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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Jul 12. 2019

휴학없이 스타트업 인턴으로 8개월간 살아남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

나는 인턴쉽을 끝낼 때 마다,
초심을 잃지 않을 겸 해서
당시의 마음 가짐과 배운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을 해두는 편인데
이번 인턴쉽은 나의 세번째 인턴쉽이다.


때는 내가 한국으로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18년 9월이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1년간 인턴을 하며 찾게 된 꿈을

한국으로 돌아와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두개골이 깨지도록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미국에서 내 꿈을 발견하고는

Google 검색창에 UX와 관련된 모든 문서를

수십 페이지 가량 탐독했고,
 미국의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인

Medium을 뒤져가며

UX와 관련된 정보를 미친듯이 수집했다.

당시에 인턴이었지만 마케팅 부서의 매니저로서
회사의 Google Adwords(현 Google Ads) 계정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Google UX Research팀이 이메일로

내게 직접 사용자 인터뷰를 요청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구글의 UX Research팀은 사용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무슨 질문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한치의 고민없이

이를 진행하고 싶다는 답장을 보냈고,

인터뷰 시간이 맞지 않아

점심시간을 3시간 시프팅하여

1시간 동안 화상통화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화면들을 바라보며

질문에 답을 하거나 지시를 따르는 등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나는 LinkedIn에 계정을 만들고

그럴싸하게 프로필을 꾸며낸 뒤,

UX관련 직무로 일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친추를 걸고

다짜고짜 메시지로 장문의 조언 요청을 보냈었다.

이에 관해 한 가지 팁을 알려주자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친추를 잘 안 해주지만

관련 업종 사람들과의 '함께 아는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이들의 친구 추가 수락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하하하하!

보통 100명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10명 정도가 답이 오는데, 이들 중

정말 진심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5명 정도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얼굴도 모르는 한 청년이

다짜고짜 꿈을 이루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당신들처럼 될 수 있느냐고

문을 박차고 쪼아대니,

인간의 본성인 측은지심이 발동되나 보다.

100명 중 5명 정도의 비율로 나를 도와주신

외국, 한국인 분들은 본인들의

경험과 인사이트들을 아낌없이 알려주셨고,

나의 설정 가능한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저마다 나름대로의 조언을 주셨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미래에 내가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될 때

참고하라며 본인들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직접 공유해주시기도 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었다.


Udemy같은 교육 사이트에서

인강을 구매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홀로 독학하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머릿속에 홀로 습득한 지식들이 아니라,

정말로 부딪혀 보며

Problem-Solving을 할 수 있는,

실전 경험이 정말이지 간절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다소 보수적인 채용문화를 가진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시에,

그 어떤 경험과 경력도 없는 비전공자인 나를

해당 직무로 투입시킬 회사는

결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거대한 채용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방안은

리소스가 비교적 부족한 스타트업에
무보수로 일하는 조건으로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들 조차,

모두 3-5년 이상의 경력직들만을 선호했다.

생존조차 아직 명확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바로 투입되어 이끌어 줄 수 있는

경험있는 자들이 간절하지,

나 같은 풋내기들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 자체가 없는 듯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거름을 얻는 것조차,

정말이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에는 IT관련 업종의 사람들이 많아

링크드인과 같은 방법으로 친추를 늘려나가다가,

우연히 정말 눈이 가는

어느 한 스타트업을 발견하게 됐다.

나는 브런치 초기에

교육과 관련된 글을 많이 기재했는데,

과거에 유학을 하며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한국의 교육도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이 기업은 그러한 교육시장을

혁신시키고자 하는 스타트업이었고,

리서치를 하면 할수록 빠르게 성장하는

이 기업이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내심 희망을 안고 채용 글을 읽어보았으나,

이들 역시 최소 3년 이상의

경력직만을 뽑는다는 글을 읽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평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10살 터울의 존경하는
학교 선배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자,

그 형님께서는 그딴게 어딨냐며 문이나 두드려보고
찡찡대라며 나를 나무라셨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궁금증에 이 회사의 서비스를

처음으로 사용했을 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서비스 첫 경험은

심장이 너무도 빠르게 뛸 정도로
흥분이 되는 그 무엇이었다.

이 기업의 가능성을 몸소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성장 중인 스타트업답게

아직은 이곳저곳 UX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고,

나는 정말 잘 만들어진 완벽한 서비스보다는

아직 여기저기 보수가 필요하지만

코어가 정말 훌륭한 서비스를 위해 일 하는 것이
나의 역량을 펼치고

내가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노트북을 펼치고

회사의 HR부서 계정으로
이메일을 써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겁이 없는 놈인것 같다.


