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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Sep 08. 2024

나의 촌스러운 노포식당 <최고의 감자탕>


저는 고기나 순대가 물에 빠진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 아닙니다.

설렁탕, 순댓국, 선짓국 류를 그래서 잘 안 먹는데요,

너무 맛있어서 선호도를 초월해 버린 음식들이 있습니다.


'닭 한 마리', '감자탕'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요,

그중에 오늘은 감자탕입니다.


음식이란 것이 계절을 타기 마련인데, 감자탕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질리지가 않아요.

커다란 냄비에 다인분용이면 감자탕, 1인용으로 나오면 '뼈해장국'이라고 하죠.


원래 전라도 음식이다, 1890년 인천 경인선 철도공사 때 인부들이 맛있게 먹어 전국으로 퍼진 음식이다,

원래 감자와 채소만 끓여 저렴하게 팔던 것에 고기 한두 점 넣어 팔던 것이 요즘은 감자가 실종되고 고기만 주로 나오게 되었다 등 유래에 관한 말들이 많습니다.


'감자'가 돼지뼈 부위 이름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잘못된 거라죠. 설이 많다는 건 그 음식이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뜻 아닙니까.


아무튼 동네는 물론 성수동, 대학가 근처 등 맛있다는 감자탕, 감자국 집을 부지런히 섭렵하고 다녔죠.

깻잎, 들깻가루, 시래기 등 가게마다 특색 있는 재료로 돼지의 잡내를 잡고 있었어요.

솔직히 감자탕 가게는 잡내를 못 잡으면 맛없는 집이지, 맛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하기 어려운 음식으로요.


그러던 중에 좋아하는 동네 중에 '정릉'이 있어서 간 김에 감자탕집을 검색하다가 '일미집'을 알게 됐어요.

위치도 할머니집에 놀러 온 것처럼 푸근한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정릉시장'근처지 뭡니까.

처음 간 이후로 반해버려 감자탕은 다른 집엔 안 가게 돼버렸어요.



일단 탁하고 진한 국물이 아니라 깨끗하고 간이 딱 맞아 감자탕 국물을 마실수가 있어요.

감자탕 국물은 고기의 간을 위해 존재하는 줄만 알았던 국물이 주조연급인 거죠!


또한 잡내를 잡기 위한 부재료 하나도 없이 파만 넣었는데도 냄새가 안나는 겁니다. 냄새에 예민해서 다른 집에서 감자탕 먹을 땐 약한 잡내를 맡았는데 말이죠.


거기에 투명하고 맑은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캬아.... 맑은 정릉천만큼이나 깨끗한 느낌을 주는 감자탕이라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어제도 낮에 더워서 땀을 흘린후에 '일미집'으로 향했습니다.


정신없이 고기와 잘 익은 감자를 흡입한 후 라면사리를 넣고  탱글탱글 하게 삶아 먹으니 꿀맛이네요.

라면사리 강추이고요, 물론 한국인은 밥까지 볶아 먹어야 대미가 장식되지요. 가성비까지 좋아 4인 가족이 실컷 먹어도 5만 원을 넘지 않아요.


식당 앞에 있는 예쁜 정릉천을 산책하고 시장에서 채소 좀 사면 배가 살짝 꺼지죠.

그때 시장의 달달한 꽈배기를 후식으로 먹어주는 겁니다.


이때쯤 되면 머릿속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떠오릅니다. 별거 아닌 이 순간이 선선한 밤바람과 함께 감동으로 물들어가지요.

감자탕 하나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가 됩니다.


핫플에 유명 맛집이 아니라도 나만의 맛집을 발굴해 내어 인생의 맛을 느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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