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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반드시 혼자해야 한다

by 선홍


걷기를 좋아한다. 웬만하면 혼자.

카페도 '혼카페', 혼자 드로잉일기를 쓰거나 글 쓰길 즐긴다.

단골 카페사장님이 봤을 땐 남자 친구 없이 혼자 나이들어가는 여자로 보이겠는데.


그렇다면 아주 조용하고 내성적일 것 같지만 그 반대, 수다쟁이에 목소리도 큰 편이다.

외로움도 잘 타서 같이 걷고, 대화 나누고 싶은 마음도 많지만 생산적이지 않아서 안 할 뿐이다. 생산적이라니, 대체 뭘 만들길래?


다들 그렇겠지만 요즘 내 시간을 가장 많이 뺏어가는 것은 유튜브와 알고리즘의 세계다.

집안일, 읽어야 할 책들이 산처럼 쌓여있는데, 끊임없이 유혹하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온갖 시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몇 시간이 훅 날아가있다. 시계를 볼 때마다 '엥, 벌써?'하고 당황하는데.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생산하는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생각을 한 줄이라도 일기에 쓰려고 노력하는데, 일기조차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당황하지 말자, 나에겐 산책이 있으니까.


유튜브나 ott 시리즈를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날이 너무 더워서, 날이 너무 추워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간이 너무 늦어서 등등 온갖 핑계를 찾아대다가 정신 차리자며 부랴부랴 산책에 나선다.

현관문까지의 심리적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아오, 귀찮아, 투덜대며 길을 걸으면 어느새 잘 나왔네, 싶다. 손바닥만 한 화면을 뚫어지게 보느라 억눌린 시신경과 굳어진 어깨, 팔, 허리를 바로 세우니 숨 쉬는 것 같다.



비록 간단한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기는 오늘날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걱정들을 잠시 멈추게 해 준다.
두 발로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걷기 예찬> 중



내 두 발로 땅을 밟는 동안, 옆을 휙휙 지나치는 사람들의 섬유유연제 냄새, 화장품, 땀냄새와 개천의 물비린내, 비가 몰려오는 냄새, 스치는 풀냄새가 감각을 열어준다.


머릿속에 뿌옇게 떠다니는 생각들이 가라앉고, 중요한 것이 위로 떠오른다. 메모지를 보지 않고도 내일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기억난다. 이것이 혼자 걷는 게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둘이 걸으면 내 머릿속 생각은 할 틈 없이 상대에 맞춰 중요하지 않은 세상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테니까.

이런 시간이 없다면 알고리즘의 노예로 살고 있다고 자부해야겠지.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단체로, 심지어 둘이서 하는 산책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만다. 그것은 산책이 아니라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다. 도보로 하는 산책은 반드시 혼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계속하여 가거나 이쪽으로 가거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걷기 예찬> 중



혼자 걷는 시간이 자유라는, 산책에 대해 이보다 잘 표현한 책이 있을까.

카페에서 '걷기 예찬'을 읽다가 이 순간을 기록한다. 책을 그리고, 감명받은 문구를 한 두줄 정도 쓴다.

이 정도로도 그냥 읽고 지나치는 것보다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드로잉일기


카페 고즈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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