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새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7월 중순부터 임시전구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집을 오가며 당장 필요한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준비했다. 7월 말에 바이에른 주 다락방에 있는 나머지 짐 절반을 가져오면서 파트너 가족의 트럭을 빌려 짐을 옮기고, 중고거래로 산 원목가구를 날랐다. 오랜만에 구경 간 이케아는 몇 년 전보다 품질이 더 낮아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건지, 내 눈이 높아진 건지 모르겠지만 이케아가 아닌 가구와 살림살이의 가격을 알아보다가 왜 이케아가 그렇게 미어터지는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중고 원목 가구
다행히 베를린은 오래된 물건과 중고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목으로 된 침대, 식탁, 책꽂이, 선반, 책상 등을 찾았는데 중고거래도 보통 일이 아니다. 판매자랑 연락하고, 그 집으로 찾아가서 물건을 확인하고, 가져오는데 은근 시간이 든다. 안 가본 동네와 남의 집 구경은 재밌지만, 물건이 크면 차를 빌리고, 무거운 걸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린다. 베를린에는 카쉐어링이 잘 되어있어 차를 빌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기껏 갔는데 별로라 빈손으로 돌아올 때면 시간을 낭비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산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하는 것보다는 낫다. 마음에 드는 중고물건을 찾기 어려운 주방이나 옷장은 이케아에서 샀다.
직접 주방 조립하기
주방을 사는 게 무슨 말이냐면, 독일은 새집에 주방이 없다. 전에 살던 사람이 해놓은 주방을 살 수도 있고, 집주인이 주방을 해놓은 경우도 종종 있지만 주방 없는 집에 들어가 알아서 주방을 해 넣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처음에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지 어이가 없었지만 집을 보러 다니며 못생긴 서랍장과 성능이 떨어지는 냉장고나 식세기가 이미 설치된 주방들을 보면서 어차피 오래 살 거라면 마음에 드는 주방을 해서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독일은 웬만하면 따로 기한이 없는 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땅층 할머니랑 얘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 우리 집에 살던 땅층 할머니의 자매는 여기서 39년을 살았다.
주방은 이케아에서 도움을 받거나, 주방회사를 거쳐 설치하거나 직접 설치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케아 키친 플래너나 주방회사를 거치면 그 회사의 스케줄에 따라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우리는 집밥을 먹어야 하는 애들이므로 주방은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적어도 싱크대랑 인덕션은 완성하기를 목표로 이케아에서 주방을 주문하고 픽업했다. 주방의 크기와 모양과 수도관, 가스파이프의 위치가 집마다 다른데 우리 집은 오래돼서 파이프가 밖으로 나와 있었으므로 깊이가 이케아 주방작업대보다 깊어야 했다. 나무를 전문으로 파는 커다란 철물점인 홀스포슬링스에 가서 주방작업대를 골라 사이즈에 맞게 절단을 주문하고, 미세한 흠집이 있어 약간 저렴하게 파는 전자제품 매장에 가서 냉장고, 식세기, 오븐을 따로 샀다. 그곳에 인덕션은 없어 다른 전자제품 매장에서 따로 샀다.
이케아 주방의 다크 그린 문짝은 픽업이 불가능하고 집으로 배송만 가능했다. 배송비가 십만 원이 넘었다. 그러나 다른 색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문짝은 주문하고 이케아에서 픽업한 하부장을 조립하고, 작업대를 설치하고, 벽에 고정하고, 싱크대와 인덕션이 들어갈 구멍을 뚫는 걸 파트너랑 이미 주방을 몇 번 설치해 본 친구가 했다. 독일은 인덕션 연결을 전기공이 하지 않으면 보험처리가 안된다고 한다. 마침 파트너 친구 중에 전기공이 베를린에 놀러 와서 잠깐 들러 인덕션과 오븐을 연결해 주고 유유히 떠났다. 그때까지는 주방설치를 도와준 친구가 빌려준 1구짜리 휴대용 전기레인지를 썼다. 7월 말에 파트너는 빌린 트럭을 돌려주러 바이에른에 다녀왔고, 나는 집 정리를 했다. 정리, 정돈, 필요한 것 고르기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매일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집을 보는 건 재밌었다.
