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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1. 2019

파리, 마무리와 새로운 여행의 시작

33+1일: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

샤를 드골 공항에서 부모님을 배웅하고 하루가 지난 아침, 공항 내 이비스 호텔 객실에서 혼자 눈을 떴다. 리투아니아로 돌아가는 발틱 항공 비행기는 이날 오후 5시여서 하룻밤 공항 호텔에 머물러야 했다. 하루 전 저녁에 33일간 정든 리스카를 반납하고, 33일의 자동차 여행을 무사히 완주하신 부모님을 한국행 출국 게이트 앞에서 작별했다. 그러고 12시간쯤 지났는데 벌써 12일은 지난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을 24시간 함께하다가 부모님 없이 혼자 아침을 맞으니 허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시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자유로움이 실감 나게 밀려왔다. 자동차가 없다는 것도 의외로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여행 내내 자동차가 있었기에 원하는 곳으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세워놓고 구경 다닐 때는 결국 차도 짐이었다. 주차장을 찾고, 차 상태와 안전에 신경을 쓰고, 주차된 곳으로 되돌아오는 거리를 감안해서 움직여야 했다. 파리 같은 복잡한 대도시의 구도심에 차를 몰고 들어가는 건 겁나는 일이었다. 차가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 시내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늦은 오후에는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나들이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33일 동안 셀프 투어 가이드 겸 운전기사 겸 사진사를 한 스스로에게 멋대로 쉴 수 있는 일종의 뒤풀이를 선사하기로 했다. 33일 동안 부모님과의 여행을 차질 없이 하려고 전체 계획을 미리 다 짜서 거기에 따라 움직였다. 더 자세한 정보를 하루 전마다 검색하고, 가능하면 예약까지 해 놓고 다녔다. 혼자 다녀도 사전에 계획 짜고 예습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한 달 여를 그러고 나니 계획과 준비는 멈추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무계획으로 맘을 다 비우고 발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여행과 출장 합하면 파리는 네다섯 번째 방문이다. 볼거리가 워낙 많은 곳이라 아직 못 본 게 많지만, 이른바 주요 관광지는 다 가봤다고 생각됐다. 꼭 어디를 가야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맡겨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RER)를 탔다.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였던 파리 센 강변, '예술의 다리' 모습과 '카루젤 다리'의 센 강을 상징하는 석상

노트르담 성당이 멀찍이 보이는 생 미셸/노트르담 역 지상으로 나와서 센 강을 따라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햇빛을 등지고 걷고 싶어서 방향을 잡다 보니 루브르 미술관을 건너다보며 오르세 미술관을 향해 가고 있었다. 책이나 작은 그림을 파는 강변의 노점상들이 슬슬 영업을 개시하는 오전 시간이다. 별로 덥지 않은 맑은 날씨라 산책에는 딱 좋았다. 퐁뇌프, 예술의 다리, 카루젤 다리를 차례로 지나며 장기 체류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걸었다. 예술의 다리는 사랑의 자물쇠가 너무 많이 걸려서 위태롭다더니 얼마 전에 몽땅 치운 모양이었다. 난간이 아주 깔끔했다. 중간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도 했다. 파리에서 이렇게 여유 부려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올 때마다 전투적으로 유명한 곳들을 섭렵하곤 했다. 몇 차례 와서 웬만한 곳은 다 발도장을 찍었다 싶으니까 드디어 여유, 힐링, 산책이 가능하다. 스스로 좀 우습기도 했다. 이러니 대부분 처음 가는 곳들이었던 33일 여행에 여유나 힐링이 낄 자리가 없던 거다. 서너 번 와서 낯이 익어야 비로소 휴식이 된다. 아니면 오래 머물러서 구경을 충분히 해야 한다. 그 후에나 휴식하고 여유를 부릴 수 있다.


그렇게 삼십 분쯤 거닐었나 보다. 쉬는 것도 금방 지친다는 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뭐 구경거리가 없나 궁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구글맵을 켜고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큰 도시 파리가 구경거리가 바닥날 리 없다. 미술관도 루브르나 오르세, 오랑주리 등은 봤지만 작은 미술관들은 많이 남아있다. 결국 여유는 잠깐으로 끝났고 다시 구경 모드로 전환되었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선물하자고 다짐해놓고 너무한다 싶기도 했지만 쉬는 것도 억지로 한다면 휴식이 아니다. 내 여행은 이렇다고 인정하고 하고픈대로 하는 게 낫다. 혹시 오르세 미술관이 한적하면 밀레의 '만종'을 다시 볼까 싶어서 그 앞으로 갔다. 웬걸, 앞마당이 차고 넘치도록 줄이 빽빽했다. 건너편 루브르 미술관이 쉬는 날이었던 것이다. 원래도 인기 있는 미술관인데 루브르 미술관이 쉬니 사람이 더 몰리는 건 당연했다. 줄까지 서 가며 휴식을 투쟁으로 바꿀 필요는 없었다. 포기하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결론은 로댕 미술관이었다.

로댕 미술관은 18세기 이래 여러 차례 용도변경을 거친 고전적인 저택이다. 넓은 정원도 그의 작품으로 조각공원이 되었다.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강변을 벗어나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근처에 있다. 18세기 초에 부유한 은행가가 지은 저택이었다는데 집주인과 세입자가 바뀌면서 인테리어와 정원도 꾸준히 바뀌었다. 20세기 초에 로댕이 1층에 세를 얻을 즈음에는 화가 마티스,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같은 예술가들이 세 들어 있었다. 위치가 좋고 정원이 넓은 고전적인 저택이어서 선호했나 보다. 로댕이 1911년부터는 건물 전체를 사용했다는데 소유자는 아니고 여전히 세입자였다. 그때부터 집주인은 프랑스 정부였다. 저택을 정부에서 수용하려 했는데 로댕이 자기 작품과 수집품을 전부 기부할 테니 평생 집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사후에는 자신의 작품 전시관으로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정부에서 승인했다는 게 신기하다. 로댕이 유명한 작가여서 협상이 된 거겠지만, 예술적인 자산을 다루는 프랑스의 태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때부터 저택과 정원까지 그의 작품으로 가득 찬 개인 미술관이 되었다. 로댕은 작품이 워낙 많아 관람에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한 사람의 작품세계라 범위가 한정되고 집중이 잘 된다.


