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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Jun 19. 2020

퍼 오디오(Fir Audio) M5

귀여운 달토끼에 속지 말 것

  음악 감상은 가장 대중적인 취미 중 하나이지만, 반대로 오디오는 매우 마니아적인 취미에 해당합니다. 오늘은 이어폰을 다루는 시간이니 이 글에서는 오디오 대신 헤드파이로 범위를 축소시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코드리스 이어폰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가뜩이나 마니아스러운 시장은 더욱 축소되었습니다. 요즘 거리에서 유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스마트폰에서 이어폰 단자가 사라진 지도 벌써 제법 시간이 지나 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출시되는 제품들은 점점 대중성보다는 소수의 마니아들에 초점을 맞추는 듯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가격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백 단위 이상 되는 제품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백 단위가 넘어가는 제품들을 적어도 하나 정도씩은 내놓았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는 요즘의 상황이 매우 못마땅합니다. 정말 그 만한 가치를 가졌기에 가격을 책정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시장의 분위기에 편승한 것인지 유저들이 제품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가의 이어폰이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를 지녔는지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유저의 가치관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겁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든지 일단 기본이 되는 ‘성능’은 바탕이 되어야 하겠고요. 제 경우에는 탄탄한 기본기 위에 해당 이어폰만이 가지는 유니크함이 있는지를 따지는 편입니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들은 대체로 잘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상향 평준화라고 하지요. 다시 말해 보급형 이어폰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성능이 보장된다는 말입니다. 자신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가격만 독보적인 제품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퍼 오디오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생소한 브랜드일 것입니다. 2018년에 설립된 신생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번 퍼 오디오의 제품들을 보고 나면 쉽게 잊혀지지 않을 만한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로고가 너무 귀엽거든요. 달토끼라니요. 제품 리뷰를 작성하기 전 저는 퍼 오디오 제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달토끼 로고에 마음이 혹해서 리뷰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토끼라면 사죽을 못 쓰는 제 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우선 박스는 단단히 숨겨 두고요. 우주를 배경으로 한 토끼답게 가격도 우주급인 퍼 오디오의 삼형제들을 며칠 동안 들어본 뒤, 최종적으로 M5 리뷰를 작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로고는 귀엽지만 소리는 귀엽지 않은 M5 리뷰, 시작합니다. 



64 오디오의 형제 브랜드, 유사한 컨셉의 다른 접근법



  퍼 오디오의 제품명에 붙여진 숫자들은 해당 이어폰에 사용된 드라이버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M5는 다섯 개의 드라이버가 사용되었는데, 크게 나누면 다이내믹 드라이버, BA 드라이버, EST 세 가지 각기 다른 유형의 드라이버가 함께 사용된 하이브리드 타입입니다. 그런데 제품 스펙을 살펴보면 세 개의 BA 드라이버 중 고역을 담당하는 BA 드라이버와 EST 앞에 ‘DB’라는 표기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를 구분하면 M5는 총 네 가지의 서로 다른 드라이버가 사용된 셈입니다. 



  DB는 ‘Direct Bore’의 약자입니다. DB가 붙은 드라이버는 말 그대로 흔히 노즐이라 부르는 이어폰에서 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최종 출구, 보어의 끝에 자리합니다. 따라서 M5의 내부를 살펴보면 세 개의 일반 드라이버들은 보통의 경우처럼 이어폰의 인클로저 내부에 배치되는 반면, 고역과 초고역을 담당하는 두 개의 DB 드라이버가 보어 끝에 위치합니다. 퍼 오디오에서는 이를 Spoutless 드라이버라 이름 붙였습니다. 일반적으로 BA 드라이버는 만들어낸 소리를 보어 끝까지 전달하기까지 통로 역할을 하는 가느다란 도관을 거칩니다. 따라서 도관과 드라이버의 연결부는 자연스럽게 좁은 관 형식의 모양새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DB 드라이버는 애초에 그 위치가 보어의 끝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별도의 통로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주둥이를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64 오디오의 tia(Tubeless In-ear Audio) 드라이버처럼 완전 개방된 형태의 드라이버는 아니고, 면이 막힌 상태에서 소리의 배출구만 얇고 길게 뚫어 두었습니다. 아마도 고음역대 주파수로 갈수록 방향성을 가지는 특성에 맞추어 튜닝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뿐만 아니라 M5는 인클로저 내부에 배치된 나머지 드라이버에서조차 어떠한 도관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드라이버에서 생성된 다른 주파수 영역대의 소리들이 도관을 통해 보어까지 보내져 청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인클로저 내부에서 소리가 합쳐진 채로 전달되는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퍼 오디오의 형제 브랜드인 64 오디오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방식입니다. 티아 어쿠스틱 챔버라 불렸던 64 오디오의 기술은 어떠한 도관도 사용하지 않고 인클로저의 설계를 통해 서로 다른 드라이버들이 생성한 소리를 인클로져 내부에서 합성하여 전달한 바 있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드라이버의 디자인은 다르지만 컨셉 자체는 64 오디오의 것을 계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가져오기엔 무언가 아쉽지요. M5에 사용된 저음역대를 담당하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드라이버의 전면이 인클로저의 안쪽 벽면에 붙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소리가 인클로저를 타고 울릴 수 있도록 배치해 둔 것입니다. 마치 인클로저가 저음역을 재생하는 또 하나의 패시브 라디에이터 역할을 담당하는 효과를 노린 듯합니다. 퍼 오디오측에서는 이를 통해 보다 풍성한 저역을 들려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밖에 다이내믹 드라이버 주변에 ATOM이라 부르는 두 개의 벤트를 배치하여 내부의 압력을 효과적으로 배출시키는데, 이 역시 64 오디오의 APEX 기술과 유사한 컨셉의 압력 조절 기술입니다. 



