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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May 23. 2021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연수원 2년차 때 두 달은 법원, 두 달은 검찰, 두 달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보 생활을 하게 된다. 시보란 인턴과 비슷한 개념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생활을 맛보기로 체험해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달 간의 변호사 시보 생활을 나는 모 로펌에서 하게 되었는데, 내가 왜 그 회사에서 시보를 하겠다고 신청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신청했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는 갑자기 시보 기간 동안 수행한 과제를 보고 한 두명을 채용할 수도 있다고 했고, 다른 로펌에서도 누가 누가 컨펌이 되었다더라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로스쿨 제도가 처음 도입되어 수천명의 로스쿨생들과 연수원생들이 갑자기 동시에 배출되는 시기였는데, 그래서 취업이 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이 팽배했고 백수가 되면 어쩌지에 대한 우리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어만 가는 상황이었다.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컨펌이 되고자 하는 나의 욕구는 간절해져만 갔다(솔직히 얘기하면 시보를 하기 전까지는 그 회사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매일 매일 밤을 새가며 영혼을 갈아 넣어 과제를 했고, 하루 하루가 고통이었다. 변호사 체험을 해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보 생활을 시작했건만, 시간이 흐를 수록 마음은 점차 무거워져만 갔다.


그 전까지는 관심도 없는 회사였는데 갑자기 그 회사의 모든 것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삐까 뻔쩍한 건물과 회의실은 정신 못차릴 정도로 멋져 보였고(나중에 알고 보니 일정 규모 이상의 법률회사라면 대부분 그랬다), 매일 점심 저녁 코엑스 맛집 탐방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그 회사는 코엑스 옆에 있었는데, 막상 변호사들은 바빠서 거기까지 갈 시간도 잘 없을 것이다).


우리 시보들에게 밥을 사줬던 2년차 변호사님 피셜 자기는 너무 바빠서 돈 쓸 시간도 없는데, 가끔씩 은행에 가게 되면 자기 나이에 통장에 이렇게 많은 돈이 쌓여 있다는 것에 대해 은행 직원이 놀라곤 한다고 했고(그 정도까지는 아니던데요), 일하다가 울적할때면 바로 옆 현대백화점에 가서 급 구두나 가방을 지른다고 했는데(전 지금 9년차인데 아직도 못해봤습니다만), 드라마에서나 보던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의 전형으로 그 간지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회사에 채용되지 못했다. 실의에 빠진 나는 시보기간 동안 알게 된 그 회사 저년차 변호사 언니에게 이메일로 비보를 전했고, 답장이 왔다(지나고 보니 저년차 어쏘 변호사는 밥을 챙겨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데, 얼굴 한 번 본게 다였던 나에게 답장까지 보내주며 마음을 써 준 그분이 새삼 감사하다).


“시보님께.

직장도 결혼처럼 나와 궁합이 맞는 곳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이곳은 시보님과 궁합이 맞지 않는 곳일 뿐이니 너무 실망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나고 보니 의미 없는 시간은 없더라구요. 이곳에서의 시간이 시보님께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가 있을 것이고, 시보님과 궁합이 맞는 더 좋은 직장도 분명 찾으실 거에요.”


나중에 검색해보니 그 분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이메일로 그분이 정말로 말하고자 했던 바는 어쩌면 “어서가 빨리 도망쳐” 였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의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인 ‘유퀴즈’에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출연했다. 그는 일년에 대략 200-300편의 영화를 본다고 했다. 미국 연수시절에는 무려 연간 1,017편(하루에 3편 꼴)을 봤다고 한다.


남들은 영화를 보고 싶은대로 본다고 부러워 할 것도 같은데 막상 일로 영화를 보면 그렇지도 않지 않느냐고 유재석이 물었다.


“그렇죠.

