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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Jul 26. 2019

AAW ASH

놀 줄 아는 모범생 


  몇 년 전 커스텀 이어폰을 맞추기 위해 여러 이어폰 브랜드 제품들을 살펴보며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커스텀 이어폰의 경우 한 번 맞추면 끝까지 안고 간다는 심정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에 신중을 기했고 최종적으로 두 브랜드의 제품이 선택지에 올랐습니다. 당시 선택한 이어폰은 아직까지도 제 레퍼런스로 사용 중이지만 소리 외적인 문제로 인한 선택이었을 뿐 소리의 취향만 놓고 보자면 나머지 이어폰 역시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시 그 이어폰의 제조사가 AAW이니 이번 AAW ASH 리뷰는 조금은 편파적으로 흘러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든 첫인상이 오래 남는 법이니까요.


                                  

  ASH는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BA 드라이버가 사용된 하이브리드 이어폰입니다. 마침 제가 일찍이 마음에 두었던 그 제품 역시 동일한 구성의 하이브리드 이어폰이었습니다. 사실 AAW는 커스텀 이어폰으로는 굉장히 이른 시기에 하이브리드 구조 제품을 개발하여 판매한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자체 역사는 길지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구조의 제품 개발로서는 여느 브랜드 못지 않은 노하우를 쌓은 곳이라 하겠습니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AAW라 브랜드명을 지은 의도가 궁금합니다. AAW는 Advanced AcousticWerkes의 줄임말입니다. ‘Werke’라는 단어가 낯설어 사전을 찾아보니 'work'의 옛 어형이더군요. 왜 굳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예전 어휘를 가져왔을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브랜드명을 '보다 진보한 (클래식한) 음향 기술들’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요?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놓은 가운데 지금부터는 이에 대한 제 해석을 펼쳐보려 합니다. 다분히 끼워맞추기식 해석이니 말도 안 된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TruXross 패시브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AAW가 자신있게 자랑하는 기술 중 하나가 TruXross라는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기술입니다. AAW는 브랜드 초기부터 하이브리드 이어폰을 개발했다고 소개 드렸지요?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기술이 바로 이 TruXross입니다.


  TruXross는 패시브 방식의 크로스오버 네트워크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 네트워크 소자를 사용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해당 대역 이상의 주파수를 잘라버립니다. 구체적으로 제품에 적용시키자면 ASH에 사용된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네트워크에 의해 분할된 것이 아닌 전체 음성 신호를 재생하는 가운데 물리적 로우패스 필터에 의해 중고역 이상 주파수가 청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명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마치 전통 방식처럼 오직 수작업으로 방망이를 깎는 느낌이랄까요.


  TruXross를 통해 AAW는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담당하는 주파수 대역과 BA 드라이버가 담당하는 나머지 대역 사이의 중첩 구간을 최소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밖에 각 유닛의 재생 신호가 청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상차 보정은 기본으로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고요. 고전적인 방식을 기반으로 보다 진보한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이 꼭 AAW처럼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아니라면 죄송..)



13mm 그래핀 다이내믹 드라이버                  



  세대를 거듭한 만큼 AAW의 하이드리브 구조도 많은 향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부분이라면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재질과 사이즈의 변화를 꼽겠습니다. 두 가지 모두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입니다. ASH에는 13mm의 그래핀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사용되었습니다. 직경 13mm는 이어폰, 특히나 다중 드라이버 이어폰에 사용된 드라이버의 사이즈치곤 매우 큰 축에 속합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유행처럼 사용되는 그래핀 소재를 채택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BA 드라이버의 활용이 늘어난 최근에도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여러 브랜드들이 꾸준히 사용하는 유닛 방식입니다. 작년 말부터 고역 유닛으로 정전형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제품들이 유행처럼 늘어난 가운데에도 저역만큼은 여전히 전통의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묵직한 한 방이 대세라면 대세라 하겠습니다.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강력한 저음 구동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식들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역시 드라이버의 사이즈를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체급에는 장사가 없지요. 스피커에서 작은 사이즈의 우퍼 유닛이 육중한 저역을 재생시킬 때 많은 경우 이 사이즈에서 나올 만한 저역이 아니라며 칭찬합니다. 그럼 아예 사이즈를 키운다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이즈가 커질수록 중요한 것이 구동력입니다. 맺고 끊음이 명확해야만 질 좋은 단단한 저역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드라이버의 재질이 중요합니다. 민첩하게 움직일 정도로 가벼워야 하며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고 멈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근 많은 이어폰 제조사들이 그래핀 소재에 열광합니다. 가볍고 단단하거든요. ASH는 큰 사이즈의 가볍고 단단한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토널 밸런스가 낮게 잡히는 묵직한 스타일의 소리를 내어주는 데에 익숙한 브랜드입니다. 당연히 ASH의 저역 재생 능력이 기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ASH는 음악 재생에 있어서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비중이 굉장히 큰 편입니다. 보통 하이브리드 이어폰들이 저역 재생에만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ASH는 낮은 중역(Lower Mid-range)까지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영역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대역을 6개의 BA 드라이버들이 영역을 구분하여 재생하는 방식입니다. 정확한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사람의 청각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역의 일부를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재생한다고 짐작이 가능합니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제가 ASH를 들었을 때에도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재생하는 소리에 BA 드라이버들이 맛깔나게 양념을 쳐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널 오디오(Null Audio) 티뷰론(Tiburon) 케이블                    



