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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07. 2024

청소, 신성한 노동, 노동의 가치

# 청소, 신성한 노동, 노동의 가치

목, 금요일에 과학 교과가 몰려 있습니다. 3~6학년 실험의 여러 종류가 진행되다보니, 목, 금요일이 지나면 과학실이 난장판이 되곤 합니다. 과학 실험에 대한 준비부터 수업, 처리까지 모두 제 몫이기에 무척 바쁘고 고단합니다.


토요일 아침, 문을 열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입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휴대폰을 보며 노닥거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부지런함이 월요일의 행복을 선물해줄 거라 믿습니다.


절차가 많아 번거로운 용액 처리, 산더미 같은 실험 도구 설거지, 실험 준비물 정리, 책상 정리, 바닥 청소. 2시간에 걸쳐 모든 청소를 마친 뒤 자리에 비로소 앉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평화, 평온, 행복.


행복은 가만히 굴러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공평한 일이 아닐까요? 몸을 움직이는 노동은 신성하게 느껴집니다. 뼈와 근육을 움직이고(다분히 과학 전담교사다운 시선), 땀을 흘리며 몰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고단한 노동 뒤에 오는 평안함과 결과물(청소라면 깨끗함)은 꽤 묵직한 행복을 건네줍니다. 참 공평해요.


토요일 아침마다 듣는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디제이의 중후한 음성, 나무로 된 악기들이 내는 깊이 있는 울림을 들으며 외롭지 않게 청소했습니다. 이 또한 참 감사한 일입니다.


커피를 한 모금씩 나누어 먹습니다. 맛을 느끼고, 향을 맡습니다. 한 모금 먹을 때마다 하나의 생각을 하며, 천천히 마십니다.


아름다운 곳에 가서 여행을 하고, 근사한 곳에 가서 차를 마시는 일들도 참 좋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렇게 일상적인 일 속에서 순간 순간 느끼는 행복을 더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꾸미지 않은 민낯 같은, 아주 담백한 나의 행복들.


토요일 아침의 청소와 커피는 그렇게 저에게 묵직한 행복을 가슴 가득 울려줍니다. 완벽한 아침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출근길과 아침 산책

출근하는 길의 시골 정경을 좋아합니다. 사계절을 아주 빠르게 느낄 수 있는 나의 출근길. 겨울에 볼 수 있는 가지런히 정리된 논밭의 모습과 겨울만이 주는 풀의 색감, 벌거벗은 나무들의 가지들이 주는 리듬감. 매일 새로운 얼굴의 하늘. 그 모든 것을 선물 같이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면서 지내는 나의 출근길. 그 길들을 좋아합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아마 4년 동안 같은 길을 다닐텐데, 이 출근길에 대책 없이 정을 주는 저입니다. 세상 모든 무생물과 생물에 정 주는 것이 취미인 저는 이렇게 출근길에도 저의 정을 군데군데 바르고 있네요. 그래서 저의 출근길은 특별합니다.


학교에 도착한 뒤에는 가벼이 아침 산책을 했습니다. 학교 구석 구석을 바라보며 나무들의 겨울나기를 관찰합니다. 오랜 세월 나무를 보았지만, 나무는 참 아무리 알아도 다 알 수 없는 생물입니다. 늘 새롭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작가들. 소로우와 헤세는 나무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리 나무를 좋아했고, 왜 그리 자연 속에 파묻히며 살고 싶었는지 점점 이해가 갑니다.


돈이 들지 않아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좋아하는 일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

살아갈수록 내가 아는 하나님은 정말 다정한 분이란 생각을 합니다. 고단하고 힘든 제 일상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시다가도 꼭 사람이든, 사건이든, 물건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제가 찐하게 행복을 느낄만한 선물을 하루 속에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걸 믿기에 아무리 힘든 하루가 다가와도 두렵지만은 않습니다.


엄마가 떠난 사건은 제게 여전히 가장 크고 깊은 슬픔으로 남아 있지만, 하나님이 엄마가 떠난 자리에 심어 놓으신 여러 꽃밭들을 하나씩 발견하곤 합니다. 아, 엄마가 내게 알려주었던 게 이런 거구나. 내가 받은 사람이 이런 거구나.


엄마가 이제는 춥지 않고, 아프지 않은 곳에서 그리운 이들과 신나게 살아간다 생각하면 저도 신나집니다. 최선을 다해 살다가 다시 만날 생각을 하며 또 다시 현실에 몰두해봅니다.


죽음은 가히 슬픈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그걸 알기에 저는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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