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여행기 프롤로그
포틀랜드는 미국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시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 특별한 도시를 묘사하는 수식어는 제법 다양하다. 힙스터의 성지, 커피와 맥주가 흐르는 도시, 킨포크(Kinfolk) 잡지의 탄생지, 비의 도시 등등. 포틀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 자리 잡은 도시임과 동시에 가장 작은 공원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도시 안을 걷다 보면 "Keep Portland Weird"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포틀랜드의 독특함과, 그 독특함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현지인들의 마음이 잘 반영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포틀랜드와의 인연이 있는 친구들이 제법 많다. 포틀랜드로 여행을 떠나 멋진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온 친구는 물론 포틀랜드에서 나고 자란 친구, 포틀랜드에서 학교를 다닌 친구, 심지어 잡지에서 포틀랜드에 관한 글을 읽고 무작정 포틀랜드로 떠나 몇 년째 잘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포틀랜드에서 시간을 보낸 이들이지만 포틀랜드를 향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모두 포틀랜드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도시의 활기를 만끽할 수 있으면서 멀리 가지 않아도 눈이 탁 트이는 자연을 찾을 수 있는 곳, 포틀랜드 고유의 것을 선호하는 주민들의 성향으로 스타벅스보다 로컬 커피숍이 훨씬 많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름이 이상함이 되지 않는 곳이 포틀랜드라고 했다.
덕분에 떠나기 전부터 나의 기대감은 필요 이상으로 상승해 있었다. 도대체 이 낯선 도시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칭찬 일색인 건지 궁금했다. 그 호기심 속엔 과연 얼마나 좋은지 보자 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 같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운 좋게도 일 년 중 가장 (또는 유일하게) 날씨가 화창하다는 시기에 나는 드디어 첫 포틀랜드 여행을 떠났고, 나의 의구심은 보기 좋게 강타당했다. 여행 첫날 해가 저물기도 전에 포틀랜드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커피와 맥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곳은 마치 단맛에 막 눈을 뜬 어린아이에게 사탕가게 같은 곳이었다. 그뿐인가. 잠깐 보고 나오려다가 세 시간이나 눌러앉아 있었던 파월 서점, 종류도 다양하고 개수도 많은 온갖 먹거리들은 3박 4일을 실제보다 짧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신기한 물건들이 잔뜩 진열된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기웃거리는 재미도 쏠쏠한 게 마치 도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이 모든 것을 관광객에 치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에는 크게 와 닿지 않던 친구들의 포틀랜드 예찬론에 조금씩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포틀랜드는 천국도 유토피아도 아닌 어느 사람 사는 도시일 뿐이다. 뉴욕처럼 세계적인 명물이 온 도시에 퍼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근방에 있는 시애틀에 비해서도 훨씬 규모가 작은 것이, 냉소적으로 생각하면 조금 따분한 곳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틀랜드에 연정을 품은 건 매일 느끼고 싶은 소소한 즐거움이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화려하고 번쩍이는 도시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쉬움을 뛰어넘는 편안함이 있는데, 포틀랜드에서는 이미 내 집 같은 안락함이 느껴졌다. 미국 여러 도시들을 기웃거려 봤지만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곳을 포틀랜드가 처음이었다. 지난 6년간 포틀랜드의 집값이 2배 이상 상승하고, 인구도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첫 여행에서 지독한 상사병을 얻어온 나는 그 후 반년 간 두 번이나 더 포틀랜드를 찾았다. 그리고 여전히 포틀랜드는 내가 돌아가고 싶은 도시 일 순위다. 세찬 바람이 불던 겨울의 윌라멧 강변도, 추적추적 내리며 내 신발을 적시던 빗방울도 포틀랜드를 향한 나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언젠가는 포틀랜드도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서고 인위적인 관광상품이 즐비한 평범한 도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오래 이상하고 유별난 동네로 남아줬으면 하는 작고 이기적인 바람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