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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Dec 04. 2024

16화 반격의 서막(2)



여유 있게 말하는 대표와 달린 백영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벡팀장이 고민하는 거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야지.”      


남궁 대표가 담배를 입에 물자 자신의 라이터를 얼른 꺼내 불 붙여주는 백영석.      


“땡큐. 엿들으려던 건 아닌데, 아까 홍보팀 직원이 외화 하나를 언급하던데? 제목이...”

“‘시크릿룸’요?”

“그 외화는 어때?”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백영석이 확신 있게 말하자 ‘그래?’하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남궁 대표의 표정이 미묘했다.       


“알았어. 가 봐.”      


대표실 밖으로 나온 백영석은 긴장이 풀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표와 독대하기만 하면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보다 센 상대를 알아보는 수컷의 본능인가?


*     


사무실로 돌아오니 백영석네 회사와 비교되어 그런지 더욱 작게만 보였다. 특히 홍보실의 초라한 내 싸구려 책상과 의자는 현재의 내 위치를 자각시켜 주어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남궁 대표처럼 파워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흥행작만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긴 했지만 정말 저런 자리까지 갈 수 있을지 꿈처럼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회귀를 백번 해도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현팀장 책상 위에 담배와 라이터가 보이자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이걸 피우면 잠시나마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건가? 담배를 물고 불붙인 순간, 호흡을 잘못해 연기가 미친 듯이 목구멍으로 몰려들었다!      


“컥! 어억 켁켁!”     


극도의 매운맛에 눈물 콧물 쏙 빠지는데, 누군가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 휙 돌아봤다.      


“크큭... 참 요란하게도 피시네.”      


화보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정지우가 팔짱을 낀 채 다 보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나는 얼른 얼굴 정리부터 했지만 좋은 이미지를 주긴 이번에도 틀린 것 같았다.      


“이, 이거 처음으로... 처음 피워서 그래요!”      


정지우는 갑자기 웃음을 걷더니 의자를 끌어와 내 앞에 앉았다. 또 무슨 수작이지? 내 가슴은 두근두근 요동치기 시작했다.      


“왜왜, 무슨 일로...?”

“<자객>말이에요... 진짜 내가 하는 거 반대예요?”      


내가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어떤 작품을 하면 좋겠어요? 내 팬이라니까.”

“멜러요.”      


내 말에 정지우는 아주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다리를 꼬았다.      


“난 뭐 독특한 시각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엄청 뻔하네... 젊고 비주얼 좀 되는 배우한텐 왜 멜러만 강요하지?”      


지긋지긋한 표정을 짓는 정지우. 나는 이때다 싶어 대답했다.      


“안주연 배우가 우리 회사에서 찍은 멜러 영화로 레전드가 될 겁니다. 아직 모르시겠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정지우가 의심의 눈초리를 하며 팔짱을 꼈다.      


“꿈에서 봤다고 치죠. 멜러가 어때서요? 신파 같은 멜러 말고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를 찾으면 돼요. <자객>처럼 예산 큰 영화 했다가 망하면 몇 년은 쉬어야 할 텐데.”

“와.... 악담을 하네.”

“아무나 멜러 찍어요? 지우씨처럼 이미지 좋고 외모까지 받쳐줘야 가능하지. 이미지 변신은 그 다음에 해도 되요.”

“<자객>으로 이미지 변신하면 되잖아요.”

“더 좋은 게 들어올 거라고요. 왜 이렇게 조급하지?”      


정지우는 내 말에 충격받은 듯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조급하다고...?”      


갑자기 상대가 말이 없어지자 불안해졌다. 정지우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는데,      


“여기서 준비 중인 멜러가 있어요?”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더욱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정지우.      


“내가 출연하면 <자객>이 투자될 텐데 반대하고, 준비 중인 멜러 영화도 없으면서 멜러를 권한다? 영화사 직원이 회사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대체 의도가 뭐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모든 게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자객>을 찍고 난 후 몇 년이나 영화도 못 찍고 스트레스에 시달릴 당신을 위해서.... 라고 말할 뻔 했다. 회사를 위해서도 <자객>은 안 들어가는 게 좋고.   

    

“지우씨를 좋아해요.”

“네에?”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정지우의 눈이 당황해 커다래졌다.      


“무 무슨 소릴...”

“순수하게 팬의 입장에서 한 말이라고요.”      


내가 진지하게 쳐다보자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짓는데.       


“믿어보죠. 갈게요.”

“네?”      


갑자기 손 흔들고 나가버리는 그가 황당해 멍하니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로비에 나타난 오PD가 정지우를 발견하고 애교 있게 인사한다. 그가 홍보실에서 나오는 걸 알곤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하는데. 그 눈빛에 찔려 죽을까 봐 황급히 몸을 돌려버렸다.


*     


“왜 갑자기 말을 바꿔---!!”      


장대표가 버럭 화를 내자 마치 코뿔소가 들이받으러 오는 것 같고, 반달곰이 덮칠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분을 느끼는 정지우의 매니지먼트사 지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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