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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Feb 21. 2019

하루 종일도 부족한 베르사유 궁전

32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

하루 정도는 파리 시내를 들어가 볼 것인가, 다른 근교 도시를 하나 더 볼 것인가, 많이 고민했다. 고민 끝에 온종일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을 여유롭게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여행 32일 차, 마무리를 하는 날이다. 다음 날 부모님이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일정이었다. 궁전도 천천히 보고, 정원도 유유히 다니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자고 생각했다. 심지어 넓은 공원 어딘가에 우리도 자리 잡고 앉아 피크닉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유유자적 쉬자는 그 목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베르사유는 너무 크고 넓었다. 구경 욕심 많은 우리 가족은 기어이 그 넓은 궁전을 힘닿는 대로 최대한 구석구석 다니고 말았다. 정원 어디 한가롭게 앉아 즐길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저녁 즈음에는 체력의 한계를 경험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8시간 동안 궁전과 별궁을 돌아다녔다. 본궁과 두 트리아농을 다 보고 나니 정원 분수나 보트놀이에는 눈길 줄 체력도 여유도 잃고 겨우겨우 걸어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2일권도 판다. 궁전도 충분히 보고 정원에서 여유롭게 피크닉도 하겠다는 여행자라면 이틀은 필요할 것 같다.

베르사유 궁 입장 시간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땡볕에 하염없이 줄을 서야 한다.

아침 10시경에 주차장에 차를 댔다. 베르사유 궁전으로 행선지를 정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온라인 본궁 입장 예약이었다. 사전에 시간까지 정해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궁전 앞에서 기약 없이 줄을 서야 한다. 11시에 본궁 내부에 입장하는 것으로 예약을 해서 '패스포트'를 인터넷으로 사 두었다. 꽤 날짜 여유를 두고 샀기에 가능했던 입장 시간이다. 임박해서 사려면 맞는 시간이 없어서 결국 긴 줄을 서야 하는 모양이었다. 벌써 화려한 금박 대문 앞으로 줄이 늘어섰다. 땡볕 아래 지그재그로 끝이 없었다. 미리 예매한 딸 덕을 보시는 거라고 부모님께 엄청 생색을 내며 여유롭게 근처 정원을 구경하다가 입장했다. '패스포트'는 본궁과 두 트리아농은 물론이고 모든 정원과 분수쇼, 마차 박물관까지 포함하는 20유로짜리 종합권이다. 궁전 표만 사면 중앙 정원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이걸 사게 된다. 게다가 여름 시즌에는 대부분 날짜에 음악분수를 튼다는 이유로 7유로나 더 붙어서 일인당 27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대충대충 본다 해도 하루 안에 다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2일권이 30유로로 겨우 3유로 차이다. 하루만 보고 가는 여행자들에게 너무 심하게 장사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가족도 각각 패스포트를 샀고, 그래서 최대한 다 보겠다고 종일토록 열심히 돌아다니게 되었다.

금박 장식이 많은 베르사유 궁은 맑은 여름 햇살을 받아서 그야말로 찬란하게 빛났다. 화려함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베르사유 궁전은 나와 아빠는 두 번째였다. 나는 17년 전 대학생 배낭여행 때, 아빠는 더 오래전 어떤 출장길에 들르셨다고 한다. 사실 궁전 내부는 별로 새로울 것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너무 크고 무조건 화려하기만 하다는 기억이 남아있어서 큰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서 이어지는 방들마다 설명을 들으며 다니다 보니 새삼스레 흥미진진하고 다채롭게 보였다. 궁전이 새삼 바뀌었을 리는 없다. 오래되어 잊었던 것일 수도, 나이 들어서 시각이 바뀐 것일 수도 있다. 한국어로 되어 있어서 편하게 들린 오디오 가이드 덕분이기도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내부도 밝게 빛났고 황금이 아닌 부분들도 색깔이 살아났다. 관람 초반부 접견실이나 연회장 구역에 규모가 크고 화려한 방들이 몰려 있다. 새빨간 천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루이 14세의 침실도 나오고, 한 시간쯤 구경하다 보면 그 유명한 거울의 방 연회장이 등장한다. 규모와 화려함도 대단하지만, 이 구역은 관람객 인구밀도도 정말 대단하다. 베르사유를 짧게 보고 떠나는 사람들이나 단체 관광팀도 이 화려한 방들은 꼭 보고 가기 때문이다. 아빠가 처음 오셨던 옛날에는 개방된 구역이 이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훨씬 많은 방과 전시실이 관람 동선에 이어져 있다.


