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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10. 2020

독일에서 숫자를 거꾸로 읽는 이유

과연 누구를 기준으로 내가 정상이고 니가 비정상인 건가

8년의 시간을 독일에서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적응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독일어로 숫자를 읽는 것이다.

27을 예로 들자면 한국어나 영어의 경우 왼쪽부터 20을 먼저 읽은 후 7을 읽지만 독일에서는 가장 오른쪽에 있는 7을 먼저 읽고 20을 읽는다. 독일에서는 오른쪽부터 숫자를 읽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127의 같은 경우 가장 왼쪽의 100을 먼저 읽은 후 7이 그 다음 그리고 20의 뒤죽박죽의 순서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10 단위가 넘어가는 숫자를 독일어로 들어서 이해해야 할 때 나의 머리는 천의 자리, 백의 자리, 십의 자리의 퍼즐을 맞추느라 애를 먹는게 부지기수다.


요즘 재택근무를 하면서 우리 회사 사내 온라인 미팅 플랫폼에 접속을 하려면 5자리 핀을 입력해야 한다. 이 핀을 미팅 주최자인 독일인 동료에게 전화로 물어보면 누구는 다섯 자리를 한 자 한 자(예를 들면 3,8,2,5,0 또박또박) 알려주는 반면 누구는 두 자리씩 두 번 끊고 마지막에 일의 자리만 하나 알려주는데(38, 25, 0) 두 번째 같은 경우 못 알아 듣는 건 아니지만은 나 같은 외국인 입장에서는 독일 숫자 읽는 방식의 특성상 그닥 달갑지 않은 전달 방법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만나서 키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에 독일 친구가 178cm를 독일어로 얘기했는데 우연히 내 옆에 있던 외국인 친구의 눈을 목격한 일이 있었다. 그의 시선이 뇌를 따라가는, 즉 첫째로 1을 읽을 때 왼쪽, 8을 읽을 때 오른쪽 그리고 7을 읽을 때 중간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공감이 가서 웃음이 팡하고 터졌다. 그러다가 독일어 숫자 읽기의 비효율성에 대한 외국인 친구들의 농담 섞인 불만이 터져 나왔고 그나마 한 술 더 뜨는 불어가 아님에 만족하자는(92을 4 곱하기 20 더하기 12로 읽는 언어) 나름의 결론으로 일단락 되었다.


독일은 도대체 왜 숫자를 이렇게 뒤죽박죽 읽는 걸까 궁금해 집에 와 구글에 검색을 해 보았는데 환장할 노릇은 독일어나 프랑스어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찾은 글에서 말하길 말하는 언어는 쓰는 언어보다 먼저 존재하였고 오늘날 존재하는 숫자들도 읽기라는 것이 연습되기 전에 탄생하였다. 그러다가 쓰여진 숫자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읽는 방향보다는 논리였다.

(출처: https://german.stackexchange.com/questions/5009/why-are-german-numbers-backwards#:~:text=The%20question%2C%20why%20German%20numbers,%2C%20it%20speaks%20%22backwards%22)


핀란드에서는 18을 두번째 10(즉 20)에서 2를 뺌의 방식("two (from) ten (in the) second (ten)")으로 읽고 고대 노르웨이어에서는 오늘날의 10 기준(10진법)이 아닌 12를 기준으로(12진법) 한 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364를 4번째 100에서 4를 더한 것("four days into the fourth hundred (= 120)" - 예전에는 hundred가 120을 의미했다고 한다)으로 읽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 산수면에서 훨씬 똑똑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는 그게 "일반적(normal) 혹은 정상적인" 일이었을 거다. 또한 독일어 사투리에서 유래한 고대 영어에서는 독일어처럼 반대로 숫자를 읽었다고도 나와있다.

즉, 말하는 언어가 먼저 있어왔기에 27이라고 읽는다 해도 실제 의미는 독일어처럼 72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늘날 볼 때 이상하게 숫자를 읽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산수를 해 온 논리를 기준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독일어에서는 왜 숫자를 이상하게 읽나요?"가 아닌 "도대체 왜 영어는 비정상적이게 숫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나요?"의 역질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쓰이던 12진법을 시계의 12시간, 1년의 12달, 연필 12자루, 혹은 도넛이나 맥주 캔 포장(6개나 12개 묶음) 등 오늘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걸 보면 또 그렇다. 그 당시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숫자 읽는 방식을 본다면 까무러치며 "왜 이렇게 비논리적이게 숫자를 읽냐"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우리가 볼 때나 당연히 "논리적이고 정상적"인 것이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얼토당토 않은 시스템으로 간주 될 수 있는 이유에서 일거다.



정상이나 비정상은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는 내 기준에서 얘기할 때”만” 적용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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