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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May 21. 2021

이혼하면 불가촉 천민이 되는 건가요

가끔씩 소개팅이 들어온다. 소개팅남 후보군으로는 이혼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묻따 갖다 댄다거나 아니면 엄청 나이 많은 노총각 아저씨들(네, 저도 나이 많고 할말 없는데요 그래도 정말 너무 많았어요ㅠㅠㅠㅠ)이 대부분이다.


이혼한 사람들은 불가촉 천민이라도 되는 것인지 너희들은 너희들끼리 어울리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노총각들은 나이 때문에 대폭 마이너스가 되니까 그래도 만날 급이 된다는 것 같았다.


구체적인 조건들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는 내가 만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후보들과의 소개팅 제의를 받게 되면, 이혼이라는게 이렇게 나의 가치를 다운 그레이드 시키는 것인가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데, 친구에게 이 속상함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야 그건 니가 이혼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나이 들어서 그래. 그래도 넌 소개팅 들어오는게 어디냐 난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 오는 것도 죄다 이상한 아저씨들 뿐이야 ㅠㅠ”


아 그런가? 생각해보니 내가 한창 소개팅을 달렸던 그 때보다 지금 몇 살은 더 먹었고, 이제 빼박 삼십대 중반이니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요즘 이혼이 뭐가 문제야. 난 오히려 무슨 하자가 있길래 지금까지 결혼도 못했나 남들이 날 그렇게 생각할거 같아서 차라리 니가 부럽다.”


정말 그냥 내가 늙어서 그런 것인데, 괜한 자격지심에 꼬아서 생각한 것인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주면 아 그런가? 하면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자괴감을 흘려 보낼 수 있게 된다.




예전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과 그를 짝사랑 했던 어떤 여자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왜 그 여자한테 관심 없었어?”

“안 예뻐서ㅋㅋㅋ 그리고 그 때는 내가 돌싱이랑 잘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거든. 아예 다른 범주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관심이 안 가더라고.”


그렇구나. 당신과 나는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구나. 나는 당신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오픈 마인드혹은 그런 거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당신도 우리가 다른 곳에 발을 딛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 만남이 가능한 것이구나 싶어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속상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었는데 내 짧은 어휘력으로는 속상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가끔씩 내가 결혼한 적이 있었다는 걸 까먹을 정도로 전과 똑같이 살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예전 그대로인데, 이렇게 180도 다른 지위가 되었구나. 사실 아직도 그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가 다른 범주에 있는 나를 어떤 마음으로 만났던 것이었는지 결국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혼하면 불가촉 천민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제일 심했다(찐 옛날사람).


내가 짐을 싸서 다시 본가로 돌아온 날 자초지종을 들은 아빠의 첫마디는 “남자야 이혼하면 금방 새 장가 가지만 여자는 그게 아닌데 어쩌려고 그러니” 였다.


엄마는 이혼남이라고만 하면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경제적 능력, 자식 유무 등 나름의 중요한 객관적 조건들도 모두 무시한채 일단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돈은 벌면 되고, 애는 엄마가 키운다지 않느냐고. 내 딸이 최고 잘나서 그 누굴 갖다 대도 다 성에 안 차 하던 우리 엄마 맞는지. 나는 변해버린 엄마가 마음이 아팠다.


내가 누굴 만나게 되면 그 사람도 이혼했는지 여부 부터 확인했고,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중에 그 사람 부모가 반대하면 곧바로 헤어질 것이니 내가 상처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나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고, 때로는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당신들 말의 근원이 나에 대한 무한한 사랑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들로 인하여 나는 그저 불안해지고, 작아질 뿐이다.




고작 삼십 몇년 살아놓고 할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얼마 없다. 다들 허덕이며 살고, 정신 없이 살고, 고통 속에 산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행복은 그저 우연히 아주 잠깐 주어진다.


돌이켜보면 가장 후회되는 일들은 왜 그 때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않았는지, 왜 온 힘을 다해서 만끽하지 않았는지 이다. 타인의 말에 신경을 덜 쓰고(그것이 가족이라도) 순간 순간에 충실하며 그냥 내 인생을 살아야 그것이 가능한데, 그게 난 항상 잘 안 된다.


어제 이런 저런 생각에 우울한 연휴를 보내고 있는 내게 친구가 놀러와 한참을 수다를 떨어주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가진 외적인 것들도 훌륭하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부디 그걸 잊지 말라고.


스쳐간 인연들은 (물론 일정 부분 나의 의지도 있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잡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불가촉 천민이라서 나를 흘려 보내는 사람이라면 그게 그 사람의 한계이고 수준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흘러간다해도 결국은 아쉽지 않을 것이다. 이건 지난 데이터가 말해준다.




올해 내 토정비결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꽃이 지면 잠시의 슬픔이 있지만 열매가 열리기 위한 준비이니 머지않아 큰 기쁨이 찾아오는 것을 예비하는 시기입니다. 어려운 일들이 사라지고 비로소 결실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지금 이 시기가 꽃이 진후 잠시의 슬픔인 것으로, 머지 않아 큰 기쁨이 찾아오는 것을 예비하는 시기인 것으로, 올해 안에 큰 기쁨 및 결실(대체 무엇인지)이 찾아올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야겠다. 나는 아직도 이 status에 적응하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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