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탈진한 것 같은 하루이다. 어젯밤부터 걱정했던 오늘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친 느낌이랄까.
오늘은 내가 담당자로서 주관하는 전교생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전교생 42명의 작은 시골학교이지만, 12명의 교직원과 전체 아이들의 스케줄을 컨트롤 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40명이든, 400명이든 마음이 무거운 건 똑같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했는데도, 얼마나 혼란스러운 아침이었는지. 어떤 업무든 준비의 과정은 참 긴장되고 힘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 제 1원칙은 나의 작은 수고로 여러 사람의 삶이 편안해진다면 기꺼이 수고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큰 수고가 요구되는 일은 분담을 요구하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담당자로서 일을 진행하며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 넓은 눈으로 살폈다. 전체적인 스케줄은 꼼꼼하게 여러 번 살펴 공지하고, 헷갈릴 수 있는 부분들은 반복하여 강조했다.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선생님께는 직접 가서 알려드리고, 조금이라도 무리가 된다 싶은 것들은 업체 측과 계속 협의하며 조율해갔다. 무리이다 싶은 것은 분명히 거절하고, 도움이 된다 싶은 것들은 공손히 부탁하며.
나아감과 멈춤에 있어서 어떤 순간에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했다. 힘든 사람은 없는지,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여러 번 생각하고 움직였다. 업무에 있어서 제 2원칙은 생색내지 않기. 어지간하면 조용히 처리하기.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혼자만 아는 좋은 비밀이 생긴 것이니까. 내가 한 작은 배려로 편안해보이는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그러나 선한 일 또한 기침과 사랑처럼 감출 수 없는 것. 결국 나중에라도 누군가 알게 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렇게 알게 된 누군가와는 깊은 신뢰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관계를 바라고 선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관계들은 기대치 않은 선물 같이 다가오곤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 다시금 생각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결국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들통나버리곤 하니까.
여러 조율을 하며 힘겹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 담당자로서 선생님들께 커피 한 잔 돌리고 싶은데... 맙소사. 체험학습 장소는 외떨어진 곳인데다가 그나마 하나 있는 카페도 사람들이 주말에나 찾아오는, 경치는 좋으나 커피 값은 무려 7000원에 육박하는 사악한 가격을 가진 곳이었다. 5분간 고민했으나 부모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베풀 기회가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베풀어라. 네가 번 돈은 모두 네 것이 아니니까. 더 고민할까봐 냅다 질렀다. 커피 쏩니다. 메뉴를 고르세요!
바리바리 커피를 싸들고 놀이터 앞에서 휴식 중인 선생님들께 다가가 한 잔씩 나누어드렸다. 뙤약볕에서 송글송글 땀흘리는 얼굴에 들어가는 커피 한모금. 한 선생님이 외쳤다. 아, 이제야 꽃이 보이네. 누군가의 말소리도 도란도란 들렸다. 커피 참 맛있다.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그 검은 음료 몇 모금에 금세 행복해졌다. 좀 전까지 지친 눈으로 바라보았던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갑자기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고작 몇 모금에 행복해질 수 있는 별거 아닌 존재라서 참 좋다.
오후까지 이어진 체험학습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잘 끝났다.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업무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업무를 시작하고 끝맺는 것이 무척 스트레스이고 힘든 일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어려웠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쌓아가는 정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혼자 하는 일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찐한 그 무언가의 감정이다.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며 나는 일을 잘하고 싶다. 그러나 일 자체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서 일하기보다 그 일에 참여하는 모든 동료가 마음이 편안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일을 잘하고 싶다. 그 방법을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도전해서 조금이라도 배워보고 싶다. 함께 성장하고 싶다. 그게 내 직장생활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