뒤로 갈수록 관람객 밀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나중에 나오는 작은 방들과 전시실은 꽤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공주들의 거처였다는 개인 취향 방들은 화려하면서도 갇혀 지내는 느낌이라 좀 안쓰럽기도 했다. 전쟁화를 모아놓은 전쟁 갤러리를 비롯해서 전시실도 많다. 프랑스혁명이 있었던 18세기 후반 이후로는 베르사유 궁전이 왕족들의 거처로 쓰인 적은 없었다. 19세기에 '프랑스 역사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해서 꽤 오랫동안 전시관으로 사용했다. 20세기 들어 다시 궁전으로 복원해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에 따라 주요 구역부터 다시 복귀시켰다. 지금도 복원 공사 중인 구역도 많다. 나중에는 다리도 아프고 화려함에 눈도 지쳐서 공사 중이라 못 보는 구역이 있는 게 다행스러웠다. 궁전 내 레스토랑에서 한 시간 동안 점심까지 먹어가며 볼 수 있는 만큼 자세히 보았다. 다리도 쉴 겸, 비싸도 앉아서 서빙을 받는 '안젤리나(Angelina)'라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먹었다. 스낵바처럼 간단히 먹는 곳이 더 사람이 많아서 궁전 속의 임시 대피소 같았다. 공주들의 가정교사였던 귀족 부인이 머물던 방이라는 설명이 붙은 아담한 식당이었다. 음식도 의외로 훌륭했는데, 하기사 베르사유 궁전에서 식당을 하면서 요리가 너무 볼품없어도 큰일이겠다 싶다.

본궁 왕실 채플 앞 퍼포먼스, 전쟁화 갤러리, 궁전 내 식당 '안젤리나'의 디저트

본궁 관람을 마치고 기특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반납하고 나오니 오후 세 시의 햇볕이 따가웠다. 도저히 정원을 걸어 다닐 수는 없고, 전동 카트는 대기가 많아서 꼬마기차를 선택했다. 그것도 줄이 꽤 길어서 땡볕에 이십여 분 서서 기다리는 게 꽤 고역이었다. 기차는 정원 내를 달리는 게 아니고 바깥으로 가기 때문에 정원 경치를 즐기는 의미는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트리아농 구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큰 본궁이 있는데도 이렇게 멀리 별궁을 또 지은 이유는 프라이버시 때문이었다고 설명을 한다. 즉 본궁은 아무리 골방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왕이 애첩이었던 부인들과 사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는 거다. 유명한 퐁파두르, 뒤바리 같은 부인들에게 '선물'하고 기거했다고 한다. 물론 멀어 봤자 정원 건너편이지만 그 정원이 너무 커서 마차로 와야 하는 격리된 구역이다. 따로 구획된 정원을 갖춘 그랑 트리아농은 그런 의미에서 작은 궁전에 가깝다. 긴 건물을 따라 색다르게 꾸민 방들이 이어져 있고 창문도 커서 채광이 좋다. 궁전 안에 갇혀있던 공주들 방보다 훨씬 천정도 높고, 개방적인 구조로 파티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랑 트리아농의 개방적이고 개성 있는 방과 정원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골집으로 잘 알려진 쁘띠 트리아농 일대는 원래는 루이 15세가 뒤바리 부인과 따로 지내면서 취미였던 식물 채집과 식물원 조성 용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루이 16세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물했고 그녀의 취향에 따라 상상 속의 시골 풍경으로 재조성 했다. '왕비의 마을(Queen's Hamlet)'이라고 부르는 가상의 시골 마을은 노르망디 지방의 시골 풍경을 본떠서 만들었다. 일종의 놀이동산이라고 할 수 있다. 쁘띠 트리아농 본관은 이름대로 작은 건물이고 기본적인 응접실과 침실이 그랑 트리아농보다는 훨씬 아담하고 소박했다. 궁에 비하면 일반 가정집(귀족 집)처럼 꾸며서 평범한 생활(?)을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 궁은 작지만 앙투아네트의 시골 마을까지 꽤 넓은 '영국식 정원'을 지나가야 한다. 그 영국식 정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문대로 조성되었다. 유명한 '사랑의 정자(Love Monument)'의 큐피드 조각상까지 그녀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시골 마을도 꽤 넓어서 그랑 트리아농보다 훨씬 오래 돌아다녀야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궁전을 갑갑해해서 이곳에서 숨 쉴 틈을 얻었다고 한다. 겉은 시골집이지만 내부는 당구장이나 티 룸, 파티룸 등 왕비가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여는 공간으로 쓰였다. '진짜 시골'로 운영돼야 한다는 왕비의 주문에 따라 진짜로 농장도 만들어서 작물을 재배했고, 마구간이나 돼지, 양, 닭을 키우는 축사도 실제 운영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배경을 알고 있으니, 분에 넘치는 호화 생활에 겨운 어린 왕비의 투정과 그로 인해 추가된 사치스러운 취미활동이 한심하게 보인다. 하지만 날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 격리된 생활을 한 공주였고 왕비였으니 마리 앙투아네트 개인을 탓할 것도 아니다. 혁명 후에 이곳이 제일 많은 수난을 겪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국민들의 미움을 받은 왕비의 개인 취향이 제일 많이 반영된 곳이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시골집과 농장이라는 속성상 조금만 관리를 안 해도 바로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나무로 지은 집들, 키우던 닭과 돼지가 방치되면 몇 달도 유지되지 어려웠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에 복구를 했지만 금방 또 망가졌다. 20세기에도 계속 복원 공사를 해서 지금 형태로 농장까지 다시 갖춰진 것은 2006년이라고 한다.