이사에 휴가를 쓴 파트너는 이사 오고 일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연한 내가 필요한 것들을 온라인에서 찾아서 보여주고 둘 다 마음에 드는 것을 사기, 주방 하부장의 서랍과 선반과 문짝 조립하고 달기, 이케아 가구 조립하기, 껍질까지 붙어있는 원목 선반 틈 메우기, 사포질 하고 아마씨유 바르기, 가구에 우드스테인 바르기, 금속용 실톱으로 샤워커튼 봉 자르기 등등 집 꾸미기에 필요한 일들을 했다. 높이가 3미터가 넘는 천장에 조명달기와 벽에 구멍 뚫기는 파트너가 담당했고, 키가 큰 옷장은 같이 조립하고 설치했다. 철물점에서 산 사다리에 올라도 간신히 천장에 손이 닿는 높이라 파트너가 조명을 다는데 땀 좀 흘렸다. 거의 매일 택배가 왔고, 쓰레기가 엄청 나왔다. 이사 오고 문제가 있어 건물 종이쓰레기통이 항상 꽉 차있어서 차를 빌려 쓰레기장에 가서 쓰레기를 서너 번은 버렸다.
벌써 집 유지보수
주방 벽에 타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해본 우리가 해야 하나,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관리자에게 물어봤더니 집주인이 해준다고 했다. 근데 한쪽면만. 한쪽에서는 물이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요리를 하는데 두 쪽 중 어디를 해줄 거냐고 물으니 물 나오는 곳으로 하란다. 그래서 다른 쪽은 타일기사가 왔을 때 우리가 낼 테니 해달라고 했다. 그는 한쪽만 하라고 해서 타일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부는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덕션이 있는 쪽 벽은 요리하는 부분만 했다. 아직도 그 돈을 달라고 안 하는 걸 보니 그냥 해준 것 같다. 침실 문, 주방 문, 화장실 문이 닫히지 않아 관리자에게 말하니 며칠 뒤 페인트칠한 사람들이 와서 거실에 페인트 덧칠해야 하는 부분을 칠하고, 문과 연결고리의 페인트를 긁어내며 문을 닫히게 만들었지만 주방문은 결국 닫히지 않았다. 집이 오래돼서 바닥도 고르지 않고 벽도 기울어지는 바람에 닫히지 않는 것이었다. 페인트칠하는 사람이 말하길 이 집은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일 년 넘게 빈집이었으며 때문에 처음 히터를 틀 때 이상한 소리가 날 수 있다고.
며칠 뒤 커다란 공구통과 장비를 손에 든 젊은 여자가 주방문을 고치러 왔다. 민소매 티셔츠 위에 조끼, 카고 바지 위에 공구주머니를 달고, 어깨까지 오는 얇은 머리카락을 반만 묶고,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한 목수라니. 담배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더니 단단한 손과 팔뚝으로 커다란 주방문을 요리조리 살피고, 번쩍 들어 바닥에 눕히고, 경첩을 떼었다가 다시 달고, 문을 끼워서 닫히나 보고 수정하는 걸 반복했다. 놀랍고 신기하고 멋있어서 옆에서 일하는 걸 관찰하고 이것저것 물어도 보았다. 문과 벽이 많이 휘어서 고치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완벽하게 닫히진 않지만 어쨌든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었다. 들어올 때부터 신발에 부직포를 씌우고, 깎아낸 자리에 페인트를 바르고, 청소를 깨끗하게 한 작업자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자기가 바르는 건 베이스라 페인트칠하는 사람들이 와서 덧칠해야 된다며 오늘 했던 모든 것을 종이에 적고 나서 떠났는데 페인트칠하는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우리 집 창문은 전부 나무창문 두 겹으로 되어있는데 화장실은 한 겹이다. 전에 리모델링하면서 화장실을 나눈 모양이라 이웃집으로 향하는 벽을 믿을 수 없고, 화장실이 좁고 길다. 아무튼 화장실 창문이 한 겹뿐인데 그마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내가 집에 없을 때, 같은 목수회사에서 남자목수가 왔었다. 그날 저녁에 파트너가 작은 빗자루랑 쓰레받기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다. 그 목수가 빗자루는 있는데 쓰레받기가 없었다고. 그리고 그냥 벽 부분을 칼로 잘라내고 창문이 닫히게만 해놓았다고 했다. 뭔가 싸했다. 화장실로 달려가 창문을 열었더니 칼로 대충 잘려 돌 벽이 드러난 벽지와 창가와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가 보였다. 무슨 일처리 이렇게 하고 갈 수 있는지? 이따구로 하고도 돈을 받는지? 화가 치솟았다. 다음날 얼마 전 철물점에서 사 온 빈틈을 채우는 굳으면 단단해지는 실리콘 비슷한 것을 채워 넣어 그나마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