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Dec 08. 2019

군산항 수탈의 역사는 이제 예쁜 포토존

군산 근대문화거리,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마을

군산에 가보자고 마음을 정하고 나니 새삼 군산에 다녀왔다는 감상이 많이 들렸다. 단지 세종시가 서울보다 전라도와 가까워서 세종시 사람들이 더 많이 갔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울에 계신 부모님은 이미 몇 년 전에 단체 여행으로 다녀오셨다고 하신다. 얼마 전 SNS를 보니 서울의 모교 교수님들도 올해 초 연찬회를 군산으로 다녀오신 모양이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우리 연구실도 군산으로 워크숍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동행하기로 한 동생은 회사 옆 자리 동료가 주말에 군산에 다녀왔다고 했단다. 이미 몇 년째 '뜨는' 관광지가 된 군산에 우리 자매는 뒤늦은 걸음을 하는 셈이었다. 


군산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근대 이래 서해안의 주요 항구도시 중 하나, 일제 때 쌀 반출항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 정도였다. 최근에 지엠(GM) 자동차 공장이 철수하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어 뉴스에 많이 나왔다. 관광객으로 가서 볼 게 뭐 있을까 싶었는데, 검색하자마자 정보의 분량에 일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시대, 특히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 테마와 적산가옥 분위기를 살린 카페나 숙박업소들이 줄줄이 나왔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많다고 소문이 나서 블로그마다 사진이 넘쳐났다. 전주에서 한옥마을을 홍보하듯 군산은 일제시대 일본풍 근대 도시(항구)의 모습을 테마로 잡았고 몇 년간 성공하고 있었다. 지엠 공장의 철수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도시가 비어 가는 와중에 구도심의 관광사업이 흥한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동생과의 자매 주말여행이 된 군산 구경은 1박을 하면서 천천히 하기로 했다. 초행이니 여정은 군산을 찾는 모든 관광객이 가는 그 장소들을 따라갔다. 첫날은 옛 군산항 주변, 근대문화거리로 재정비한 구시가지를 안내지도대로 따라다녔다. 둘째 날은 차로 이동해야 하는 외곽지역, 경암동 철길마을과 임피역을 들렀다. 


첫날이었던 토요일 일정은 이랬다.

장항 스카이워크 - 근대문화 체험공간 '여미랑' 게스트하우스(숙소, 주차) - 점심식사 한일옥(뭇국)과 초원사진관 - 히로쓰 가옥(신흥동 일본식 주택) - 구 군산세관 / 근대역사박물관 / 근대미술관 / 근대건축관 / 진포해양테마공원(위봉함 676 전시관) - 동국사 - 저녁식사 빈해원(물짜장면)

장항스카이워크는 해송 숲 위로 걸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군산에 진입하기 전에 들른 장항 스카이워크는 전망 데크를 4층 정도 높이로 올려 지었다. 해송 숲 위를 거닐며 시선을 올려놓는 경험을 선사한다. 마침 물이 빠졌는지 넓게 드러난 서해 갯벌과 그 뒤의 바다 풍경이 소나무 위로 너머 보인다. 기벌포 해전이 벌어졌던 바다임을 안내하는 문구가 삼국시대 역사를 끌어다 놓았다. 군산이 건너다 보이는데, 해안에 크게 자리 잡은 화력발전소가 눈에 띄었다. 미세먼지가 화두가 되면서 서해안 일대에 모여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참 좋은 경치 옆에 있는 발전소의 존재가 유난히 커 보였다.


숙소를 아예 군산 시내 근대문화거리에 위치한 '여미랑'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근대문화 체험공간이라고 하여 일식 가옥을 새로 조성한 숙소다. 아파트 단지에 붙어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배경으로 산업화 시대를 대표할 법한 아파트가 벽지처럼 나온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일본식 목조 다다미방 숙소가 자리 잡은 상황 자체가 참 특이했다. 연못을 곁들인 정원까지 일식 분위기 나게 예쁘게 꾸몄고, 사진 찍기 좋은 스폿으로 알려져 있는지 숙박객이 아니어도 많이들 드나들었다. 골목 맞은편에도 비슷한 일본풍의 건물을 몇 개 이어 짓고 카페나 식당을 한다. 그중 한 건물에는 '상해 임시정부 항쟁관'이라는 조금 뜬금없는 전시관도 있었다. 마네킹을 이용한 고문실 모형도 있고 갑자기 서대문 형무소 전시관 분위기가 난다. 군산에서의 수탈과 옥구농민항쟁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의미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여미랑 게스트하우스 이쪽 저쪽 - 아파트 배경이 이질적이다.
임시정부 항쟁관과 근대문화거리 한 골목