선명함. 깨끗함. 화려함


  기술적인 면만 보았을 때 퍼 오디오는 64 오디오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때문에 저는 제품을 듣기 전 과거 티아 포르테의 소리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듣자마자 제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가 버렸습니다. 이게 만약 개발자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면 64 오디오의 벨로노즈코 형제들 중 추구하는 소리 방향이 달랐던 보그단 벨로노즈코가 ‘너희들과는 같이 일 못해!’라며 회사를 뛰쳐 나와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음에는 아스텔앤컨 주로 SP1000, 코드 모조폴리와 헤드앰프사의 피코슬림 헤드폰 앰프 조합을 사용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이 M5는 함께 사용하는 기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M5는 117dB의 비교적 높은 감도의 이어폰으로 배경 노이즈를 제법 잘 잡아내는 편입니다. 가령 코드 모조에 직결했을 때에는 배경 노이즈가 살짝 들리는 수준인데요. 때문에 배경이 정숙한 플레이어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스펙상 M5의 임피던스는 6.8옴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웹을 뒤져보니 주파수에 따라 2옴 미만까지도 임피던스가 내려갑니다. 제가 접한 이어폰들 중에서 임피던스가 가장 낮은 제품 중 하나일 듯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의 출력 임피던스가 높을 경우, 그리고 앰프의 전류량이 충분치 않을 경우 제품이 본래 의도했던 소리와 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M5는 감도가 높기 때문에 단순 볼륨 확보에는 별 문제가 없을지라도, 매우 낮은 임피던스로 인해 출력 임피던스가 매우 낮으면서 충분한 전류 출력을 보장해 줄 만한 수준급의 플레이어 또는 앰프와 함께 사용해야 제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까다로운 이어폰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에 M5를 직결해서 들었을 때와 앰프를 달아주었을 때, 모조에 M5를 직결해서 들었을 경우와 저임피던스 이어폰에 특화된 헤드폰앰프를 연결해서 들었을 때 중고역의 살집을 비롯한 음역대 밸런스가 모두 달라집니다. 이러한 특성을 제대로 맞춰주지 못하면 M5은 저역은 부풀려지는 가운데 중고역은 밀도가 떨어지는, 단순히 날카롭게 깽깽대는 신경질적인 소리를 들려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두에서 저는 이 정도 가격의 이어폰이 가치를 가지기 위해선 자신만의 개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니 우선 M5의 개성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M5가 가지는 최대의 장점은 깨끗하고 화려한 중고역의 표현력입니다. 이 부분은 비단 M5뿐 아니라 퍼 오디오 브랜드가 가지는 정체성이라 하겠습니다. M3나 M4 역시 기본적인 음색은 고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들었을 때 M3와 M4의 소리와 M5의 소리는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M3, 4의 경우 타 음역대가 고역을 받쳐주지 못하다보니 때로는 다소 불편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는데요. M5에 와서는 저역의 울림이 뒷받침되면서 불편함이 눈이 번쩍 뜨이는 화려함으로 탈바꿈합니다. 


