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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Oct 11. 2020

손절 무능력자의 공포증 극복기

To be continued

학창시절 나는 새 학년 첫 학기 3월이 참 싫었다. 병적인 수준의 낯가림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은 거부감을 넘어 공포감으로 확대되곤 했다.


아는 애가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하지?

점심을 혼자 먹게 되면 어쩌지?

혹시 나 말고 다른 애들은 서로 친해서 나 혼자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이런 류의 걱정으로 봄날을 한심하게 흘려 보내곤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우려했던 그렇게 철저히 혼자였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로운 교실에도 한 두명은 아는 애들이 있었고, 밥을 혼자 먹어본 적도 없으며(사실 교실에서 급식을 먹는 거라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최소한 옆자리에 짝이라도 있지 않나? 하여간 어릴 때부터 걱정도 풍년이었다) 봄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금방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곤 했다. 어떠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체 이 ‘혼자되는 것에 대한 공포증’의 원인이 무엇일까. 아직도 미스테리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저 먼 지방도시에서 시작됐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사투리의 구수함과 사람들의 인심, 로컬 맛집들, 하릴 없이 죽치고 앉아서 바라볼 수 있는 바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에 취해 그곳 생활이 그저 좋기만 했다. 여행 온 기분이랄까.


새벽에 일어나 바닷가를 뛰고(작심일일), 퇴근하고 흐드러지게 아름다웠던 벚꽃길을 걷고, 바닷가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굳이...). 그런 사진을 SNS에 올리면 달리는 수십개의 좋아요와 부럽다는 친구들의 댓글도 내가 그곳에 그렇게 빠르게 취하는데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한때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바다를 보고 술잔을 기울이며 갬성팔이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감성 터지던 술잔이 눈물 젖은 술잔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맛집이 넘쳐나도 같은 회사 아재들과의 회식 때 말고는 갈일이 없었고, 구수한 사투리 정감도 언젠가부터는 점점 이질감만 가중시켰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무도 없이 불 꺼진 그 어둠이 나는 너무 싫었다. 하늘과 땅에 돈을 뿌리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주말마다 서울행 기차와 비행기를 탔고(그 돈만 다 모아도 소형차 한대는 샀을 듯), 일이 많아 서울에 가지 못하는 주말에는 일을 마치면 시체처럼 드러 누워 있기만 했다.


그렇게 2년을 온갖 청승을 다 떨면서 버틴 다음 나는 사표를 냈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때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는 혼자서는 절대로 못 사는 사람이다. 혼자가 된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아니 이성이란 것이 내게 존재한 때부터 앓아 온 나의 ‘혼자 공포증’은 그렇게 서른이 넘어 가면서 점차 악화되어 갔다.




결혼도 그랬다. 너무나도 내키지 않았는데, 지금 이 결혼의 기회를 날려 버리면 영영 결혼을 못할 것만 같았다. 친구들은 이미 반 이상 결혼했고, 애기 엄마들이 되어 가고 있는데, 나 혼자 결혼을 못하면 늙어서 혼자 남게 될 것이고, 그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의 첫 생일을 잊을 정도로 나는 그에게 마음이 없었는데  이미 중증이 되어 버린 나의 ‘혼자 공포증’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와 함께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아마도 그도), 또 그 망할 ‘혼자 공포증’ 때문에 끝이 더 늦어지게 되었다.


얼마 전 ‘결혼 후 1년 안에 이혼한 사람들이 밝힌 이유 11가지(People Whose Marriage Lasted Under A Year Explain What Led To Divorce)라는 제목의 영국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 UK)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두번째 사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결혼 후 두 달 만에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30살이 되어 패닉에 빠져 프로포즈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승낙했다. 둘 다 바보같은 이유로 결혼한 것이다(Married two months. We didn’t love each other. I proposed because I was 30 and panicked. She said yes because she wasn’t sure anyone better than me would come along. Dumb reasons for both of us).


Wow. ‘혼자 공포증’에 걸려 삽질하는 젊은이들이 오픈 마인드의 당당하고 자유로운 개인주의자들로 가득차 있을 것만 같은 유럽에도 존재한다니. 위안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찼는데도 혼자인 여자들을 안쓰럽게 바라 보는, 그리고 그 여자들이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독한년 저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조선의 어르신들에 대하여 분개해 왔던게(나의 바보같은 선택에 일말의 일조를 하신 것 같아서) 조금 죄송해졌다. 비단 ‘조선’ 어르신들만의 생각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언젠가부터 연애가 끝나고 나면, 특히 좋지 않게 끝날 때면 의문이 들곤 했다. 대체 나는 왜 자꾸 쓰레기를 수집하는 것인가. 친구들도 넌 왜 자꾸 나쁜 남자에게 꽂히냐며 안쓰러워 하면서도(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나를 타박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매번 나쁜 사람만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도, 무난한 사람도 있었다. 사실 시작할 때는 누구나 잘해주고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판명된 사람과 시작을 했다는 것 자체는 잘못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맞지 않음을 알게 되면 끝을 내야 하는데, 나는 그걸 못한다는 것이었다. 끝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너무 커서 차라리 이 괴로운 관계를 지속하며 고통받는게 차악이 아닐까 하는 마음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관계가 단절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이성을 되찾게 되면 그 관계를 유지하며 고통을 받았던게 차악이 아닌 극악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상황 안에 있을땐 온전한 판단을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쓰레기 수집가’가 아니라 ‘손절 무능력자’였던 것이다(주식에는 손을 대지 말아야...).




예전에 회사 동기에게 쓰저씨(쓰레기+5살 연상 아저씨의 줄임말) 스토리를 들려주며 신세 한탄을 한 적이 있다.


소위 연락 쓰레기에다가 자신과의 연애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했던(연예인이세요?), 데이트 중 만취하면 오밤중 길거리에 나를 두고 택시타고 가버리던(언젠간 알콜중독으로 객사하리), 나는 매운 걸 잘 못 먹는데 그걸 알면서도 족발집에서 굳이 매운 족발 메뉴만 시키던(일반 족발 시키고 매운 양념 추가해서 찍어 먹으면 될거 아냐), 결국 잠수 이별로 마무리 된(하아...), 그후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 와 사귀던 중 본인이 했던 어떤 얘기를 자기 후배에게 말한 적이 있냐고 팩트체크를 한(중학생이세요?), 몇 시간 고민하다가 그런 적 없다고 답하니 읽씹으로 응수하던(미리 소문 다 유포할걸 후회된다), 연애의 참견 급의 또 하나의 역대급 대서사시(또 하나의 흑역사 생성이요...또르르)가 있었더랬다.


동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나의 쓰저씨 스토리를 듣더니 어이 없어 했다. 왜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잡주를 손절 못하냐는 것이다. 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 또 만날 수 있고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단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는 걸 나만 모르는 것 같고, ‘혼자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고 했다. 제발 부탁이니 조까 정신을 탑재하고, 앞으로 잡주들에게는 오래 물리지 말고 과감고도 신속하게 손절하라는 조언이었다.




나는 혼자 남겨질리가 없다는 동기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어찌 되건 간에 이 질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나는 또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이 공포증에 제대로 맞서본 적이 없었다. 무서우면 부모님한테로 도망치거나, 혼자가 될 것만 같은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요즘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집에서 독립도 하고 애매한 시간을 견디는 법을 터득해 보려고 이러 저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난 뭐든 좀 느리게 배우지만 결국에는 완벽하게 숙지하는 편이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어 본다. 이 병은 불치병이 아니다. 화이팅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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