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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에 한번 보자' 좀 그만하면 안 될까

by 선홍


연말에만 문자 보내오는 지인이 있었다.

'XX작가님, 내년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시간 날 때 한번 봬요, 블라블라...'

영화사 다닐 때 거래처로 만난 인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매너까지 있어 대화 나누면 취향은 안 맞아도 즐거웠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인연이라도 회사로 만난 인연은 회사를 그만두면 끊어지는 법.


처음엔 날 기억해 준 게 너무 기뻐서 얼른 답장을 했지만 솔직히 연말에만 문자로 인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형식적인 인사를 나눌 필요가 있나?


한 해를 돌아보고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떠올려주는 건 고맙다. 솔직히 회사 다닐 때 인맥관리차원에서 나도 보내곤 했으니까.

보고 싶은 진심도 있겠으나 담에 같이 일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리하는 느낌이 들어 별로다.

그리고 진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장 약속을 정하면 될 일이지, 담에 밥 한번 먹어요, 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 없이 대화 끊기보다 그 말을 마무리멘트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배우 이병헌이 임시완에게 그렇게 했다가 호되게 당하지 않았던가.

(이병헌이 인사차'언제 한번 밥 먹자'라고 임시완에게 말했다가 당장 '언제요? 어디서요? 저는 이때이때 괜찮아요'라고 해 어쩌다 이병헌 집까지 가게 됐다는 썰, 큭)


나도 그런 말을 들으면 알면서도 흘려듣지 못한다. 상대가 담에 만나자고 했는데 만날 약속 정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너무 고지식한가?


상대와 해마다 같은 인사를 나눌 때마다 반가움보다 왠지 모를 불편함이 커져갔다. 몇 년이 지나도 안 보면서 만나자는 인사를 하기가. 그러다 상대가 더 이상 문자를 보내오지 않자 휴, 안도감까지 들었는데.


그럴 맘이 없다면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아 달라.

진짜 만날 마음이 있다면 아래와 같이 말해주라,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드로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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