그런데 이게 사실 결혼하고 참 비슷해요.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라도 결혼하면 그 환상이 깨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환상이 어차피 깨질 결혼이라면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게 낫거든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일에서 오는 치명적인 권태같은 것들을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게 아니면 결국 저처럼 튕겨져 나가는 거죠.”




가끔씩 일 중독자들을 보게 된다.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을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기꺼이 열일하는 사람들.


같이 밥을 먹다가 사건에 관한 말을 (잘못) 꺼내면 기다렸다는 듯 자기가 하고 있는 사건의 쟁점과 해결하지 못한 자신의 고민을 속사포랩으로 뿜어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이 법리가 맞는 것 같은지 묻는다(아, 체할 것만 같다). 이렇게 24시간 사건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자려고 누워도 그 쟁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데,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 딥슬립에 빠지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취미가 일이 된, 혹은 일과 찐 사랑에 빠진(현재로서는 영원한 사랑인 것처럼 보인다) 억세게 운 좋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이 정도까지 행복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느 직장인이나 그렇겠지만 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이 하기 싫고, 출근하면 곧바로 퇴근하고 싶다. 또 출근했는데 날씨가 좋으면 퇴근하고 싶고, 날씨가 안 좋아도 집에 가고 싶다. 가끔씩 회사에서 열 받는 일이 생기거나 일이 너무 몰려 연짱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인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옛날 생각을 한다. 내가 얼마나 이 일을 하고 싶어했는지, 얼마나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했었는지 말이다. 합격 통보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첫 출근길에 얼마나 벅차 올랐는지, 어린 시절 그 때의 그 간절함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이 새삼 감사하고, 잠시 까먹었던 애정이 조금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지금 복에 겨웠구나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한글파일을 열어 다시 서면을 쓰게 된다.


일 자체도 그렇다. 아마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난 상대방의 헛점을 찾아내 공격한다거나 상대방에게 “넌 틀렸어”라고 비판하는 것 자체에 흥미가 있기 때문에(태생적 파이터) 이 일에서 오는 치명적 권태에도 불구하고 에라이 도저히 못해먹겠다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 것 같다.


결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저 기혼자가 되고 싶어서 한 결혼이라면 오래 갈 수가 없다. 일도 결혼도 소울(soul)은 필수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해서 한 결혼이라도, 소수의 찐 사랑꾼들(최수종 느낌)을 제외하고는, 살다보면 육아에 치이고 이런 저런 일들로 실망도 하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이다.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애정에 기반한 관계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학을 떼고 때려칠 정도의 극혐 상황으로는 가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그 비슷한 정도까지 가더라도 우리가 서로 얼마나 설렜고 사랑했는지, 얼마나 간절했는지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십대때 나는 내가 정말 이 회사를 다니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채 백수가 될까봐 그저 일단 취업난을 탈출하여 어딘가에 고용된 피고용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운 좋게도 나와 궁합이 맞지 않았던 그 회사에는 채용되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시간이 좀 더 지나 더 좋은 다른 회사를 만날 수 있었지만,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결혼은 운이 나쁘게도 성사되고 말았다.




나는 두번 다시 그렇게 남의 말이나 상황에 휩쓸려 인생의 결정을 해서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지만 관성의 법칙상 또 줏대 없이 그런 짓을 하게 되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다. 혹시 내가 또 심약해져 그런 멍청한 결정을 하려고 한다면 찬물 세례 후 뒷통수를 제대로 후려 갈겨 주길 바란다. 욕을 해도 좋다.


하늘이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곤 하는데, 이건 그냥 밑도 끝도 없는 내 촉이다.


어린 시절 내가 원하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단단히 버티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주변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징징대기는 했다. 미안), 지금의 나도 다소 돌아 왔지만 결국 내 운명은 해피엔딩일 거라는 이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와호장룡의 전설이 지금 여기 서울에서도 참이라면 좋겠다. 친구들아, 그때까지 나의 징징거림을 조금만 더 받아주고 시달려 주길 바란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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