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홍대병', '명동병'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홍대병은 남들이 다 좋아하는 주류 문화에 반감을 갖고,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병입니다.
명동병은 홍대병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유행과 트렌드를 무작정 따라 하는 태도를 말해요. '남들이 다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는 심리에서 비롯됩니다. 자신만의 취향보다는 대중적인 흐름에 편승하여 안정감을 얻는 거죠.
저는 보고 싶은 영화가 천만이 되면 보기 싫어지고, 유명하지 않지만 내 취향인 단골카페, 식당에 사람이 많아지면 가기 싫어져요. 홍대병의 증상이겠죠. 감기에 걸려도 최신유행 감기에 걸린다고 농담합니다.
남 따라 하기 쉽고, 트렌드에 예민한 일을 했던 2,30대 때는 증상이 훨씬 심했지만 반백살이 되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일을 그만두기도 했고, 의미 없는 과시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였죠. 나이가 들면 이런 좋은 점도 있습니다.
거침없이 흐르는 소중한 시간 앞에 의미 없는 것 말고 엑기스만 남기고 싶어 집니다.
그런 제게 아들은 참 신기한 존재였어요.
홍대병과 명동병을 왔다 갔다 하는 저에 비해 아들은 그냥 모든 것에 무심해요.
직접 가서 돈을 쓰지 않더라도 트렌디한 장소, 음식, 음악, 영화, 드라마에 대한 정보가 귀에 들어오는 저에 비해 20대인 아들은 온 세상의 MZ들이 환장하는 아이돌에도 관심이 없어요.
맛있는 음식, 핫플, 이성에도 당연히 무심.
어쩜 저리 나와 다를까, 내 뱃속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 같습니다.
너 같은 애들만 있으면 자본주의가 망할 것 같다고 농담하는데, 요즘 세대의 특징일까요? 사람보다 컴퓨터 속 세상이 편하고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사람하고 놀아야지, 혼자 방에 있는 게 더 좋다는 아들이 걱정됐습니다. 서로가 이해가 안 된다며 언쟁하기도 했고요.
MBTI, 별자리, 애니어그램 등 사람을 분류하게 된 이유는 한 가지에 편향하지 말고 두루 갖추면서 성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달라도 너무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도 있겠죠.
내가 낳았으니 자식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착각이 아들의 솔직한 대꾸에 여러 번 마상을 입으면서 깨어졌고, 이젠 나와 다른 존재, 타인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20대 때 난 친구가 없으면 불안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그것조차 연연하지 않는 아들이 나중에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친구 사귀어라, 잔소리를 계속하는 동시에 그런 태도가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트렌드, 소비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재미없어, 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여 끌리거든요.
어느 날 아들을 방밖으로 끄집어내려고 너도 친구 없고 나도 없으니 같이 데이트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웬일로 순순히 나오길래 뭣 때문에 응했냐고 물어보니 계속 귀찮게 할 것 같아서 그랬답니다. 에구구...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은데 아들은 그냥 가자, 사지 마,라며 끌고 가버립니다. 덕분에 지갑 사수 한번 잘-하고 왔습니다.
이후로도 가끔 아들과 데이트를 갑니다.
내 옷자락 꼭 붙잡고 다니던 귀여운 아이에서 이젠 무관심한 표정으로 날 따라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소통이 안 되지만 계속 대화를 걸고 이것저것 어땠냐 물어보죠. 귀찮아하는 아들이 퉁퉁거려도 계속 말을 겁니다.
나밖에 모르던 인간에서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생각하고, 좋아하게 됐으니까요.
자식이란 존재가 이렇게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