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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Apr 12. 2020

이혼 후에 오는 것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해서 뭐든 미리 준비를 하는 편이다. 여행을 갈 때는 미리 갈곳을 리서치 하고 동선도 짜본다. 1년차 때 그러니까 회식자리 만년 막내일 때는 그날 닥쳐올 “막내가 건배사 좀 해보게”를 대비하여 미리 쓸만한 건배사도 준비해갔다. 요즘 재판을 가기 전에도 판사가 물어볼 만한 사항을 대강 예상해보고 미리 답변을 준비해서 가고, 회사에서 선배한테 싸한 느낌의 메일을 받으면 곧 깨질 것을 예상하고 어떤 표정과 태도로 대응해야 할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나도 이혼은 처음이라 이혼 후 겪게 되는 후폭풍에 대해서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였다. 대체 어떤 것들이 닥쳐올까 너무 두려워 네이버 검색창에 “이혼 극복” 이런 것들을 쳐보기도 했는데, 이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결혼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런 예습 없이 이혼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된 새로운 감정들을 대면하고 수용하는데 상당히 힘이 들었다.




이혼 후에 찾아온 감정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첫번째는 분노였다.


짧았던 결혼생활 중에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숱하게 내 속을 뒤집었고, 자신들의 요구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는데 그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특히, 마지막 순간 그가 보여준 민낯은 대체 내가 지금까지 누구와 살았던 것인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의심될 정도로 낯설고 또 무서웠다. 그의 말과 행동은 끝이 없는 돌림노래처럼 하루종일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에 빠져 상당 기간을 허우적댔다. 기억은 분노를 불렀고, 분노는 또다른 생각을 불러내 더 큰 분노를 낳았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물론 나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미워해봤다. 시도 때도 없이 헛소리 작렬하는 개저씨 직장상사, 온갖 잡일을 떠 넘기며 나를 괴롭혔던 회사선배, 남편 자랑 늘어놓으며 행복하다고 확성기로 외쳐대는 회사 동료, 갑질하는 의뢰인들, 나랑 같이 죽는 소리 하더니 먼저 좋은 회사에 취직한 친구 등등.


그런데 이혼으로 인한 분노는 차원을 달리 했다. 한 번 욕하고 끝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충격적인 몇 가지 대사와 장면들은 정지화면처럼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고, 그와 이미 물리적으로 분리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를 짊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은 인류애를 구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하고 싶다면 미움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인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어떻게라도 분풀이를 하지 않으면 분노로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분노를 해소해 보고자 명상을 배워도 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손절의 방식과 수준은 나의 예상 범위를 훨씬 넘어 섰고 당황한 나는 마지막 순간 그가 쏟아냈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게 두고 두고 한스러웠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빈틈을 찾아내 근거를 대며 조목 조목 반박을 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보통의 경우 반박할 꺼리가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곤 하는데, 이번에는 할말은 너무 너무 많은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 나름의 분노 해소 방법을 강구해 보았다. 더 이상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고, 전 '남편'이라고 명명하기도 싫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간의 그의 행태를 종합하여 그에게 'ㅂㅈ'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내가 못다한 말을 그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공동 작명가들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문의 카톡을 보내자. 이미 나를 차단했다면 1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텐데 그 경우 더 열 받을 수 있다. 그럼 편지에 할 말을 써서 보내자. 뜯지도 않고 그냥 버릴 수가 있다. 그럼 포스트잍에 할 말을 써서 인편을 통해 등에 몰래 붙이고 오자. 본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인데 본인이 모를 수가 있다. 그럼 ㅂㅈ와 같은 회사 계열사에 근무하여 메신저가 가능한 친구(공동 작명가 중 1인)가 메신저로 할 말 폭탄을 대신 보내도록 하자. 그러다가 회사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면 어떡하나. 그렇다면 친구가 언젠가 퇴사하게 되면 퇴사 전날 보내도록 하자. 그래 그러자(근데 아직까지 퇴사 안 하고 있다). ㅂㅈ의 엄마에 대해서 책을 써서 출판하자. 제목은 "며느리 괴롭히기의 정석"이다. 그 사람들 책 많이 안 읽는다. 그럼 우선 책을 내고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나중에 드라마로 제작하자. 화를 지금 당장 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리고 본인 얘기인 줄 모를 수 있다. 그럼 걔네 집 앞이나 회사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자. 곧 겨울인데 너무 춥다.


이렇게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못다한 말을 전달할 방안을 심도 깊게 강구해 보았으나,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한 막걸리 집에서 이 논의를 처음 시작하였는데, 그때가 이혼 후 내가 처음으로 배가 땡기게 웃었던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운동을 한 안면근육에서 경련이 일었다. 아쉽게도 '못 다한 말 전달하기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 갔지만, 작명을 하고 전달 방법을 고민하면서 친구들과 깔깔 대며 웃었던 그 시간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분노를 조금씩 사그러들게 했다.


