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Dec 14. 2024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12월 13일 (금)


#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새 학교에서 낯선 사람들과 시스템 속에 열심히 적응해온 한 해였습니다. 너무 많은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된 탓에 12월 중순이 되어가니 점점 번아웃이 옵니다. 오늘 아침은 교실 의자에 앉아 아무 것도 못한 채 잠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기에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너무 애쓰지 않고, 하루 하루 제출해야 할 일들을 구멍 없이만 해내며 이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열심히 말고 성실히 해보려 노력하되 잘 안되면 말기.’ 남은 날들 속 다짐입니다.


느릿느릿하더라도 멈추지 말고 조금만이라도 무언가를 해보는 시간을 보내자 생각합니다. 마치 마라톤을 하듯이 힘들면 천천히 걸었다가 힘이 나면 뛰었다가 하며 말입니다. 주말이 있기에 평일의 리듬과는 전혀 다른 리듬의 하루가 존재하고, 또 그 리듬에 맞추어 느릿느릿 움직이며 여러 사색을 곁들일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맥주와 책, 밤 풍경

금요일 밤에는 정신의 팽팽한 끈을 조금 누그러뜨려 보고자 맥주 한 캔을 마시곤 합니다. 어제는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창밖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102동은 앞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도로와 멀리 있는 아파트들의 불빛이 자아내는 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정밀아의 ‘서시’ 노래를 듣는데, 그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좋아서 눈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울고, 감동 받아 울며, 슬퍼도 울고, 기뻐도 웁니다. 좀 자주 우는데, 그것이 저의 정신 건강에는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예술로 충만한 밤을 보내며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 가난의 얼굴

토요일마다 와서 아이들과 체육활동을 해주시는 정윤(가명) 선생님은 60대 교회 목사님이십니다. 항상 밝은 얼굴로 아이들을 넉넉하게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자비량 목회를 하시다 보니 교회로 벌 수 있는 수입이 없어 따로 방과후 강사를 직업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는데, 선생님께서 대화 중에


“버스 타고 다니며 서민의 삶을 잘 알게 되었어요. 물론 나도 극빈층이지만.”


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얼떨떨하여 그냥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극빈층. 저도 정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극빈층이었나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친구가 자기는 어린 시절에 바지가 딱 한 벌 있어서 젖거나 더러워지면 다음 날 입고 갈 바지가 없으니 어떻게든 말려서 입고 갔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가난은 명함도 못 내미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정윤 선생님처럼 ‘가난’이란 단어에 대해 마치 어제 뉴스를 이야기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가난은 그다지 문제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기에 너무 고민하지 않는다는 정윤샘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조금 복잡했습니다. 진짜 멋진 삶을 살고 계신 거 같은데, 저라면 불안이 높아서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습니다. 그 마음과 배짱이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가난의 얼굴이 저리 당당하고 빛날 수도 있구나. 항상 부끄러워하고 자격지심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정말 신경 써야 할 것은 재산의 많고 적음보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 태도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었던 정윤샘과의 대화였습니다.


#

계엄령과 탄핵 키워드로 온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이런 시기에 뉴스마저 제때 안 보는 건 너무 미안한 마음인지라 잘 보지도 않는 뉴스를 챙겨보게 됩니다.


아닌 밤 중에 계엄령에 너무 화가 났고, 탄핵 표결에 보였던 여당의 추태도 정말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탄핵 표결이 있습니다. 들끓는 민심으로 인해 아마도 오늘은 탄핵으로 기울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설사 대통령이 물러난다 해도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건 아닐 것 입니다. 나라에 진정한 공의가 세워지도록 계속 기도를 멈추지 않으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국가 공동체에 속한 이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을 꼭 다하자 마음을 먹게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