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여행기-8
마우이로 가는 국내선 보안검색 시엔 신발도 벗는다. 보안검색을 받을 때 나는 한 없이 무기력하고 때론 굴욕적이다. 3일 만에 다시 찾은 호놀룰루. 태양은 마우이와 다름없이 강렬하다. 태평양의 해는 우리의 그것과 다른 걸까? 정열적인 빨간색의 또 다른 닛산 소형차를 빌려 새 숙소로 떠난다. 도심이라 주차공간이 마땅찮은 와이키키에서는 주차 요금을 별도로 지불하고 사설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숙소에서도 걸어서 5-6분 정도 걸리고, 일주일에 880불을 내야 한다. 한적한 마우이에서, 와이키키로 넘어왔음이 새삼 느껴진다. 세계 어디나 인구가 밀집해있는 지역은 주차 전쟁이고, 땅값이 비싸다.
숙소가 있는 와이키키로 걸어간다. 주차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테라스가 있는 고급 식당을 지날 때쯤 시야에 새파란 바다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나의 점 같던 바다는 점차 가까워지고, 내 주변으로 서핑보드를 든 사람, 파라솔 아래 책 읽는 노부부, 비치타월을 깔고 엎드려 언제부터인지 모를 태닝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흡사 해운대 앞바다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야자수와 물의 색깔, 쨍쨍한 하늘이 다르다. 바다 맞은편에는 수영을 막 마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각종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편의점 같은 ABC STORE에서 얼굴을 보호해 줄 모자와 슬리퍼를 각각 20불 안 되게 구매한다.
햄버거 집을 찾아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미국식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고 창 밖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GOPRO에 느리게 담아본다.(브런치에서 영상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무얼 하러 왔을까? 휴양지에서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것을, 삶은 다를 바 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쪽에서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숙소는 10평 남짓된 작은 원룸 스튜디오로, 와이키키 메인 스트릿에서 아주 가깝다. 한국의 원룸 형태와 유사하지만, 월세는 유사하지 않겠지. 소파 위 흰 벽의 aloha라는 주황색 글씨가 우리를 환영하고, 작고 아담한 부엌에는 센스가 돋보이는 세 개의 전구가 달려있다. 테라스를 열고 나가면 맞은편에 15층 정도 돼 보이는 콘도,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야외수영장이 보인다.(이 곳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다.) 어떤 이는 비치의자에 한가로이 누워 발을 까딱이고, 장난꾸러기 소년들은 물안경을 쓰고 다이빙을 시도해본다. 순간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앉아있던 비둘기는 놀라서 고층으로 도망간다. 자동차 바큇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에 놀라 날아가는 서울의 비둘기와는 조금 다르다. 날씨는 덥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고, 그 흔한 벌레는 없다. 테라스 한편엔 2개의 부기 보드, 튜브, 스노클링 기어와 오리발 세트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주황색 테이블 위에는 미니 화분과 철제의자가 마주 보고 있다. 하와이의 집에는 테라스가 많다. 이런 날씨에 테라스를 이용 안 할 리 없다.
2시간 정도 잠을 청했을까. 해지는 와이키키도 즐길 겸 산책을 나갔다. 저녁의 와이키키는 아침과는 딴판이다. 똑같이 활기차지만 에너지의 근원이 다르달까. 아침에는 강한 태양에서 그 에너지가 온다면, 저녁에는 횃불과 조명에서 그 에너지가 분출된다. 자연과 인공이 만들어낸 조명이 낮과 밤 그 어딘가에서 만나 바통을 이어받는다. 예약해놓은 식당의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로 북적여 예약 하고도 꽤 기다려서 들어간 식당은 컨베이에 벨트 조립하듯이, 분주하게 식전 빵을 내고 치우고 한다. 말은 않지만, 사람들이 빨리 빠져나갔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다. 지글지글 큰 접시에 담겨오는 스테이크는 20분도 채 안되어 끝난다. 소고기를 파는 집 뒤편에 소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어,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나오며 생각한다. 역시나 비싸다고 해서, 그만큼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돌아와서 생각나는 것은 100불이 넘는 스테이크 맛이 아니라, 아침 조깅할 때 하와이의 공기와 날씨, 푸르름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