  ASH의 기본 케이블로는 널 오디오(Null Audio)사의 티뷰론(Tiburon) 케이블이 포함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어폰 브랜드들이 기본 케이블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모양새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유닛측 단자는 2핀, 기본 케이블은 3.5mm 단자로만 제공된다고 합니다. 2핀 케이블의 문제점이 간혹 핀 부러짐이 발생한다거나 몇 번 케이블을 교체하다보면 헐거워져 쉽게 빠진다는 점 등인데, ASH는 리세스드(recessed) 소켓을 사용하여 2핀 아래 부분까지 깊숙하게 끼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사용 도중 핀이 휘어질 염려가 적고 채결력도 강하지요. 문제는 강해도 너무 강합니다. 리뷰를 작성하면서 중간에 티뷰론 케이블 외에 다른 케이블을 연결해서 비교하려 했는데, 케이블을 못 빼서 포기했습니다. 제 것이라면 플라이러로 딱 잡아서 당겨버릴 텐데.. 차마 그러진 못하겠어요. 어찌 되었든 백만 원 초반의 제품에 20만 원대의 케이블이 구성품으로 제공되는 것은 케이블에 꽤나 많은 신경을 쓴 셈입니다.



리듬 표현에 특화된 이어폰


  AAW ASH는 질감 표현이 인상적인 이어폰입니다. 그런데 중고역을 기준으로 그 이상의 표현력과 아래 대역의 표현력이 다릅니다. 드라이버 구성을 알고 들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니냐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분명 다르게 들립니다. 전체적으로 스피드한 리듬감을 유지하지만 중고역은 선명함, 깨끗함, 컨트라스트가 분명한 또렷한 찰랑거림이라는 단어들이 어울리고 아래 대역은 웅장함, 묵직함, 부드러움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 둘을 조합하니 마치 오래 우려서 깊은 맛을 내는 탕에 알싸한 다대기를 넣어 감칠맛을 낸 음식 같습니다.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토널 밸런스가 낮게 잡힘에도 듣기에는 어둡지 않고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지는 것은 또렷하고 시원하게 들리는 고역 덕분입니다. 음역대를 몇으로 나누어 떼어놓고 살펴보면 각기 개성이 분명한 타입인데 이들을 합쳐서 들으면 밸런스가 잘 맞는 재미있는 소리입니다. 각각의 개성은 살리면서 어느 한 쪽 과하게 치우침이 없는 것이 꼭 놀기도 잘 노는 모범생 같습니다. 선을 과하게 넘지 않는 가운데 듣는 재미를 추구하는 타입이랄까요.


  쫀득한 리듬감과 각종 전자 음향의 개성적인 질감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이어폰이므로 EDM과 같은 장르와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ASH를 듣고 있으면 AAW가 대형 그래핀 드라이버를 대놓고 자랑할 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역의 양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질감으로, 그리고 리듬감으로 존재를 부각시킵니다. 종전에 리뷰를 진행한 엠파이어 이어스 레전드X가 압도적인 양감으로 소리를 지배하는 타입이라면 ASH는 깊숙한 곳에서 툭툭 쳐주는 또다른 타입의 저역 친화적 이어폰입니다.


