. 이때 천안에 계시는 새어머니를 보고 인사를 드렸다. 가족이 생기는 줄로만 알았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술도 한잔하고 아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화목한 시간들이 흐르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오신단다. 사회에서 눈칫밥을 많이 먹은 지라 단박에 알아챘다. '뭔가 일어났구나' 그렇게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무 일도 책임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자신만 쏙 달아났다.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사람 관계는 어떻게 해야 이런 사태에서 잘 마무리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어떤 면으로 봤을 땐 감사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서 더 커진 응어리는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한 달? 두 달? 지났을까. 처음엔 연락을 안 받던 사람이 다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이번엔 성남에서 만나기로 했다. 차에 타라고 해서 타고 보니 여차저차 사정 같은 이야기는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새어머니가 차 뒷자리에 타고 계셨기에. 그래서 가면을 썼다.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 웃기면 그저 얼굴만 웃고 그렇게 지냈다. 왜냐하면 또 자신만 쏙 빠져나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에. 하지만 성남에 계신 새어머니는 나를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매번 진심으로 대해주셨기에, 어머니께 만큼은 진심으로 마음을 드렸다. 그래서 지금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으로 고민도 털어놓고 이야기도 하며 가끔씩 뵙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연하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내 신용으로 집과 자동차를 계약했었기에. 성남 어머니가 재빠르게 집은 자신의 명의로 돌려주셔서 걱정을 좀 덜었다. 남은 건 자동차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믿었다. 설마 아버지란 사람이 자식이 연대보증 선 것을 떠 넘기겠어? 하고 말이다.


 "부와 아앙" "부와 아앙" 새벽에 일을 하고 늦은 아침까지 자고 있는데, 전화가 빗발친다. 싸늘했다. 뭔지도 몰랐지만 싸늘했다. 그렇게 전화를 받았는데 "00 캐피털 추심원 000입니다. 아버님께서 리스로 타신 차량이 기존 계약하신 키로수 보다 훨씬 넘게 타고 있고 연체료가 생겨서 돈을 내셔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되고 있어서요, 이렇게 되면 연대보증을 하신 계약자님께서 채무를 이행하셔야 합니다.""금액은 2,400만 원입니다." 한국 속담에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 상황이 딱 그랬다. 너무나도 황당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차오르고 별의별 감정이 순식간에 올라와서 말을 못이었다.

 "여보세요?? 들리시죠?" "네...." 차분하게 감정을 억누르고 머리로 정리를 했다. "선생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끊지 말고 잘 들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전부 이야기하며 내가 탄 차가 아닌데 이 억울함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리고 지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아르바이트생인데 2,400만 원이라는 돈이 어디 있냐고 사정사정을 했다. 그리고 나오는 추심원 선생님의 대답에 참 웃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휴.. 어떻게 그런 아버지가 다 있습니까? 근데 제가 이 일이 직업이에요, 그래서 선생님께 하루에 한 번은 꼭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미안해서 이거 어떡합니까? 한 번은 꼭 받아 주셔야 하고, 최대한 이쪽에서도 아버님과 연락이 닿으려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사무실도 찾아가 봤지만 이미 다 없어진 상태여서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제가 이런 말 할 입장인지 모르겠지만, 힘내십시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연락이 닿으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참 살면서 추심을 받는 전화를 받기도 하고 추심을 하시는 분께 힘내라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어떻게 보면 정말 재미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버지란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는다. 나는 2,400만 원을 물어 줄 생각이 1도 없을뿐더러, 내가 저걸 물어주게 된다면 혀를 깨물고 죽고 말리라.라는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켜고 엄지를 두드렸다. 아주 초 장문의 문자를 쓰며 약간의 인신공격도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죄송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잠깐 함께 살았고 아버지란 사람은 내겐 없었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그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보고 느끼는 감정과는 아주 많이 다를 것으로 생각이 되기에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니 그에 상응하는 장문의 문자로 답이 왔고,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단 하나 자신이 변호사를 써서 처리를 하겠다고 한 문장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추심원분이 연락이 닿았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전화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 그 후 나는 아버지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더 이상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으로 만나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기 마련이다. 저 당시에도 너무 억울하고 몸에 화가 많이 생겨서 누가 건드리면 쉽게 화를 내고 불 같은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싫어서 유일하게 행동하며 성격을 조절할 수 있는 달리기로서 모든 상황을 조율했다.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안 오면 한강으로 무작정 달려 나갔다. 아침에도 기분이 별로면 석촌 호수를 한 바퀴 돌아서 기분을 업시켰다. 그러면 차분해지면서 좀 더 나은 하루가 펼쳐졌다. 또한 기분이 좋아도 그대로 달리러 나갔다. 떨어지는 벚꽃 잎 아래에서 봄바람에 살랑살랑 뛰는 그 순간은 좋은 기분을 더 좋게, 그리고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만들어 줬다. 그렇게 달리기는 내게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기도, 행복한 추억이기도 했다. 만약 당신이 너무나도 힘들고, 세상에 나 혼자 있다고 느껴진다면, 진심으로 추천한다. 처음에는 분명히 하기 싫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이겨낸 당신에게 집중을 한다면, 아마 점점 달라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