항구 쪽의 히로쓰 가옥이나 여미랑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근대문화 체험공간까지 이 일대를 1930년대 시간여행 마을로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구시가지 영역 안쪽은 좁은 골목길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과거 스타일로 예쁘게 만들어 놓은 곳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1930년대 테마인 만큼 건물들은 높아봤자 3층이다. 하지만 일제시대를 살린다고 해도 그 뒤 산업화와 현대화 시절을 다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1층의 가게들을 빼면 2층, 3층은 산업화 시대 시멘트로 올린 그대로다. 최대한 일식 느낌을 되살리려 노력 중이었다. 드문드문 남아있는 오래된 옛 일식 건물들을 소중하게 십분 활용하고 있다. 


뭇국으로 유명한 한일옥도 그런 건물 중 하나다. 일제 때 정형외과였다는 건물을 잘 개조해서 쓰고 있다. 바로 앞에 그 유명한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세트였던 초원사진관이 있다. 일제시대와는 상관없고 원래 있던 사진관도 아니고 단지 그 영화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심은하, 한석규 사진이 수없이 붙어있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는 나조차 내용이 가물가물한데, 사진 찍느라 줄을 서다시피 하는 앳된 커플들은 그 영화를 잘 알고나 있을지 궁금해졌다. 심은하가 타고 다니던 주차관리요원 차량 모형 옆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관 옆 큰 벽에 가득히 10월에 있을 '군산 시간여행 축제' 홍보가 눈에 들어왔다. "1930년대 근대 이야기 속으로"를 부제로 달고 있었다. 이 근대문화 골목들의 흥행이 계속될지 의문인데, 10월의 축제가 흥행하고 좋은 동력이 되면 참 다행이겠다. 몇몇 사진 찍기 좋은 지점들을 빼면 주말인데도 한적한 편이었다. 

1998년 작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세트였던 초원사진관과 주차관리차량, 그리고 군산 축제 광고
신흥동 일본식 주택(히로쓰 가옥)과 근처 골목의 일식 2층 건물

히로쓰 가옥이라고 불리는 '신흥동 일본식 주택'은 일제 때 일본인 지주이자 기업가의 집이었다고 한다.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쪽이 일제 때 일본인들의 고급 주택가였다고 한다. 저택에 가까운 꽤 큰 규모로, 해방 후에 한국인 기업가에게 적산가옥으로 불하되었고 다행히 잘 보존된 경우다. 이 일대에 남아있는 일식 가옥 중 제일 오리지널에 가깝게 남은 집이었다. 아마 이 근대문화 골목 전체의 콘셉트를 제공했을 것이다. 내부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다다미방이 들여다보이고 오래되어 나무가 우거진 일식 정원이 있었다. 신기하고 예쁘면서도 씁쓸하기도 하고, 색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다. 


다시 옛 항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 나왔다. 금강하구에 자리 잡았던 옛 군산항 주변으로 일제 때 주요 관공서 건물들이 복원되어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이다. 구 군산세관부터 옛 조선은행 지점을 복원해 사용하고 있는 군산 근대건축관까지 이어지는 항구 주변 일대에 '군산 시간여행 마을' 안내소가 있다. 네이버 지도에는 항구 주변이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라고도 되어 있다. 테마에 따라 명칭이 겹쳐있다. 전시물이나 그림의 내용은 분명 수탈과 항쟁을 말하고 있지만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예쁘고 낭만적인 1930년대 도시의 아기자기한 이미지다. 구 군산세관부터 건축관까지 이어서 둘러보니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구 군산세관 옆에 크게 들어선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통합권을 샀다. 근대역사박물관과 군산근대미술관(옛 18은행), 군산근대건축관(옛 조선은행 지점), '위봉함 676'호 전시까지 네 곳 통합권이 3천 원이다. 위봉함 676호는 군함 전시관인데 최무선의 화포가 나오는 고려말 진포 해전을 테마로 한다. 바다에 면한 항구 쪽에 전쟁기념관의 야외전시 느낌을 풍기는 진포해양테마공원까지 있다. 다 둘러보려면 꽤나 걷는 코스다. 구 군산세관 내부는 관세청 홍보관이고, 뒤쪽의 옛 창고는 인문학 카페 겸 군산 관광 캐릭터 홍보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새로운 현대식 건물로 상당히 규모가 크다. 가족단위 방문객을 타깃으로 한 체험식 전시가 많고 관람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일제시대 거리 재현이나 설명을 곁들인 모형 전시가 매우 잘 되어있다. 박물관을 나오면 자연스럽게 옛 18 은행 건물과 조선은행 지점으로 이어 걸어가게 된다. 내부는 근대미술관과 건축관이지만 흥밋거리는 그 건물 자체다. 미술관 건물에서 나오는 길에 갑자기 안중근 의사 기념 전시가 등장해서 이것도 조금 뜬금없었다. 건물 사이사이 진입로도 일본식 정원처럼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항만 쪽에는 일제시대 때 쓰던 부잔교가 지금도 서너 개 남아있었다. 부잔교 위치가 일제시대 당시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야말로 수탈당한 쌀가마니들이 옮겨지던 지점이다. 예쁜 새 건물로 재탄생한 수탈기관들 바깥 해변에 덩그러니 있고 예쁘지도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띈다. 

