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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erious J Mar 11. 2018

'좋은 연구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바보가 될 용기

     기약 없는 무언가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붓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혹자는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날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질문을 던지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의외로 그러한 ‘바보’들이 적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연구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기약 없는 보상’을 위해 인내하고 노력할 수 있는 ‘바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구단도 다 떼기 이전의 꼬맹이였던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아마 지금 전 세계의 다른 수많은 아이들도 그 당시의 나와 같이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중 ‘과학자’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백 명 중 한 명? 천 명 중 한 명? 아니, 수십만 명 중에 한 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 명도 없을지도… 심지어 나의 학부 동창생들 중에도 그저 희망 어린 눈빛으로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논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 더 어린 아이들은 그저 막연하게 과학자에 대한 판타지에 빠져있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철없는 어린 시절에 한정될 뿐이다. 우리가 일단 ‘대학원’이라는 하나의 길로 접어든 순간, 우리는 연구자가 무엇인지, 또 연구란 무엇인지에 대해 확고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구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있어서 연구에 대한 애매모호한 관점은 방향성을 잃게 만드는 악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이와 같은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전에 한 친구는 내게 “자연에도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는데,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애매모호함은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그 친구의 말처럼 인간의 삶은 불확실한 일들 투성이고, 그 와중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이 불확실하다고 해서 그 현실에 대응하는 우리의 가치관, 다른 말로는 신념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수없이 많이 발생하는 연구과정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연구철학 없이 무작정 분위기에 휩쓸리고 만다면, 좋은 연구결과는커녕 그대로 도태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꼭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연구신념은 “끈기”이다. 연구에는 ‘시간’이라는 큰 기회비용이 뒤따른다. 특정 연구에 쏟을 시간을 다른 연구 혹은 연구가 아닌 다른 일에 투자하였다면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획득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연구자들은 어쩌면 자신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그 무언가를 향해 후회하며 엄청난 갈등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좋은 연구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좋은 연구자란,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말이다. 이는 아무 전망도 없는 연구주제를 선택했더라도 무조건 직진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나아갈 길을 결정하기 이전에 끊임없이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여 신중하게 선택을 하여야 한다. 일단 나아갈 길을 정하였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조금씩 전진해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좋은 연구자’와 ‘현명한 사람’은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 년 간 노력하다가 결국 자신의 목표를 접고 다른 길로 선회하는 사람은 사실상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진로를 단호하고 냉정하게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현명한 투자자란 이러한 사람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를 좋은 연구자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모든 좋은 연구자들은 ‘바보’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미련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진정한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바보’가 되고 싶다. 주변에서 아무리 미련하다고 비웃어도 내 연구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 연구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면 물러서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전진해볼 생각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보가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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