그렇게 호기롭지만 절박한 심정이 담긴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냈고,
정확히 다음날, 내게 답변이 왔다.

채용 담당자분은 내게

전혀 다른 직무여도 상관없으니

직전 인턴에서 했던 일이라도 정리해서

포트폴리오를 보내줄 수 있겠느냐며

친절한 답변을 주셨다.

나는 미국에서 인턴 일을 하면서

혹여나 추후에 내가 했던 일들을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과거에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이나

수치들을 캡처 혹은 기록해두었는데,

그 자료들이 이렇게 빨리 쓰일지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부리나케 3일만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회신했고,

나는 답변을 기다렸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진심이 통할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거의 항상 그 진심이 통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서비스로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이들을 믿고 굳게 기다렸다.



하지만 약 2주가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1년 만에 학교로 돌아와 막 복학했던지라

정신없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매일같이 인박스를 체크했던 것 같다.

2주가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름의 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역시 전혀 새로운 직무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내가 무언가를 기여를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이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서비스를 한번 경험하고

즉시 애정이 생겼었고,

이 기업이 꿈꾸는 것처럼 그들이

정말로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스템을

혁신시키길 바랬다.

그래서 나는 답장이 아직 오지 않은 HR부서에

다시 한번 메일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경험했던 서비스를 생각하며

불편했던 점들을 정리했고, 이들의 개선안과 함께

사용자의 관심사를 더욱 맞춤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추가적으로 직접 디자인하여

PDF 파일로 만들었다.

비록 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그들이 더 나은 서비스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당시 만들었던 개선안 PDF파일의 조촐한 커버 페이지와 목차.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려고 고민하던 순간,
회사의 CEO에게 메일 회신이 왔다.
금주에 잠깐 시간이 나는데,

인터뷰할 겸 차 한잔 하는 게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바로 작성하던 메일을 보관함에 처박아두고
약속 날짜를 잡고 제 시간에

회사를 방문하겠노라고 답장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문득 어안이 벙벙해졌다.
페이스북이나 뉴스 기사에서만 보던 이 CEO를
내가 직접 만나볼 수 있게 되다니!

최근에 보게 된 스티브 잡스의

미공개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도
나는 이때의 경험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just ask.


주어진 이틀간 나름의 면접 준비를 하고,

약속된 날에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회사로 향했다.

도착해서 CEO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인터뷰에 온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그 때 내가 기다리며 앉아있던
층의 사진을 조금 찍어두었는데,

긴장해서 찍은 탓인지 사진들에는 하나같이

당시 내 정신상태가 담겨있는 듯 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환한 미소로

CEO가 걸어 나오셨고,

우리는 5분 정도의 티타임을 가진 후

UX 기획 총괄자를

(내 커리어의 첫 번째 사수가 된)소개해주시며
내가 이 분과 인터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아뿔싸.

나는 메일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CEO와 인터뷰를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련했지만

그 때는 정말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당황한 탓인지 준비가 덜 된 탓인지,

나는 면접을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말 주변이 꽤나 좋은 사람으로

주변에 알려져 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옹알이를 하고 나왔다.

UX 총괄자 분의 표정은

점점 어두운 흑색으로 변해갔고,

나의 머릿속은

점점 환한 백색으로 변해갔다.

면접관이 내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며

제안해주고 싶은 개선점이 없느냐'였는데,

나는 '이거다...!'싶어 미리 가져갔던 노트북을 열고
보관함에 처박아두었던 PDF파일을 열어

즉흥으로 PT를 진행했다.

처음으로 면접관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보았고,

그녀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좌절했던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혔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웃으며 짧은 시간에

이렇게 직접 디자인하여 자료를

준비해오실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고,

사실 내가 준비했던 사용자 맞춤화 방안은

내가 면접을 본 바로 그 당일날 오전,

그녀가 개발자들과의 회의에서

벤치마킹 관련하여 발표했던 내용과

똑같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사용한 사진 자료는

그녀가 PPT에 사용한 사진과 동일했다고.


도대체 이 무슨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그녀가 조금 흥분한 말투로

앞으로의 서비스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나는 거기서 그녀가 정말

그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 밑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를 지으며 오늘 중으로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알수없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날 저녁까지 가슴을 졸이며

그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비전공자로서

내가 꾸었던 꿈의 직무의 포문을

처음으로 열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학교를 풀 학점으로 들으며

다닌다는 것이었는데,

회사 측에서 배려를 해주어

학기 중에는 우선적으로

오전에 수업이 끝나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만 출근을 하기로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대를 듬뿍 안고 회사를 출근한 첫날,

건물에 막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막 끝나는 타이밍이었다.

