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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지박령이 둘이나 있습니다

by 선홍


뭔 잡귀 같은 소리 하고 앉았냐고요?

진짜예요. 집에 지박령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어요! 어린 존재와 나이 든 존재 둘입니다.

지박령 심기를 항상 살피느라 집에 있고 싶어도 나가야 하고요, 밥상도 매일 올려야 합니다. 밥을 참 좋아하거든요.


쫓아낼 방법도 모르겠고, 나 또한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으니 평생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죠.

존재가 아무리 신경 쓰여도 '혼자 잇고 싶으니 나가시오!!'라고 소리치면 절대 안 됩니다.

또 하루라도 밥상을 안 차려놓으면 괴롭히기 때문에 밥상에 뭘 올릴지 고민해야 하죠.


그래도 전 행복합니다. 심심할 겨를도, 게으름 피울 여유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하루 종일 할 일이 있지 않으면 더 빨리 늙는 법이죠.


사람이란 참 우습죠. 지박령이 막상 나가봐요, 매일 밥상 차리던 루틴이 필요 없어지고,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면 얼마나 공허할까요.

알면서도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찾고... 어떡합니까, 달관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을.

다 제 탓이죠.


그래도 20년 넘게 공존한 결과, 할 말 안 할 말 구분하고, 타이밍이 몸에 습관으로 배어 그럭저럭 잘 돌아갑니다.

물론 호시탐탐 쫓아낼 기회를 엿보긴 하죠.


신기한 게 어린 지박령은 있을수록 좋은데, 나이 든 지박령은 없으면 찾게 되고, 있으면 거슬려요.

어린 존재의 동선은 규칙적이라 예측이 쉽습니다. 그런데 나이 든 존재는 새벽까지 안 자다가 어떤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꼼짝을 안 할 때도 있거든요. 어쩌란 건지.


있을 때가 좋을 때라는 건 저도 알아요.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지박령도 저도 언젠가 이 집을 떠나겠죠. 그래도 쉽지 않은 걸 어떡해요.


지박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 지면에나마 적으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여보, 아들아, 집에서 좀 나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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