로댕의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사이사이에 그가 소장했던 수집품이나 지인들의 작품도 있다. 고흐나 모네의 그림도 있고,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도 있었다. 평생 애증의 관계였다는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도 전시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옥돌을 깎아 만든 '소문(Gossip)'이라는 작은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청동상이나 하얀 대리석이 아니고 녹색 옥돌이어서 동양적인 느낌이 났다. 그리스 조각처럼 이상화된 인물과 신화적 형상이 많은 로댕 작품과 달리 실생활을 표현하면서 작은 표정까지 생동감이 있었다. '성숙(The Mature Age)' 또는 '운명(Destiny)'이라는 큰 청동 작품도 있었는데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끌로델은 로댕보다는 인체 표현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물론 로댕의 그 유명한, 황금비율 몸매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입맞춤(The Kiss)'도 있다. 청동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잘은 모르지만, 큰 작품을 구상하더라도 일단 작게 만들어 보고 잘 되면 큰 사이즈로 다시 만들었던 모양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그렇다. 실내 전시실에 작은 버전의 청동상이 있고 바깥 정원에 똑같은 모양의 큰 청동상이 또 있다.  

실내 전시는 로댕의 인생 흐름을 따라서 작품이 배치되었다. 고흐의 그림도 있고,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도 한 방을 차지한다.

답사가 아니라 쉬러 온 것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상기하면서 최대한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작품이 많아서 조각이 숲을 이룬 방이 많았는데, 일일이 보기보다는 쓱 둘러보다가 눈에 뜨이는 것만 자세히 보았다. 정원으로 나가니 한쪽에 카페가 있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 요기를 했다. 오르세나 루브르 미술관은 관광 필수 코스라 사람도 많거니와, 대부분이 뭔가 서두르며 탐색하듯이 다닌다. 공간이 넓어도 여유로운 감상은 쉽지 않다.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 같은 중소 규모, 개인 미술관은 여유가 있다. 작품을 자세히 볼 수 있고, 사람들도 천천히 움직인다. 휴식을 원하는 입장에서 로댕 미술관은 정원이 넓고 조각과 조경이 어우러져서 더 좋다. 안타깝게도 정원 중앙 화단이 공사 중이었다. 가장자리로 산책하며 비교적 큰 조각들을 구경했다. 유명한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은 정원 산책이 끝나는 저택 옆 출구 쪽에 있다. 유명한 작품이라 그런지 햇빛을 잘 받는 트인 공간에 따로 모셔져 있다. 과연 멋진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숲처럼 나무가 우거진 정원 안쪽, 나무 사이로 작품이 드문드문 놓여있는 한적한 공간이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로댕 미술관의 정원은 로댕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조각공원이다.

33일 자동차 여행에 보상휴가처럼 한나절 추가된 혼자만의 파리 나들이는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로댕 미술관을 나와 다시 부지런히 걸어서 공항으로 가는 RER 기차를 탔다. 한국이 아니라 리투아니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2년째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내 숙소는 꽤 편안해졌지만 그래도 '내 집'은 아니었다. 그래서 여행을 마쳤다기보다는, 더 긴 여행 중인 장기 체류지로 되돌아가 느릿한 호흡의 여행을 계속하는 기분이었다. 열흘 남짓 리투아니아에 있다가 한국에 2주 정도 다녀올 예정이었다. 방학 중 잠시 고향 다녀오는 취지의 한국 방문이었으니, 그것도 또 다른 여행이다. 한국에 다녀오면 개강을 하는 8월 말까지 리투아니아에서, 또는 영국 런던에서 잡아놓은 계획들이 있었다. 개강을 하면 리투아니아에서 3년 차 객원교수 생활이 시작되는 시점이고, 아직도 발트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신기했다. 일상이 여행이었고, 주말이나 방학에 실제로 떠나는 여행은 일상의 일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2주의 한국 방문 동안 상황이 급변해서 아예 귀국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다. 사람 일이 언제 어찌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거다. 한 곳에서 몇십 년간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바뀔 때는 실로 순식간이다. 로댕 미술관을 거닐며 리투아니아 체류 3년 차는 어떻게 채울까, 다가오는 겨울에는 포르투갈에 가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 날이 7월 10일이다. 불과 한 달 후인 8월 10일에는 한국에서 귀국 결정을 하고 와서 리투아니아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짐을 싸고,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귀국하다 보니 그야말로 일종의 모험으로 느껴졌다. 한국만큼 변화무쌍한 사회도 드물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새 직장은 더 예측 불가였고,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물론 한국의 대부분 직장인이 겪는 스트레스 가득한 생활을 할 위험성이 컸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유럽에서 여유롭게 살다가 한국에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고, 실제로 금세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럽으로 이직해서 갔던 것처럼 한국행도 이직해서 떠나는 장기 여행이라는 거다. 평생직장, 영구귀국, 그런 개념 없이 언제든지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루하루 좀 더 충실하게 살면서 즐길 수 있는 힘을 준다. 주변에서 아무도 안 믿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도 한국을 여행 중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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