회사 후드티를 입고 있는 직원분들이

여럿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그들의 대화를

나는 엿들을 수 있었다.

"ㅇㅇ대학교에서 웬 학생이 우리 회사에
인턴 시켜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대."
"그래? 골 때리는 친구네. 어떻게 됐대?"
"몰라..면접보고 오늘 첫 출근한다던데,

뭐 남자애라던데..?"
내가 홀로 멋쩍은 웃음을 참고있는 와중에,

무리 중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까지 나였는지 몰랐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며칠 후

내게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ㅋㅋㅋ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만...!)


스타트업은 과연 스타트업이었다.

지금은 훨씬 큰 건물로 이전을 했지만,

당시 그다지 크지 않은 공용 사무실에서

모두가 옹기종기 붙어

서로 대화하며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고,

나의 사수는 하루종일 잡힌 회의 일정 때문에

어떠한 업무지시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당황한 채

멀뚱멀뚱 주변을 살폈다.

첫날부터 모든 걸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어쩔 수 없는 실망감이 몰려왔다.

나중에 조금 적응하고 나서야 알게 됐지만

정말 스타트업에서는

당신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는다 해도
그 누구도 당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따로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 없다.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오너십을 가지고

오로지 자신들의 일에 몰두할 뿐이다.


일을 하러 왔는데 일을 안 준다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하기 위해 기를 쓰고 정보를 모았다.

당시 회사의 관리 시스템 계정도 생성되지 않았고,

내가 접근할 수 있을만한 리소스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에는 사실상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마침, 당일 오전에

앱의 새로운 버전이 릴리즈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면접 때 보여줬던 PDF파일을 만들면서
앱의 이전 버전 화면들을 캡처해두었었기 때문에,

이를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편되기 전의 앱과 새롭게 바뀐 앱의 화면들을

그룹핑하여 사용자로서의 전반적인 피드백과

바뀌고 나서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

그리고 각 몇몇 부분에 내 나름대로의 개선안들을
다시 직접 디자인하여 제안 문서 PDF파일을 만들어
사수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내 계정이 생성되기 전까지 나는 같은 부서
기획자들과 카톡방으로 소통했다)


그렇게 파일을 보내면서

나의 첫 출근날은 끝이났다.

퇴근할 때는 사수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퇴근했는데,

퇴근 시간이 한 두시간 지나고 나서야

회의가 끝났는지,

사수님은 저녁 늦게 내게 답장을 보냈다.

정말 사용자 관점에서 우리 서비스를 바라보는
너무 좋은 내용이니, 사내 시스템에 공유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내용이었다기보다는

그냥 시키지도 않은 일을

혼자 출근해서 뚝딱하고 간 게
귀엽고 기특해 보였던 게 아닌가 싶지만,

어찌 됐건 나는 당시에 꽤나 뿌듯해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4개월 간,

나는 기획/디자인 팀의 막내로서
많은 문서작업을 하게 됐다.

학교 과제하랴, 팀플하랴, 시험공부하랴

퇴근하고 집에 가서 할당된 나머지 일들 하랴

밤을 참 많이도 새웠었다.

굳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문서작업에 있어서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벽에 만들어 놓은
100장짜리 키노트 슬라이드들을

다 엎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곤 했다.

여전히 직원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였겠지만
내가 나름대로 맡은 일에

언제나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최선을 다 하고 완벽을 가하려고

노오력했던 이유는,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곧 나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며,
한큐철도의 설립자인 고바야시 이치조가 한 말이
내 인생의 모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면
세상에서 신발 정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돼라.
그러면 세상은 당신을 신발 정리만 하는
심부름꾼으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접시를 닦듯이,

나는 사수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발판이 되는 과제들을 내주고 있다고 굳게 믿었고,

또 그냥 주어진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내게 더 큰 일도 맡기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은 흘러갔다.

인턴쉽 중간에는,

다니던 학교와 문제가 생긴 적도 있는데,
관련 부서들과 교수님들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결국엔 부총장님까지 찾아뵈며 또다시 메일을 보내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 4개월 계약했던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사수는 떠나기 전에

내가 그동안 인턴을 하며 느꼈던 부분들을

정리해 전사 회의때 발표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떠나는 마당에 일개 인턴이

그런 발표를 해도 되는 거냐 물었고,

그녀는 대답했다:
'우리 서비스를 사랑한 한 사용자가
직접 우리를 찾아와 인턴으로서 직원이 되었고,

몇 달간 우리와 함께 일을 했는데

당신이 바라보는 관점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는 귀가 얇은 관계로, 단숨에 설득됐다.