                                    

  ASH로는 얼마 전 새로 발매한 체인스모커스의 <Sick Boy> 한국 한정 에디션 앨범을 들어보길 추천합니다. 올 9월 내한이 예정되어 있는 체인스모커스는 이를 기념하여 아프로잭(Afrojack) 등 유명 디제이의 리믹스 버전을 대거 수록하여 기존 앨범을 리뉴얼해 발매했습니다. ASH는 내 머릿속에 클럽 공연장을 열어줍니다. ASH는 소리를 청자 가까이에 당겨두고 들려주는 타입이기에 이런 장르와 더 잘 어울리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가뜩이나 신나는 공연이 내 코앞에서 벌어지니 말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청자와의 거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스피커에 비유하자면 마치 니어필드 환경에서 스피커의 좌우 간격을 충분히 벌리지 못하는 대신, 적절한 룸튜닝 및 공간 배치로 무대의 원근감을 충분하게 끌어올린 것과 유사합니다. ASH는 소리가 표현되는 무대의 좌우 폭이 여타 이어폰에 비하여 좁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이어폰의 공간감을 평가할 때 좌우 규모도 중요하지만 특히나 무대의 원근감에도 많은 비중을 둡니다. ASH는 좌우 배치가 넓지 못함에도 악기들이 서로 뭉치지 않고 깔끔하게 분리되어 표현되는데, 이는 원근감 표현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소리가 좌우로는 가깝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숙한 저 안쪽부터 뻗어나옵니다. 따라서 좌우 폭만 가지고 ASH의 공간간이 좁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대의 좌우 폭보다는 원근감을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데, 신기한 녀석입니다.



  ASH로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를 들어보면 이와 같은 특징이 굉장히 재미있게 들립니다. 빌리 아일리시의 보컬이 삼 면에서 들리는데 청자의 바로 앞에서 그리고 양 귀에 직접 갖다 대고 속삭입니다. 내 주변을 빌리 아일리시가 감싸고 있는 듯한, 이제껏 여러 이어폰으로 이 곡을 들었지만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저역의 비트는 묵직하지만 빠른 스피드로 깊숙한 곳에서 툭툭 쳐주는 가운데 각종 전자 음향들의 공간 배치와 질감 표현이 또렷하게 들려서 이러한 음악에 특화된 이어폰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멋지게 소화해냅니다.



  얼마 전 중고 매장에 들렀다가 우연히 다크나이트 OST CD가 한 켠에 꽂혀 있는 걸 보고 주저없이 집어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리핑을 한 뒤 오랜만에 ‘Why So Serious?’를 ASH로 듣는데, 곡의 어두운 분위기나 한스 짐머 특유의 질감이 도드라지는 다양한 소리들은 역시나 멋지게 들려줬습니다. 하지만 OST 장르, 특히 한스 짐머처럼 웅장함을 강조하는 스타일의 곡들은 아무래도 보다 넓게 소리가 펼쳐졌을 때 듣는 맛이 살아납니다. 그런 면에서 ASH의 좌우 폭은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ASH 유저라면 이 곡을 한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오디오파일들에게 가장 유명한 파트, 3분 30초 가량부터 시작하는 극저역의 질감을 직접 느껴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극저역 소리가 이렇게 재생되는구나가 아니라 극저역에서도 이런 리듬, 강약 조절이 있구나 감탄하게 됩니다. ASH의 대구경 그래핀 드라이버의 해상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듣는 재미가 있다


  저는 아직 최근 출시한 AAW의 다른 제품들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무언의 압박인 것인가..) 다만 지금껏 들었던 AAW 이어폰들, 그리고 이번 ASH까지 모두 토널 밸런스가 아래쪽에 잡히는 가운데 질감 표현이 뛰어난 이어폰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AAW만의 색깔이 분명히 잡힌 실력 있는 브랜드라 평하겠습니다.


  ASH와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제품 중 기억에 남는 이어폰으로는 메제(Meze) 라이펜타가 있습니다. ASH와 라이펜타는 서로 상반되는 유형의 제품들입니다. 라이펜타가 올라운더의 전형이라면 ASH는 특정 성향의 음악을 저격할 만한 개성을 가진 이어폰이고요, 그래서 라이펜타가 안경 쓴 모범생의 이미지라면 ASH는 공부도 어느 정도 잘 하는데 놀기까지 잘 하는 얄미운 타입입니다. 하지만 두 제품 모두 훌륭한 제품이라는 거.


  듣는 재미가 있는 제품을 찾는 분, 저역의 질감 표현이 훌륭한 제품을 찾는 분, 평소 EDM 등 비트 있는 장르를 자주 들으시는 분이라면 AAW ASH에 관심을 가져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덧, 마침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배댓슈 OST인 ‘Is She With You?’라 재생됐는데요. 저 멀리서 갤 가돗이 뛰어오네요. 그럼 이만.




                                                            

*이 글은 셰에라자드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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