구 군산세관, 옛 18은행, 옛 조선은행 지점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현대식 건물에 체험형 전시를 잘 구성해 놓았다.
지금도 쓰이는 부잔교와 위봉함 676호 전시관
루프탑 카페에서 내려다본 옛 군산항 근대문화거리

근대문화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쉬었다. 루프탑에서 예쁘게 재건된 수탈기관들이 내려다 보였다. 중학교 때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던 조정래의 '아리랑' 소설에 군산의 쌀 수탈 장면이 나왔던 기억이 났다. 수탈되는 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질 나쁜 쌀을 골라내는 작업을 주로 조선인 여인들이 했다. 배고파서 몰래 쌀을 씹다가 관리자에게 걸려서 매를 맞는 장면, 매일 퇴근 때마다 관리자에게 훔친 쌀이 없나 몸 검사를 받는 장면, 그 과정에서 갑질과 성폭력이 난무하는 묘사가 꽤 충격적이었다. 근대문화라는 관광테마로 성공한 것은 좋은데, 그 수탈을 겪었던 사람들의 기억이나 그 자손들의 기억과는 참 상충되는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전시물, 벽화, 설명문에 분명히 수탈과 항쟁을 명기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그게 아니라서 이질감을 지우기 힘들다. 역설적으로 이런 느낌 또한 관광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어둡기 전에 동국사를 보기로 하고 다시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동국사는 국내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일본식 사찰이다. 비스듬한 진입로를 오를 때 보이는 지붕부터 일본식 건물임이 확연해서 매우 흥미롭다. 마당 한편에 위안부 소녀상이 있고, 일본 불교계에서 보낸 '참사문'을 번역해서 새긴 비문이 같이 있었다. 절집 뒤로 둘러쳐진 대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는데, 너무 한산한 데다 어두워지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동국사가 있는 골목 앞에는 이름부터 비장한 '일제강점기역사관'이 준비 중이었는데 지금쯤은 개장을 했을 듯하다. 

저녁 무렵에 찾은 동국사, 저녁식사 하러 갔던 빈해원

저녁식사를 하러 유명 중식당인 빈해원을 찾아 몇 블록을 걸었다. 어두워졌지만 근대문화골목들은 모두 조명을 켜서,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꽤 야경이 있다. 생각해보면 군산은 개항을 해서 조계지로 나누어졌던 곳이니 청나라 조계지도 있고 중국인들도 많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유명 중국음식점들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유명 일식집이 없는 게 아쉽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본 조계지가 크게 확대되고 자리를 잡으면서 청나라는 흔적도 없어졌다. 그래도 빈해원 같은 유명한 중국집은 남아있으니 그 생명력도 참 대단하다. 유명하다는 물짜장면을 먹었는데, 그 맛은 별로 기억이 안 나지만 빈해원 내부 인테리어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 촬영도 했다고 한다. 영화 같은 복층식 중국 빈관 구조에다 난간이며 액자, 전등, 식탁까지 딱 적당히 낡은 청요릿집이었다. 누가 싸우기 시작하면 어느 중국 뒷골목 여관에서 찍는 액션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이런 장소에 토요일 저녁이니 사람이 많을 법도 한데 빈자리가 많아서 곧바로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경기 침체의 타격은 관광산업으로 다 메꿀 수는 없는 거였다. 어두워졌어도 그리 늦은 밤은 아니었건만, 토요일 밤의 군산은 관광 중심지인 구시가조차 금방 인적이 드물어졌다. 골목을 비추는 예쁜 줄 조명과 청사초롱 모양 조명들은 밤도 즐겨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문 닫은 상점, 주인 잃은 빈 점포들이 갑자기 더 눈에 띄었다. 초봄이었기에 그랬기를, 여름과 가을 성수기는 훨씬 북적북적했기를 바란다. 