중학교 때 성문기본영어 책에서 속담 “Laughter is the best medicine."을 외운 적이 있다(아, 옛날사람이여). 대체 이걸 외워서 어디다 쓴단 말인가 투덜대며 오로지 집에 가기 위해서 꾸역꾸역 외웠는데(대치동 그 학원은 매일 쪽지시험을 봤고 통과하지 못하면 다 외울 때까지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무려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굳이 외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두번째는 하늘에 대한 원망이었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났을까. 나는 살면서 누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거나 크게 원한을 산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그저 나한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그냥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 온 것 밖에 없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 걸까. 마치 길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불운할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이 사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번째는 후회와 자책이었다.


사실 뒤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불운이라는 건 이유 없이 그냥 찾아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던 나는 이혼의 원인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찾은 원인은 바로 나였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 결혼은 하는게 아니었는데,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 따위 이기지 못하고 멍청한 결정을 한 나 자신을 탓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분명히 결혼 전에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수 있는 시그널들이 많이 있었다. 왜 나는 알아채지 못했을까. 지나가면서 그가 했던 말, 순간적인 그의 행동, 가족에 대한 이야기, 지난 연애에 대한 감회. 그 속에 답이 있었는데. 산재하고 있는 그 퍼즐 조각들을 나는 다 맞추지 못했고, 결국 결정의 순간까지 큰 그림을 볼 수 없었다.


왜 나는 대체로 편협하면서, 가장 이기적이어야만 했던 순간에 갑자기 가치상대주의자가 되었던 것일까. 자책을 할 바에야 차라리 분노를 느끼는게 나았다. 후회와 자책은 스스로를 갉아 먹는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393~394쪽 참조).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후회'라는 감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고 한다.


후회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 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이라는 부분인데, 즉 후회에는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정신적 태도, 다시 말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의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모든 불행을 직접적으로 초래할 수 있는, 일종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에만 우리는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불운을 자기가 초래한 것이라고 믿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은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믿는 것만큼 거대한 착각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면 모든 불행을 객관적으로 보기 보다는,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 보기 보다는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후회라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든데, 결국 후회는 신과 같은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주 찾아 오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불운이라는 건 누구의 탓일 수가 없다. 그건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벼락이 떨어진 그 자리를 왜 그 시간에 지나갔느냐고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벼락은 그냥 떨어지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는 내가 불운을 막을 수 있었다고 내심 생각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불운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일어나는 것이고, 나는 그냥 그걸 겪었을 뿐이다. 착하게 살아서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 아니듯 내가 죄가 있어서 벼락이 나에게 꽂힌 것은 아니었다. 불운에 대한 후회는 신의 영역이다. 나는 인간이기에 후회를 할 자격도 없다.


그리고 사실 나는 할 만큼 했다. 경계하는 마음으로 그를 살펴보았고, 친구들 여럿에게도 괜찮은 사람인지 봐 달라고 보여 줬다. 내동생 빼고는 모두 좋은 사람 같다고 했다(이로써 내동생은 괜찮은 남자 감별사로 등극했고, 앞으로 누굴 만나게 된다면 사전 결재를 받기로 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혼하자는 제안에 몇 달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론은 틀렸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여 숙고했고 그런 다음 결정했다. 결혼 전의 여러 시그널들은 사실 너무나도 사소하여 '힌트'라고 명명하기에도 어려웠다. 그 누구라도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최선을 다 했던 그 사람의 그 간의 노력에 대해서까지 비난해서는 안 된다.


결혼 중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내 입장에서의) 비이성과 비합리를 인내하고 자존심을 버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뻣뻣한 며느리 길들이기였겠지만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그들은 그만큼 나를 몰랐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좀더 빨리 결단을 내리고 발을 뺐어야 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즉 조금 더 벼랑 끝으로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헤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성공을 위해 일만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인간이 서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기 위해서도 필요한 고통의 총량이 있다. 그걸 채우는 시간이었다.


어쨋든 나는 더 이상 자책과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영역이 아닐 뿐더러 후회할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었다.

 



이 단계까지 지나가고 나면 그냥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그런 순간이 온다. 성인 군자나 뛰어난 명상가들이라면 면벽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번뇌로 충만한 일개 중생에 불과한 나는 앞서 얘기한 여러 감정곡선을 오랜시간 거쳐서야 비로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없이 초라하고 외로웠을 그가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아야 했던 그의 부모에게도 연민이 느껴졌다(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그와 나는 서로가 아니었다면 누군가의 좋은 남편 또는 아내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서로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가 그것을 벗었다. 돌이켜보니 그게 다였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이혼은 천재지변이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는 건 다 지난 후 돌이켜 보았을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지나가는 길에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것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겪었다. 그리고 지나왔다. 그뿐이다. 그걸 겪어야 했던 이유는 따로 없기 때문에 애써 찾아내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천재지변이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찾아온 것처럼 이에 버금가는 행운도 그 언젠가 무방비 상태인 나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할 것이라 믿는다. 이 역시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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