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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Mar 28. 2020

아주 멋있어 넌 여전히

예전부터 난 내가 살아오며 맺은 관계들에 대해서 '유(有)의미'와 '무(無)의미'로 정의하곤 했다. 물론 모든 만남과 경험은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상대적으로 나에게 보다 영향을 많이 주었고, 오래 지속되었으며, 기억에 더 오래 남았고, 그로 인하여 그 후의 나의 인생에 계속 영향을 주게 되는 그런 관계들이다. 친구, 선배, 회사 사람 등 모든 관계 맺음에 적용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남자친구에 있어서 특히 그랬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변호사 하기에 피곤한 스타일).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는 좁은데, 대신 깊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깊게 가지 못한 연애는 빨리 끝이 났다.


아마 내가 서른이 아니었다면 그 연애도 금방 끝이 났을 것이다. 그와 나는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고 나는 대체로 심심했다. 나는 (일방적으로) 많은 얘기를 했지만 그는 대체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에도 나는 어렴풋하게 나마 이것이 유의미한 관계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불안한 서른이었고, 주변에서 많은 삼십대 초반들이 그런 적당한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있었다. 많이 주저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나도 대세를 따랐다.


나에게 있어서 그는 기억에 남는 것도 많지 않고, 기간도 짧았다. 같이 살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누가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그러게 나도 참 신기하다. 심지어 요즘 내가 "나 어제 술 먹고 사고쳤어"라고 하면 내 친구들은 "너 설마 XXX 한테 전화한 건 아니지?!!" 라고 묻는데, 여기서 XXX는 내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마지막으로 유의미했던 나의 구남친이다. 그 정도로 나는 정말 지난 결혼생활에 대한 미련이 1도 없다(1은 무슨...마이너스라고 해두자).


물론 이혼 후에 고강도의 고통이 찾아 왔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멍청한 결정에 대한 자책,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결정이 늦어진 것에 대한 후회, 불운을 내게 준 하늘에 대한 원망이었지 그리움이나 애틋함 같이 일반적으로 연애가 끝났을 때 찾아오는 이별의 아픔은 아니었다. 30대에 적당한 만남 후 결혼했다가 헤어져 본 사람들이라면 깊이 공감하리라.


인간의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는 의지로 감정 또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나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요가로 몸을 다스리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후 나의 모든 생활패턴(빨래, 청소, 밥, 설거지, 장보기, 세탁소에 옷 맡기기, 화분에 물주기는 엄마가, 관리비는 면제)은 결혼 전으로 리셋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정신도 결혼 전 마인드로 그대로 리셋되었다. 이전의 나로 물리적, 정신적으로 복귀하자 '사람이 살면서 실수할 수도 있지 뭐' 라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 자책, 후회, 원망 같은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잊혀졌다. 그리고 나는 드라마 속 연애 이야기에 120프로 감정이입을 하며 어딘가에 분명 나의 황용식이가 있을거라 굳게 믿는 감성 충만한 사랑꾼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겪으며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방긋 웃으며 "나 진짜 이제 괜찮은데?" 하면, 안쓰러운 눈빛으로 “힘들 땐 그냥 힘들다고 말해도 돼.”라고 하거나 “난 네 얘기 듣고 솔직히 걱정 많이 했는데 이렇게 밝아 보여서 좋다.”라고 토닥토닥 취지의 말을 건넨다.


마음을 뒤집어 까서 보여 줄 수도 없고(나 이제 진짜 괜찮다고!! 믿어 달라고!!) 참 답답한 노릇이다. 토닥토닥이 필요한 시즌은 이제 지났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이혼의 애도기간은 대체 언제까지인 걸까. 이혼도 이별의 한 종류인 만큼 그 관계에 쏟아 부었던 마음의 정도, 딱 그 만큼만 힘이 든 것 같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학교 때 지인들을 만났다. 고시공부하고 연수원에 갔다가 곧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한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냈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의 근황에 대해서는 다들 건너 들어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얘길 꺼내지 않았다. 다들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아 내가 먼저 말을 꺼냈고, 왜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실수를 수습하였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설명을 해 줬다.


그들은 경청했다. 매우 숙연한 자세로. 10년이 지났지만 그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예전 그대론데, 나에 대한 시선만 바뀌었다. 속상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긴 헐리웃이 아니라 조선땅이고, 내 주변은 유달리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법조계인데. 바꿀 수 없는 건 그냥 받아 들이는 것이 편하다.


다음 날 전날 만났던 지인에게 오랜만에 정말 반가웠다고 앞으로는 자주 좀 보고 살자고 카톡을 보냈다. 그도 늙어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아주 멋있더라. 넌 여전히.”


손발이 없어질 것만 같은 그의 답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코 끝이 찡해 왔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던 바를 상대가 먼저 말해 주었는데,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다니. 사실은 나 자신도 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를 예전 그대로의 나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존감은 바이오리듬과 같아서 시기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한다. 자존감이 하강곡선일 때 오늘의 저 선물같은 말을 잊지 않고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 주어야겠다. 사람은 분명 지나온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대로 멋지다. 내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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