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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소통의 시대, 아들과 밥을 먹습니다

by 선홍


​요즘 대학생들은 혼자 밥 먹는 게 일상이라더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아들 이야기다.


​캠퍼스의 낭만이라 불리던 선후배 간의 술자리나 동기들과의 왁자지껄한 모임은 옛말이 된 지 오래란다.

밥 한 끼 먹고 나면 계산기 두드리듯 정확하게 '1/N'을 해서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쿨한 룰. 하지만 그 쿨함 뒤에는 고물가라는 팍팍한 현실이 버티고 있다. 밥값에 커피값까지 더하면 만남 자체가 곧 '비용'이 되는 세상이다.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렸다.


내가 대학 다닐 땐, 빈시간만 나면 '과방'에 죽치고 앉아있다가 선배만 보이면 밥 사줘, 술 사줘, 뭐 맡겨놓은 사람처럼 당당하게 외쳤었다. 선배가 안 보이면 동기라도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졌었고.

그러니 뺀질이 선배들은 과방에 잘 오지 않았고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는 호구 같은 선배만 놀러 왔다. 자연스럽게 그 밥에 그 나물, 비슷한 멤버만 모여지긴 했지만.


요즘 대학은 그래서 그런가 신입생과 선배를 매칭해 밥술시간 갖게 하더라. 모르는 사이에 맞선자리처럼 마주 앉아 대화 나누는 게 쉬울까 싶다. 물론 그런 자리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어디 돈 문제뿐인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속에는 세상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타인과 감정 노동을 하느니, 방구석에서 유튜브를 보는 게 훨씬 '가성비' 좋은 휴식이라 여겨진다. 교류와 소통이 사라진 자리는 그렇게 고립감이 채운다. 우울증을 앓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닌데.


​엄마로서 겁이 난다. 나이가 들면 있던 친구도 하나둘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가장 부담 없이, 가장 순수하게 평생지기를 만들 수 있는 대학 시절마저 이렇게 홀로 보낸다면, 이 아이의 30대와 40대는 얼마나 더 외로울까.


​"내일 휴강이지?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불쑥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귀찮아할 줄 알았던 녀석이 의외로 순순히 따라나섰다. 공짜 밥이 그리웠던 건지, 아니면 혼자 있는 시간도 지겨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말없는 아들과 나란히 걸으며 세상을 본다. 동네를 걷다가 맛있는 걸 먹고, 카페에 마주 앉아 녀석이 관심 가질 화두를 던져본다.

남들이 보면 엄마랑 다 큰 아들이 무슨 '영혼의 대화'라도 나누나 싶겠지만, 실상은 별것 없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 이야기, 학교 학식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잡담들이다. 길게 물어도 돌아오는 건 단답형일 뿐이고.


​하지만 나는 안다. 스마트폰 액정 너머가 아닌, 사람의 눈을 보고 나누는 이 온기가 얼마나 귀한지를.

친구 맺기가 두렵고 만남이 숙제가 되어버린 시대.

비록 엄마라는 뻔한 이름이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아들의 가장 친한 밥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밥을 먹고, 마음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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