  저는 이어폰에 사용된, 브랜드에서 강조하는 기술력이 소리에 그대로 반영된 것을 알아차렸을 때 재미를 느낍니다. 아무리 기술을 쏟아 넣었더라도 결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M5에서 강조한 DB, 보어의 끝단에 고역과 초고역을 담당하는 드라이버를 배치한 것은 쏟아져 내리는 듯한 선명하고 깨끗한 소리로 드러나는 듯합니다. 고역의 표현력은 공간의 개방감과 연관됩니다.  M5는 굉장히 넓은 스테이징을 자랑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는 좌우 너비, 그리고 위쪽으로의 공간이 상당히 넓게 확장되는 편입니다. 이는 가령 드럼 심벌이나 윈드 차임처럼 시원한 찰랑임을 동반하는 악기 연주를 들었을 때 잘 체감됩니다. 마치 천장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M5는 소리의 중심점이 조금 높은 편입니다. 고역의 화사함뿐 아니라 중역, 그리고 저역까지도 제가 생각하는 음의 기준보다 반 계단 정도씩은 올라간 곳에서 재생됩니다. 따라서 무게 중심이 낮은 곳에 자리를 잡는 안정적인 소리를 선호하는 분이라면 다소 가볍고 산만하게 들릴 수 있겠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중심점이 높다는 것이지 토널 밸런스가 고역 위주로 완벽하게 치우져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렇게 화사한 음색의 이어폰에서 중요한 것이 저역일 것입니다. 저역이 제대로 구심점을 잡아주지 못한다면 정말로 힘없이 날라다니는 소리로 들리기 쉬운데, 다행스럽게도 M5의 저역은 양감이나 울림 모두 제 기능을 하는 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델의 ‘I Miss You’는 드럼이 상당히 강조되는 스타일의 곡입니다.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한 리듬의 드럼이 빠르진 않지만 마치 펑펑 터지는 폭죽처럼 이어집니다. M5가 들려주는 드럼 소리는 통통 튀는 맛이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M5는 인클로저 자체를 마치 하나의 드라이버처럼 사용하여 저역의 울림을 보다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접음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울림 표현에 강점을 가집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깊게 떨어지는 묵직한 맛이 조금 부족합니다. 때문에 강렬한 인상의 고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하게 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제대로 대우를 해준 M5의 중역의 음색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화사하고 선명하면서도 매마르지 않습니다. 2년 만에 신보를 선보인 노라 존스의 <Pick Me Up Off The Floor>를 들어 봅니다. 이번에도 노라 존스의 여느 앨범처럼 멜로디와 리듬을 위한 최소한의 악기 연주 위에 노라 존스의 보컬이 도드라지는데, 노라 존스 특유의 약간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우 또렷하게 재생됩니다. M5의 중음역대는 매칭에 따라 소리가 가장 확연히 바뀌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보통의 경우 플레이어의 질에 따라 당연히 해상력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M5의 경우에는 해상력뿐 아니라 살집이 빠지면서 다소 경질의 소리로 들릴수도, 혹은 화사하고 선명하지만 어느 정도 밀도도 가지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을 정도로 차이가 여느 이어폰들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요즘의 트랜드에 맞추어 


  과거 우드 계열 스피커가 대부분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 출시하는 하이엔드 스피커들은 금속 재질의 인클로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피커를 하나의 악기로 여기기보다는 소리의 보다 정확한 재현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결과인 것 같습니다. 통의 울림을 통해 만들어지는 부드러운 잔향이 현대적인 기준에서는 불필요한 진동에 의해 발생하는 왜곡처럼 받아들여지는 셈입니다. M5는 다분히 현대적인 성향의 이어폰입니다. 특히나 M5의 선명하고 시원한 중고역은 좋게 말하자면 세련미 넘치는 도시 남자 같은 이미지가, 나쁘게 말하자면 정내미 없는 차가운 완벽주의자 같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성능 면에서는 매우 훌륭합니다. 다만 저의 경우 M5는 음악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사용할 만한 이어폰은 아니었습니다. 휴식이라는 단어보다는 각성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더라고요. M5와 함께라면 머릿속에 음 하나하나가 팍팍 꽂히는 느낌이 무엇인지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점, M5는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이어폰입니다. 앰프의 출력 및 배경 정숙성, 음원의 품질, 플레이어와의 매칭까지 꼼꼼히 따져야만 비로소 본인의 실력을 뽐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제품의 가격만큼이나 주변 환경을 꾸리는 데에도 보다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류현진도 한화에 있을 때에는 9승밖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작년에 14승을 쌓아 올렸지요. 여러모로 까탈스러운 녀석인데, 과연 어떤 분이 이 녀석을 제대로 길들일지 궁금합니다. 



*이 글은 셰에라자드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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