둘째 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일정은 교회로 시작했다. 

아침식사(이성당) - 개복교회 - 탁류길(일부만) - 경암동 철길마을 - 임피역


군산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된 이성당 빵집은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첫날부터 수차례 지나다닌 중앙광장 앞에  있다. 사실 첫날부터 간식으로 빵도 이미 사 먹었지만, 개장 시간을 잘 봐 두었다가 교회 가기 전에 아침을 먹으러 또 갔다. 대표상품인 단팥빵과 야채빵은 따로 줄을 세운다. 그 빵만 아니면 계산 줄도 그리 길지 않고 안쪽에 자리도 잡을 수 있다. 우리는 먹고 싶은 빵과 커피를 샀는데, 잘 보니 어르신들은 전부 모닝세트를 드시고 계셨다. 양배추 샐러드에 수프, 모닝빵까지 있는 경양식 세트다. 다시 방문할 이유가 생겼다. 

군산 이성당 빵짐, 개복동 개복교회, 탁류길에서 만난 소설비

군산의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개복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개복동에 있어서 개복교회였다. 개복동은 구시가지와 좀 떨어져 있다. 낭만이 넘치는 구시가지의 일본인 거주지와 딴판으로 여기는 조선인 거주지, 즉 빈민촌이었던 지역이다. 화창했던 전날과 달리 조금 흐리고 간간이 가랑비가 오는 날씨여서 분위기가 전혀 달라 보였다. 개복동 근처를 산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탁류' 소설 루트가 나왔다. 여기 출신인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딱 일제시대 군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난한 조선인 가족의 큰딸 '초봉이'가 주인공이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숙제로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착하고 순진한 주인공의 삶이 그야말로 비참하고 속 터지게 망가져가는 딱한 이야기였다. 곳곳에 소설의 몇몇 장소의 배경이 된 곳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군산을 나가면서 임피역에 들렀는데, 거기 딸린 기차 전시관에도 탁류의 기차 장면이 마네킹과 함께 재현되어 있다. 


경암동 철길마을에 갔을 때는 가랑비가 조금 굵게 오락가락했다. 그래서인지 그 명소가 별로 흥미롭게 다가오지를 않았다. 여기도 빈해원처럼 '남자가 사랑할 때' 영화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그 영화를 안 봐서일 수도 있는데, 좁은 공간에서 굳이 이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상점이 추억팔이를 하고 있었다. 옛날 교복이나 교련복을 대여해서 사진 찍기 놀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고 70~80년대 군것질거리나 소품들을 팔기도 한다. 현대식 아파트 단지와 길 건너의 대형 마트 사이에 마치 결계처럼 좁은 옛 철길 자리가 홀로 시끌시끌한 느낌이었다. 좁은 철길 골목을 비틀거리며 걸어 보다가 돌아 나왔다. 


군산 관광의 마무리는 임피역이었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아서 쓰지 않는 폐역인데 일제 시대 때 지은 역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문화재가 되었고 여러 조형물이 함께 있는데 주로 일본의 수탈을 고발하는 의미이다. 옥구농민항쟁 기념비가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채만식의 다른 소설 '논 이야기' 조형물도 있다. '거꾸로 가는 시계'는 꽤 유명하다. 일제시대 때 임피역은 근처 평야 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군산항으로 반출하는 통로였다. 해방 후에는 이 일대 주민들의 통근열차이자 통학열차가 다니는 기차역이었지만 점차 이용객이 줄어들어서 간이역이 되었다가 기능을 멈추었다고 한다. 깨끗하게 칠하고 정비한 역사에 매표소나 시간표, 벤치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방문했을 때 우리 자매밖에 아무도 없었는데 실물 크기의 사람들 동상과 함께 있자니 분위기가 특이했다. 외부에 전시해 놓은 열차 칸에는 임피면 지역에 대한 설명과 함께 '탁류' 소설 속 기차 장면이 재연되어 있다. 군산 시내보다 훨씬 일본에 대한 항쟁 의식이 부각된 곳이었다. 일식으로 꾸며서 예쁜 포토 스폿에서 사진을 찍다가도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되니, 역사적 기억과 현재의 관계를 아우르기란 참 어렵기도 하다. 

비가 조금씩 내렸던 좁은 경암동 철길마을
임피역의 거꾸로 가는 시계, 임피역사 내부, 열차 전시실 내 '탁류' 장면


매거진의 이전글 3.1 운동 100주년 맞이, 조용한 독립기념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