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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뚠뚠한 D Jan 15. 2023

뚠뚠한생각-9

이 세상에 슈퍼맨은 필요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든 걸 잘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내 선택과 행동들은 최선을 선택하려고 했지만, 최악의 선택을 하기도 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보고 피해도 봤을 거다. 하지만, 개중에 분명 잘한 일도 있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해지고 싶기도 했지만 그게 얼마나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지 잘 알았다. 되는대로 살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몇 년 전에는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었다. 회사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척척 해결하고자 했었고 내 능력이 충분하지 않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던 거다. 


내가 슈퍼맨이 되고자 했을 때를 보면 앞뒤 안 가리고 일에 몰두하였다. 몇 날며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근처 찜질방에서 씻고 오거나 의자를 붙여 쪽잠을 잤다. 동료들과는 우스개 소리로 집에 다녀오겠다며 새벽에 택시를 탔다. 다른 사람이나 팀원들은 쉬게 해도 내가 쉬는 건 꼭 쉬어야만 하는 큰일이 아니면 사치처럼 여겼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쁜 동료였고 나쁜 팀장이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그렇게 일을 하는 게 어떤 기준이 되었다. '디자인 팀장은 밥먹듯이 밤을 새운다. 야근 좀 하는 게 뭐 대수냐, ' '지금 일이 안 끝났는데 집에 갈 생각이 드니' 같은 말이 종종 나왔다. 다 같이 일하는 공동체 속에서 나는 내 욕심에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였다. 


신입 디자이너에게 일을 시킬 때면 내가 하는 야근은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이 야근을 하면 나 때문이거나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져 일을 조금만 주었다. 또, 내가 하면 금방 끝날걸 굳이 하나하나 설명해 가면서 일을 주는 게 귀찮게 여겨지기도 해 내선에서 끝내버리기도 일수였다. 그렇게 하고 보니 나는 마치 게임 속 초보자 사냥터를 휩쓸고 다니는 고랩캐릭터였다. 내가 많은 일을 수행하고 그 속에서 많은 경험치를 쌓으며 실력을 쌓았으면서, 말은 그들을 배려한다고 하고는 성장할 수 있는 경험치를 모두 독식해 버렸다. 심지어 나에게는 더 이상 경험치를 주지도 못할 일들마저 내가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슈퍼맨은 위험하다. 스스로나 주변인에게도.


히어로 영화를 보면 영웅들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에 맞서 싸우며 선량한 시민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한다. 사회라는 '몸'속에 악당이라는 '세균'이 출현하면 영웅이라는 '항생제'가 등장하고 사태는 진정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너무 많은 항생제를 남용하면 면역력 자체가 낮아지는 부작용 나타난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 슈퍼맨이 있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매끄럽게 해결이 된다. 한두 번이야 좋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편하고 안정된 상태에 적응을 더 빨리한다.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다가 그 사람이 퇴사하는 순간, 베트맨이 없는 고담시티고 마블히어로가 없는 뉴욕이며, 슈퍼맨이 없는 지구가 된다. 


현실에서는 애초에 슈퍼파워를 지닌 영웅이 없다. 그렇기에 누구나 어느 순간 영웅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될 때도 있으며 그저 그런 액스트라로 살아가기도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냥 직원, 그냥 팀장, 그냥 사장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 더 나은 삶과 회사의 실적을 위해 일을 한다. 우리의 일상이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바뀌고 일상을 살던 내가 슈퍼맨 같은 영웅이나 월급루팡 같은 빌런이 된다면, 그에 따른 사건이 쓰나미처럼 나의 일상을 휩쓸고 지나갈 수도 있다.


애초에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 


영웅이 나타났다는 것은 악당의 등장처럼 큰 사건이 있다는 거다. 평탄한 사회라는 건 사회 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어 영웅이 출현할 사건 자체가 없다는 거다. 회사에 영웅이 슈퍼맨이 있다는 건 그 회사는 난세와 같은 사건 사고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장사를 한다면 사장이 영웅이 되어도 된다. 하지만 사업을 한다는 건 시스템을 만들어 어느 구성원 한 명이 이탈하더라도 금세 회복이 되어야 한다. 자생 능력이 없어 슈퍼맨에 의지하는 회사라면 즉시 탈출하길 바란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슈퍼맨인가 싶다면 망토 따윈 갖다 버리고 보통 사람이 되길 바란다.


희생은 영웅의 기본 소양이고, 영웅은 단명한다. 오래 사는 게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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