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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Mar 01. 2020

우리는 왜 이혼했을까

"근데, 이런거 물어 봐도 되나? 이혼은 왜 한거야?"


내 근황을 업데이트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었던 것은 이것이다. 묻지 않는 사람들도 차마 묻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궁금했는지 사정을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내 지인에게 묻기도 했다. 나도 남의 이혼에 대해서 그랬던 것 같다. 톱스타들의 이혼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들의 이혼사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버전으로 찌라시가 양산되는 것을 보면 남의 파경의 이유가 궁금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솔직히 내가 헤어지게 된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혼을 결정하고 난 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누가 '너 왜 이혼했냐'라고 물어보면 나 뭐라고 해야 하지. 차라리 바람이라도 피웠다면 얘기하기가 쉬울텐데(상대가 바람나 괴로운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결혼생활 중에 나를 괴롭게 한 이유들은 참 많았는데,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많은 경우에 이혼사유가 '성격 차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포장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인생 드라마인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현빈(정지오 역)이 송혜교(주준영 역)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있다.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의 부모를 만나고 돌아온 현빈은 송혜교에게 말한다. 너 그냥 강준기(주준영의 직전 구남친) 만나라고.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잘났고, 나는 굳이 그걸 뛰어 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피곤하다고. 너랑 나랑 무슨 그렇게 대단한 사랑을 한다고 내가 이런 초라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때 흘러나오는 현빈의 나레이션이 있다(오랜만에 다시 이 장면을 찾아서 봤는데 아, 정말 목소리에서까지 잘생김이 묻어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초라함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데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는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연인 사이에서나 부부사이에서나 모든 헤어짐에 적용될 수 있는 공식과도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10년 넘게 지난 지금 다시 보니 더욱 뼛속 깊이 공감이 간다. 보편적인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아무나 겪지 않는 비보편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구절절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굉장히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부모한테 등 떠밀려 결혼했고, 나이에 쫓겨 결혼했더라도 잘 사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와 나는 아니었다.


드라마처럼 자격지심이 문제였고, 초라함이 문제였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문제였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였고, 성격과 가치관이 문제였다.

 

서로의 상식이 다른 것도 큰 문제였다. 기호의 다름은 서로 맞추어 갈 수 있지만 상식의 다름은 절대로 극복될 수 없다. '상식(常識)'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네이버 국어사전). 즉, 상식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와 나는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의 기준이 달랐고, 할 수 있는 행동과 할 수 없는 행동의 기준이 달랐다. 이처럼 당연한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홍수로 유실되어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 알 수 없는 지뢰와 같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지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할 수가 없으며, 무방비 상태로 터지기 때문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천이 지뢰밭일 것만 같은 공포 때문에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경험한 수준까지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남한테 들어서 알게 된 간접경험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인식을 확장해 줄 뿐 이해의 영역까지 넓혀주지는 못한다. 존중을 받아 본 사람만이 거절을 당하더라도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의 존엄함을 알기 때문이다. 가족이든 애인이든 누군가와 진심어린 애정을 주고 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그것은 강아지에 대한 애정과는 다르다). 그리고 동정심 또는 보호본능에서 기인한 뒤틀린 애착과 사랑을 구별할 수 있다. 어릴 적 형제자매 또는 친구와 싸워보고 손 내밀고 안아 줘본 사람만이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다. 갈등해결 무능력자가 할 수 있는 건 회피 뿐이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핸들링하는 법은 경험을 통해 학습될 수밖에 없다. 머리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술을 먹어보고 안 먹어보고 혹은 아침운동을 해보고 안 해보고의 차이라면 지금이라도 해보면 된다. 그러나  그와 나의 경험의 차이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것으로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우리가 서로 각자의 경험을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슬프게도 겪지 않았어야 했던 것이었고, 일부는 반드시 겪었어야 했던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 그의 삶을 생각해보면 영문도 모른채 내가 겪어야 했던 결혼생활 중의 여러 어려움들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도 참 딱했다. 그래서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와 나는 앞으로도 서로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앞으로도 지뢰는 예상치 못하게 곳곳에서 터질 것이고, 나는 죽는 날까지 뒷통수를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떠안고 싶지 않았다. 그건 지금까지 정성스럽게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현빈은 어찌어찌 하다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 잡히다가 갑자기 다시 마음을 바꾸어 송혜교의 집으로 달려가고 둘은 눈물의 화해를 한 후 다시 잘 지내기로 한다. 그들은 끝까지 행복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가 느꼈던 자격지심, 초라함 등의 한계는 잠시 잠잠해진 것일 뿐 다시 살아나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을 것이고 또 다시 이별을 말했을 것이다(부디 결혼하기 전에 헤어졌길). 언젠가 헤어지고 난 후 '그때 그냥 헤어지고 말 걸' 후회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주변 싱글들에게 이성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주제 넘게 훈수 두는 것 같긴 하다만 결혼은 이상형과는 무관한 것 같다. 이상형이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의 문제이다. 직업, 외모, 성격, 돈, 집안, 학벌 등. 하지만 연애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상대의 특정 요소에 내가 느꼈던 애정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 기간은 생각보다 꽤 짧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어떤 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상대의 어떤 요소가 좋더라도 상대의 성격이건 돈이건 부모의 문제이건 간에 또 다른 요소를 내가 도저히 버텨낼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한계인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나쁜놈은 없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그의 어떤 부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한계는 상대적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특히 결혼에 있어서 우리는 각자의 한계를 실제로 살아보기 전까지는 대체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결혼은 복불복이라고 하는 건가 보다.


결론적으로 나는 왜 그와 이혼한 것일까. 정리하기 참 복잡한데, 한 마디로 각자의 한계였다. 한계에 봉착해도 그것을 인지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그럴 의지도 의사도 없었다. 그 역시 그와 나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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