사실 나는 당시에 일을 하면서,

내가 서비스에 있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기능을 추후에 포트폴리오에 쓰고싶어

디자인 툴 연습도 할겸

홀로 프로토타입을 만들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아쉬웠던 업무 프로세스들과

교육적인 측면에서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기능들에

대해서 사수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녀는 흔쾌히 그 내용을 발표에 담아보라고 했다.

사수의 도움으로(?) 피피티 파일을 엎고 또 엎었다.

계약이 끝나고 1주일이 지나고 나서,

나는 발표를 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했다.

정말 많이 떨렸지만, 경영학과에서의 발표 경험을

최대한 쥐어짜내며 나는 성공적으로

발표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전사회의 시간이 끝나고나서

CEO님은 나를 따로 불러내셨고,

내게 학교를 한 학기 더 다니는 동안

이 곳에서 계속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주셨고,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 그리고 내가 발표했던 내용은

결국 올해의 전사 미션이 되었다.



그렇게 또 다른 4개월이 시작됐다.

나는 전에 했던 4개월간의 인턴쉽과는 달리,

곧 바로 진짜 실무에 투입됐다.

실제로 내가 기획하고 디자인한 것들이

사내 시스템이나 앱에 곧바로 반영되었고,

PM을 맡아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과 함께

협업하여 일정을 맞춰가며 프로젝트를 관리했다.

릴리즈가 된 이후에도 린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배운 점들을 빠르게 서비스에 적용시키거나,

인터뷰를 통해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고도화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내 8개월 간의 인턴기간 중,

마지막 4개월이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내가 가장 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하이라이트이지만,

자세한 부분에 관련해서는

NDA계약으로 인해

아쉽게도 글로 쓸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지난 8개월간,

정말 Fairy tale을 보는 것처럼

가파른 J커브를 그리며 빠르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일 하면서

느꼈던 많은 점들을 단 한 줄로 요약하면,

아니 단 한 단어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



모든 것은 '사람'에서 시작한다.

예전에 내 SNS에 Airbnb 관련된

글을 쓰면서도 느꼈던 부분인데,

훌륭한 '기업'이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인지,

아니면 훌륭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훌륭한 '기업'이 되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어떻게 훌륭한 사람들만

훌륭한 기업에 모일 수 있게 되는지는

딱히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일을 하다가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겨,

스스로 기획안을 만들고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겠지만

디자인 툴을 혼자 배워서

그럴싸한 프로토타입을 회사 시스템에 공유한다.


이를테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부서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밤새 홀로 야근을 해서 시스템에

기능 하나를 개발해버린 후,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훨씬 효율적이게 만들어 놓는다.


이를테면,

나와 비슷한 또래인 직원이

사수에게 개발을 더 배우기 위해

불금에 잡힌 술 약속을 고민없이 뒤로 미룬다.


뭐 대충 이런 일들. 이런 사람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는,

주로 이런 사람들이 있다.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보석같은 인재들을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설령 조직관리를 아예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뜨거운 열정과 능력을 가진 이들이

오너십을 가지고 매일 밤 자진해서

그들의 영혼을 갈아 넣는 곳이라면,

속도가 느리든 빠르든 간에

그 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8개월간, 나 역시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
기존의 채용절차를 무시하고 굴러들어 온

나 같은 인턴 나부랭이를, 외부인이 아닌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일하는 팀원으로서,

그리고 가족으로서 나를 믿어주고

챙겨주고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 글로나마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내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있어,

나는 이 곳에 평생 마음의 빚을 지게 됐다.

나중에 크게 되면 갚으면서 살아야지.


지난 학기 역시 학교에선 거의 풀 학점을 수강했고

회사에선 출퇴근 시간만

약 3시간이 되는 거리를 오가며
한주에 3일을 풀타임으로 근무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해가 바뀔때마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해로

갱신하자는 다짐을 지금까지

쭉 지켜오고 있는 중인데,

대학생으로서의 내 마지막 학기는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상반기가 되었다.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며,

정상에서 만나자는 그들과의 약속과 함께

나는 이제 그들과 잠시 작별을 고한다.


마무리는 올 A+ 받는것이 버킷리스트였던 이번 학기 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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