쁘띠 트리아농 앞 영국식 정원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상 속 시골을 구현했다는 '왕비의 마을(hamlet)'

쁘띠 트리아농과 시골집 구역을 산책할 때 즈음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날씨가 좀 흐려져서 땡볕은 피할 수 있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나서 사진을 찍을 의욕마저 상실했다. 시골집들은 겉모습만 대충 보면서 호수 주변으로만 돌았다. 17년 전 배낭여행 때는 꼬마기차조차 안 타고 이곳까지 걸어왔던 것 같다. 정원이 더 커졌을 리는 없으니 20대와 40대의 체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이 코스를 다 걸어 내신 부모님의 체력 관리와 의지가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트리아농 권역까지 대부분 둘러보고 다시 꼬마기차를 타고 본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가는 길에 대운하 앞 정류장에 한 번 서는데, 잠시 망설이다가 중앙 정원을 걸어서 통과하기로 하고 내렸다. 본궁과 별궁들만 보느라 정원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그냥 빠져나가기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였다. 대운하는 긴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호수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보트놀이와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대운하를 포함한 대정원은 사실 입장료 없이도 드나들 수 있는 시민 공원이다. 예전에야 왕족과 귀족만 놀았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소풍을 올 수 있는 유원지다. 하루 종일 관람하느라 체력을 소진한 관광객은 누리기 힘든 일상의 여유였다.


운하를 뒤로 하고 패스포트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중앙 정원에 다시 입장해서 본궁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완전 직선으로 걸으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지를 못하고 양 옆에 미로처럼 만들어진 숲 속의 작은 정원들 몇 개라도 보고픈 마음에 옆으로 샜다. 결국 그나마 남은 체력까지 하얗게 불태웠다. 오후 5시가 훌쩍 넘어서 패스포트에 포함되어 있던 7유로에 해당되는 음악분수 시간은 다 놓쳤다. 분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음악은 어디선가 계속 흘러나왔다. 두어 개 작은 정원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달래 가며 출발점이었던 본궁 앞 계단 꼭대기에 도착했다. 뒤로 돌아서 이제 역광을 받은 오후의 정원과 대운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한여름 오후의 공원을 즐기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화려해서 각국의 군주들이 과시용 궁전을 짓는 데 벤치마킹하는 모델이었다. 루이 14세가 짓고 루이 16세가 쫓겨나 고작 3대 만에 역할이 종료된 수명 짧은 궁전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기간의 역사가 다이내믹하고 루머마저 흥미로운 게 많아서 필수 관광지로 꼽지 않을 수 없다. 파리 시내를 포기하고 '간단하고 여유롭게' 궁전이나 보면서 휴식같이 마무리하자던 애초의 목적은 실패였다. 대신 하루 꼬박 투자해서 무지막지한 궁전을 볼 만큼 다 봤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원 없이 구경했다는 만족감도 곁들여져, 한 달 넘는 여행의 마지막까지 알찬 유종의 미를 느끼게 해 준 큰 구경거리였다.

베르사유 본궁 앞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중앙 정원. 멀리 대운하와 양 옆에 펼쳐진 공원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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