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힘들고 지칠 때 중드(중국드라마) 보는 걸 좋아해요.
신과 요괴, 인간이 얽히고 얽혀 요즘의 인간들과 똑같은 욕망에 시달리고 성장하는 선협물, 판타지 로맨스나 궁중암투극을 즐기지요.
판타지로 극대화된 세상에 빠져있으면 내 고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이 편리한 현대 문명을 누리며 내일 하루도 잘살아볼까? 하는 마음까지 들죠.
30화 넘는 긴 분량도 제게는 장점입니다. 빨리 돌리기도 안 하고 정주행을 해서 보는데, 그래야 가상의 세계가 내가 아는 세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거든요.
<장상사>는 시즌2까지 하면 총 62회의 긴 분량이지만 회전문을 예고하는 매력적인 스토리로 꽉 차 있어요. 신족과 요괴가 공존하는 세상이지만 판타지 수위를 잘 조율해서 그런지 그냥 인간사 같습니다.
왕의 손자, 손녀들이지만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신족인 사촌오빠와 여주인공 '소요'가 중심인물이에요.
'소요'는 부모를 잃고 불행한 사건들로 이별을 계속 겪으며 평생소원이 단 하나, '평생 나를 버리지 않을 단 한 사람의 동반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신분이 복권되어 돈, 권력이 손에 잡히는 곳에 널려있어도 거기엔 관심이 없어요.
단 하나의 사랑을 찾지만 그에게 찰거머리 같은 약혼자가 붙어 당최 떨어지질 않는 겁니다. 약혼자에겐 나쁜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소요가 죽임을 당하는 사건도 생깁니다! 진짜로요, 무려 주인공인데.
소요와 남자와의 마음은 진심에 진심인데도 계략에 빠져 그 사랑이 소요를 배신하게 되고, 그 남자까지 죽임을 당하죠!
아아, 스트레스받지 맙시다, 주인공들은 신족이라고 했잖아요. 쉽지 않지만 다시 살려낼 방법이 있어요. 다행히 해피엔딩이고요.
아니, 돈도 직업도 안 따지고 평생 나만 바라줄 남자 하나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나요?
돈에 권력까지 있는데 왜 동반자 한 명 찾는 일에 그렇게 목을 맬까요?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에 빠졌습니다.
신족들은 몇 백 년을 살기 때문에 돈과 권력에 목숨 거는 일이 허망하다는 걸 알만큼 지혜롭기 때문일 수 있겠죠.
또는 주인공 소요는 고귀한 신분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평생의 동반자'라는 단 하나의 결핍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소요의 모습을 보며, 저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은 어쩌면, 가진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저는 소요와는 반대로 작가로 성공해야만 스스로가 가치 있고, 남에게 당당하다고 믿으며 14년을 매달렸습니다.
정작 옆에는 묵묵히 저를 지지하는 가족이라는 가장 귀한 동반자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외부의 인정이라는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느라, 지금 가진 소중한 일상을 놓쳤습니다.
그 고통은 성공이라는 욕망을 채우지 못했다는 좌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욕망을 채웠다면 행복했을까요?
드로잉을 시작한 후 알았습니다.
드로잉은 저에게 경쟁과 성취를 잠시 멈추고 눈앞의 평범한 커피잔에 집중하는 '멈춤의 기술'을 선물했습니다.
욕망의 질주를 멈추고, 잠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비로소 평온이 찾아온다는 것을요.
누군가의 인정 대신, 내가 매일 그리는 이 커피잔 속에 담긴 기록이야말로 14년 실패 전문가의 가장 강력한 구원입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은 후 소요는 꿈에 그리던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을 유람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 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은 후 알게 되죠. 당신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장상사'에 나온 남주급 배우가 3명이나 되고, 각기 다른 매력을 어찌나 잘 연기했는지, 이 드라마 이후 다 스타가 됐죠. 잘생긴 외모는 덤입니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날씨, 흥미진진하고 가슴 아픈 판타지에 빠져보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