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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Jul 11. 2023

결국 한 사람만 만나면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한 번 적어보세요.”


나는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이것 저것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이슈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추려보니 총 21가지가 되었다.


“그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리시겠어요? 그 다음에 버릴 것은요? 그 다음은요?“


나는 그렇게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그 순서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1. 가족(부모님, 동생)

2.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

3. 직업(일)

4. 짝(애인, 배우자, 사랑)

5. 재미

6. 건강

7. 공감능력

8. 선한 마음과 배려


(중략)


그외에도 열정, 몰두할 수 있는 취미(운동, 드라마, 책, 여행), 돈, 가끔씩 꺼내 볼 수 있는 좋은 추억들, 여가 시간, 종교,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등등


내가 이만큼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고, 일을 한다는 것에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재미가 5위를 차지할 정도의 꿀잼 추구자이고, 나름 센척하고 살고 있지만 의외로 따뜻한 마음과 공감이 고픈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부끄럽지만) 인생에서 꼭 필요한 21가지 중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갈 정도로 먹는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함께 여행이나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온다는 것도.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나는 ‘짝(애인 또는 배우자)’ 말고는 내가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미 가지고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내 인생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결핍된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는 왜 남들처럼 살 수 없는지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게다가 내게 없는 ‘짝’은 리스트에서 1위도 아닌 4위에 불과하고, 그 부재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일 가능성도 상당한데, 그것의 결핍이 이렇게까지 내 삶을 흔들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짝’이 있다고 해도 없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왕왕 존재하고, 거기서 오는 고통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짝’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충족되지 않은 다른 항목에서 오는 고통의 크기가 너무 큰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나는 직접, 간접 경험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몇 년 전 Reddit에 “Everyone has a Personal TIME ZONE”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유튜브에 영상으로도 업로드 되어 있어서 공유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TMdbobGKA). 각자 자신만의 Time Zone이 있으니 낙심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는 어찌보면 뻔한 내용인데, 가끔씩 꺼내 보면 위안이 되는 글이다.


New York is 3 hours ahead of California, but that doesn't make California slow.

뉴욕은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 빠르지만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뒤쳐진 것은 아닙니다.


Someone graduated at the age of 22, but waited 5 years before securing a good job.

어떤 사람은 22세에 졸업을 했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5년을 기다렸습니다.


Some became a CEO at 25, and died at 50.

어떤 사람은 25세에 CEO가 되었고 50세에 사망했습니다.


While another became a CEO at 50, and lived to 90 years.

반면 또 어떤 사람은 50세에 CEO가 되었고 90세까지 살았습니다.


Someone is still single, while someone else got married.

어떤 사람은 아직도 미혼인 반면 다른 어떤 사람은 결혼을 했습니다.


Obama retired at 55, and Trump started at 70.

오바마는 55세에 은퇴했고 트럼프는 70세에 시작했습니다.


Everyone in this world works based on their time zone.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간대에서 일합니다.


People around you might seem to be ahead of you, and some might seem to be behind you.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앞서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보다 뒤쳐진 것 같기도 합니다.


But everyone is running their own race, in their own time.

하지만 모두 자기 자신의 경주를, 자기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Do not envy them and do not mock them.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놀리지도 맙시다.


They are in their time zone, and you are in yours.

그들은 자신의 시간대에 있을 뿐이고, 당신도 당신의 시간대에 있는 것뿐입니다.


Life is about waiting for the right moment to act.

인생은 행동하기에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So, relax.

그러니 긴장을 푸세요.


You're  not late.

당신은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You're not early.

이르지도 않습니다.


You are very much on time.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 아주 잘 맞춰서 가고 있습니다.





한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좋은 부모님과 둘도 없는 친구인 동생,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는 몇몇의 각별한 인생 친구들이 있고, 이른 나이에 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제는 여가시간에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이렇게 인생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운 좋게 이미 가졌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짝이나 소울메이트 같은 배우자는 내게 허락되지 않은 건 아닐까. 인생을 살면서 모든 걸 가질 수는 없고 신은 공평할 것 같은데. 그렇게 회의론자가 되어 침전하다가도 문득 나와 비슷한 상황인데 좋은 남편, 아내를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 떠오르면서 이건 뭔가 너무 불공평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느 겨울 날, 이런 저런 심각한 생각에 매몰되어 회색빛이었던 나는 선배 언니가 해준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나보다 3살 많았던 소개팅남과 나이 들어 사람 만나고 연애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대하여 토로하던 중 그에게 물어보았다.


"지치지 않으세요?"


"뭐가요?"


"저는 기대하고 실망하고 헤어지고 힘들고 이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내가 이 나이까지 뭐하고 있는 건가 현타도 오고 이제는 정말 지친 것 같아요. 나에게는 누굴 만나 행복하게 살 운은 주어지지 않은 건가, 나에게 주어진 다른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해요."


"저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결국 한 명만 만나면 되는 거거든요. 물론 그 과정에서 저도 때론 낙담하고 힘들 때도 있었죠.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 명을 저는 만날 거고, 그걸 의심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러니 현타가 오는 과정들도 '아, 이번에도 아니었구나' 하고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근거 없는 낙관론자인지 뭘 알고 말하는 현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때 그의 말이 나에게 참 위로가 되었다. 각자의 Time Zone이 따로 있고 각자의 인생마다 나름의 희노애락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되기 시작하면 이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된다. 아쉽지만 나의 Time Zone은 이번에도 아니었구나 하고 흘려보내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때를 기대하며 인생에서 필요한 나머지 20가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다 보면 그의 말처럼 언젠가 나도 그 한 명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의 운명은 여기까지 인가보다고 단정하지 말고 말이다.


그는 결국 그 한 명을 만났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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