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베트남 쥐똥고추 X 100
2015년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경기도의 어떤 도시에 배치되었는데, 이름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도시였다. 그곳에서 나는 월세 40 / 보증금 500짜리 4평 남짓한 원룸을 급히 구해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공무원이라는게 자리를 쫓아 지원하다 보니, 원래 살던 지역에서 출퇴근 하는게 쉽지 않다. 원래 살던 지역만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워낙 이사를 많이 다니고 부모님과도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익숙해 뭐 지역쯤이야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젊은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아 덤벼라! 하하핫!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업무는 물론 그 지역의 특성, 지리 등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 소새끼 말새끼, 에브리바디 쉑잇쉑잇 욕이란 욕은 다 들어가며 업무를 배웠다. 분명 욕은 나쁜 거라 배웠는데?
2015년만 해도 갑질이라는 단어는 생소했고, 9년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갑질이다 성희롱이다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로 오히려 잘못된 업무에 대해 지적하는 것 또한 상대방이 갑질이라 주장하면 주의받을 수 있고 업무에 투입되기 전 훈련, 매뉴얼 등 잘 되어있으며 언젠가부터 멘토 제도를 도입하여 사수로부터 업무에 대한 지식을 물어볼 기회도 생겼다. 물론 지금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친구들은 "이게 뭐가 잘 되어있는 거야"라고 할 수 있지만 라떼만 해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업무에 바로 투입되었고 일을 못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폭언을 들어야 했다. 그땐 그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모르는데 어떻게 해요?
억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나?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9년 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그냥 버텼다는 말로 밖에 표현을 하지 못하겠다.
물론 중간에 도망가려고 한 적도 있다. 그때의 나는 기계처럼 기존의 정책을 다시 찍어내는 의미 없는 업무, 말도 안 되는 업무량, 나를 그들의 노비 정도로 생각하는 직장상사들과 악령이 들렸나 싶었던 악성 민원인들, 거기다 일이 많던 적던 어떤 성과를 냈건 말건 매달 따박따박 정해진 쥐꼬리만한 월급명세서는 공무원이고 뭐고 나발이고 진짜로 암에 걸려 당장 죽을 거 같았고
그렇게 나는 임용되고 1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냈다.
실제로 난소낭종이라는 병이 생겨 수술을 받고 6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몸의 약한 부분이 고장 나는 것을 아는가?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았다. 스트레스성이라는 것은 유사과학정도로 생각했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다니... 참나..." 하지만 그렇게 건강하던 내가 1년 만에 난소낭종이라는 병을 진단받아 수술을 하고 호르몬치료를 받았으며, 두통, 위염, 알레르기, 생리통, 근육통, 몸살, 고열, 불면증 등 세상오만가지의 병을 달고 살아 약과, 주사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텼고,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들은 스트레스, 과로를 원인으로 꼽았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여기서 하루라도 더 근무하면 정말 암이 걸릴 거 같아"라고 말하고 다녔고 정말로 병이 나자 "공무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 말고 더 큰 소명을 가진 유능한 인재들에 자리를 양보하자!“라며 그만 두기로 결심했으나
아직도 나는 매일 그 지옥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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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의해 병이 걸렸지만 그 병을 치료해주는 것 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