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그녀가 행복한 이유
첫 한 달 동안 우리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고, 결국 나는 우리가 계속 함께 할지 말지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나서 알렌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바뀌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고,
나의 의견을 먼저 구했다.
서로 한 발짝씩 이해하고 양보하다 보니 우리 집엔 평화가 찾아왔다.
일 할 때나 아이들 가르칠 때 휴대폰 사용은 금지였지만
설거지할 때 심심하지 않게 노래를 들으며 즐겁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우리의 규칙은 기본은 지킨 채로 서로에게 더욱 여유 있게 바뀌었다.
어느 날 미스 알렌이 유난히 행복해 보이던 날의 대화다.
나: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알렌: 그냥 어쩐지 내가 럭키한 것 같아서
나: 왜?
알렌: 내가 학교에서 만난 우간다 사람이 있거든 근데 정말 웃긴 얘기를 들었어.
나: 무슨 얘기! 궁금해
알렌: 그 사람은 아랍계열 사람의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야. 근데 글쎄 그 집 마담이 이 여자에게 무슨 요구를 한 줄 알아?
나:???(무척 궁금)
알렌: 집 안에서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지 말고 걸으랬대.
나: 왜? 걸음걸이가 무슨 문제야?
알렌: 남편을 유혹할까 봐 겁내고 있대.
나: 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못살아, 미스 알렌 당신은 걸을 때 춤을 춰도 우리 집에서는 무한 허용이야.
우리는 이 날 깔깔 웃고 넘어갔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통제하려 하는 집이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다른 집에서 일하는 많은 메이드들은 사람 대 사람으로 대접을 받기보다는 하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아랍 사람들은 대가족이 많은데 적게는 3명 보통 5명씩 낳다 보니 어떻게 키우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과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
가끔 보면 각 아이마다 돌봐주는 사람이 한 명씩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녀들은 그들이 한 끼 식사를 하는 비용을 월급으로 받으며 생활한다. 그리고 밖에서 마주한 그녀들의 모습은 가족들이 즐겁게 외식을 하거나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동안 아이를 따라다니며 돌보는 것이었다. 물론 같이 섞여 앉아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함께 마시는 여유는 없다.
알렌을 처음 만날 당시 6살, 9살이었던 남자아이들은 눈치가 빤해서 금방 서열을 파악할 것이고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서의 미스 알렌은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떠나 아이들 교육까지 돌봐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위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인으로서 어른을 공경하고 하는 문화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가르치고 싶었다.
여차하면 남의 도움을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혹은 너무 버릇 없어져서 아이들을 망칠까 걱정되었다.
우리는 Sir, Madame, 혹은 Ma'am이라는 호칭과는 다르게 불리길 원했고, 우리 가족이 모두 그녀를 부르는 호칭은 "미스 알렌"이다. 한국어 느낌으로 보면 "알렌 씨"라고 부르는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 물론 그녀도 나를 "미스 썬"이라고 부르고, 남편의 호칭은 "미스터 리"다.
우리는 그녀에게 급여를 제공하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그녀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일 뿐 일과 관련 없는 것들에 대해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녀는 우리 가족의 식사 준비를 돕지만 식사는 그녀가 원하는 한 같은 식탁에서 함께하고(미스 알렌의 방에는 그녀의 테이블이 있다.) 함께 외식이나 차를 마시러 갈 때면 친구와 같이 대우한다.
미스 알렌이 집안일을 돕지만 자기가 어지른 것은 자기가 치우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담가 놓는다. 뭔가를 부탁할 때는 젠틀하게 한다.
그녀를 만날 준비
아이들에게는 미스 알렌이 오기 전부터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사람은 엄마를 돕고 우리 가족을 도와주기 위해서 온다는 것, 그녀에겐 너희만 한 딸이 있고, 누군가의 엄마라는 것을 미리 이해시켰다.
우간다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서 배우고, 나와 남편이 하는 것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울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아랍에 왔을 때 어울렸던 한 영국 엄마가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였는데, 이상하게도 맥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마치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영국 엄마도 함께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전혀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고 하고 멍하니 있는 나를 알아챈 맥스 엄마는 중간에서 통역을 시작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 내용을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수준으로 쉽게 바꿔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그마저도 내가 못 알아듣고 "미안해,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는 "나도 한국어 못해"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우리에게도 미스 알렌이 낯선 것처럼
그녀도 우리가 낯설다.
낯선 아랍 땅에서, 낯선 아시아 사람들과 살게 된 그녀를 우리가 배려해 줄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해주면 끝도 없다고, 계속해서 바라고 또 바란다고 언젠가는 선을 넘는다고
그래서 처음엔 나도 엄격한 규칙으로 선을 긋고 남들은 이렇게 하는데, 저렇게 하는데 비교도 했었다.
그녀가 성에 안차게 느껴지던 날 다른 집 메이드와 비교하는 나에게 미스 알렌이 한마디 했다.
"당신은 그들이 아니잖아요."
맞다 나는 그들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만의 규칙이 있다.
굳이 다른 이들의 잣대를 우리 집으로 끌고 들어올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