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어려운 상사들의 행동에 대한 구차한 변명
인사 업무를 하며 지금까지 직원들과 한 수많은 면담 중 1위의 주제는 압도적으로 상사입니다. 상사가 무능력해서, 성격이 나빠서, 감정 기복이 심해서, 강압적이라서, 목소리가 커서, 입이 거칠어서, 자기밖에 몰라서, 이랬다 저랬다 해서 정말 다양한 이유들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들을 들어 보았습니다. 하물며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상사의 모습들은 대부분 파렴치하고 포악하며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악역으로 나옵니다. 게다가 피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대상이라 그 영향력은 더 큽니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바로 상사가 아닐까 합니다. 회사에 입사 해 상사를 떠난다는 말처럼 상사가 한 개인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상당히 큰 존재가 상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대체 상사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요?
저에게 처음으로 팀원이 생겼던 것이 2005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상사로써 미숙했는지 떠올리기도 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의견 일치도 잘 안되었고 제가 그 직원의 개발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부분도 거의 없었으며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다른 업무로 이동을 하며 그 관계는 끝났습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상사의 역할을 해 오고 있습니다만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백해 본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가장 어렵고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도 바로 상사 역할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주어진 상사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항상 공부하고 고민을 하며 여러 시도들을 해 보아도 알 듯하면서도 어떤 때는 정말 갈피를 잡기 힘들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좀 더 상사의 입장에서 일종의 변명 혹은 넋두리를 해 보려 합니다.
일부러 나쁜 상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우리 중 누구라도 일부러 나쁘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외 없이 누군가를 매니징 하기 시작하는 팀장 레벨이 되면 사람은 다 좋은 상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나쁜 상사들을 반면교사 삼고 또 소수(!)였던 좋은 상사들로부터 배운 점들을 발판 삼아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리더십 행동들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좋은 상사가 되고자 나름의 노력들을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한 상사를 본 적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대하면 안타까운 생각들이 들지만 본인의 생각처럼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실패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반쯤 포기한 채 그냥 일만 해내려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상사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상사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 중 아무도 나쁜 사람이 일부러 되려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좋은 의도로 한 일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나 무반응인 경우 의욕이 저하되고 나름의 상처도 받습니다. 상사도 상처받고 삐지기도 합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윗사람이,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사회 경험도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이 속좁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사람이란 존재들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상사라는 이유로 인해서 그런 모습들을 애써 감추기도 합니다.
또 상사의 입장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같이 유교적 배경으로 인하여 연공이나 윗사람의 역할이 강조되는 환경에서는 본인이 잘 모르거나 자신이 없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신이 뛰어나더라도 요새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업종을 불문하고 더욱 복잡화되는 세상에 한 개인이 모든 것을 다 알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상사라는 한 개인이 다수의 팀원보다 더 모르는 일들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문화적으로는 이런 취약점을 보이는 것들이 여럽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거나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반대로 강압적이거나 의견을 무시하는 행동들을 보이게도 됩니다. 실제로 제가 관찰한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잘 무시하고 강압적인 상사들의 사례들은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아주 예외적으로는 너무 똑똑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약점을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 상위 역할을 맡은 사람이 약점을 보이면 자칫 나를 우습게 보면 어떨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최근의 조직들은 세대 간의 간격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큽니다. 저를 포함 해 지금 많은 상사의 역할들을 하는 소위 X세대들은 여전히 민주적이지 못한 교사나 부모들로부터 강한 권력의 통제를 받으며 성장하여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대들을 마주하며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상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보의 소외입니다. 권력의 거리가 멀고 위계가 여전히 큰 역할을 하는 우리의 조직문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사들은 정보들로부터 차단이 됩니다. 회사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부서의 인턴 직원이 되는 것처럼 동시에 상사들은 업무적인 결과들을 제외하고 부서 혹은 팀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과 과정들로부터 소외가 됩니다. 그럴수록 좋은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워집니다. 만약 어떤 상사가 그런 정보들에 관심이 많아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정보의 왜곡 정도가 심합니다. 소수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의 입장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반영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직원들의 의견은 듣더라도 정보가 너무나 제한적이고 추상적이며 모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직원들이 다른 직원과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상황에 대한 관찰이나 다른 객관적 자료 없이 이야기만 듣고 그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또한 팀의 구성원들이 상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관계에서 타인에 대해 우리는 각자의 접점에서 얻는 정보로 파악을 합니다. 나의 상사가 수행해야 하는 많은 역할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쩌면 당연하게 나와 관련된 분야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그를 토대로 파악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나와 접점에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 얼만큼의 다양한 영역이나 업무를 수행하는지 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한된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되고 "도대체 이렇게 중요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오해를 받게도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상사에 대해 다소 초인적인 요구들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소위 이야기하는 윗사람에게 너무 많은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영웅이나 존경받는 인물이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이유도 높은 사회적 기준이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 역시도 제 상사가 능력이 출중하며 동시에 저를 좋아하며 인격적으로 훌륭하기를 기대하며 공정하고 친밀하며 배울 점이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그때마다 실망하고 불평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상사도 나와 같은 사람이며 어떤 능력이 좀 특출 나거나 경험이 더 많아서 등의 이유로 현재 부여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 때로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한결 편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기대가 충족되는 부분들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에 대한 균형을 잡아가며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변명들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오히려 구차하게 보이는 경우들이 더 많아 역효과만 있는 경우들도 많고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변명보다는 침묵이 낫다고도 합니다. 저의 상사로서의 변명이 아마 그런 면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도 있고 여러 모로 탐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저에게는 적어도 제 상사에 대한 기대치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보고 다시 조정을 해 보는 계기는 된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상사들이 좀 더 나은 존재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발휘하며 동시에 또한 상사로부터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