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멋의 척도가 미래의 내 거울이 된다.
아주 오랜만에 망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경기 주민으로서 주말에 빨간색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역 그 이상을 넘어선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러 간다.
6년 전 여름,
내가 딱 20대의 절반 정도 살았을 때,
계획 하나 없이 무작정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당시 총 55일 동안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배낭 하나로 약 12개국을 여행했는데,
여행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때 즈음,
나는 체코의 어느 민박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과 아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실 나는 스위스가 너무 가보고 싶은데,
몇 개월 전에 예약을 해두지 않으면 묵을 곳이 없고,
그나마 가능한 숙소들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대라
가슴이 아프다며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말했다.
"어. 같이 갈래요? 나도 가보고 싶었는데.
잘 곳 없으면 그냥 산속에서 텐트치고
며칠 지내지 뭐."
그 말을 들은 순간,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두드려 맞은 것 같았고,
내 심장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유럽 현지인들이 코트입고 다니던
그 추운 암스테르담에서도 숙소를 구하지 못해
반팔 반바지 입고 벌벌 떨며 길거리 노숙자 옆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던 나였다.
꽤나 신선했던 그의 사고방식에,
나는 "와 너무 좋은데요?!"를 외치고는
그날 아침을 함께 먹던 사람들 중
뜻이 맞는 서너 명을 모아 즉흥으로
'스위스 원정대'를 꾸렸다.
그 원정대에는 다부진 몸에
커다란 배낭을 등에 매고
항상 머리에 두건을 질끈 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6년 넘게 특전사 생활을 하다가
막 군생활을 정리하고는, 그 간 모은 돈으로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며 앞으로 자신이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던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6년이 지나 다시 그와 재회하게 된 나는,
어느새 처음 그를 만났었던
당시 그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눈가에 약간의 주름이 늘어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검게 그을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특전사 정신을 잊지 않기라도 한 듯,
다소 각진 그의 광대와 턱선은
그의 단단하고 청렴한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소식은 SNS를 통해서
간간히 전해 들었었는데, 당시 함께 여행하던
사진작가에게 감명을 받았는지,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사진작가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최근에는 일하던 스튜디오에서 나와서
사진작가로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근래 들어 "자신만의 것"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나였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서
과거 여행 얘기는 일절 꺼내지도 않은 채,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사업' 역시
하나의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키워나가는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사업의 핵심은
'고객의 재방문'과
'입소문을 통한 새로운 고객 유치'였다.
그는 이를 "꼬리"라고 불렀다.
사업을 시작하고 자리를 막 잡아가고 있는
1인 사진 촬영 작가로서는,
위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KPI가 되겠다 싶었다.
유저들의 재방문율(Retention rate)과
구매 전환이 일어난 고객들의 리뷰/추천등을 통해
추가 비용없이 신규 NRU를 얻어내는 것.
대충 타겟을 정하고
CPM 광고부터 때리는 것보다
초기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고,
꾸준히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
IT 서비스와 다른 것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결국 고객을 상대로 니즈를 충족하는
프로덕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사진 촬영'이라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크게 Scale-up 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형태의 사업이다.
왜냐하면 1인 사진작가가
판매하는 프로덕트의 가치는
생각해보면 다음 공식을 통해서만
창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Product's Value =
작가의 시간 X 작가가 제공하는 경험(혹은 브랜드)
결정적으로 "작가의 시간"이라는 요소는
하루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
(이에 관해 좀 더 깊게 글을 써 내려가다가,
글이 길어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러한 글을 쓰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며,
지인의 사업을 분석해서 낱낱이 뜯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하여 관련된 내용은 이만 줄인다.)
요즘 사람들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넷플릭스 보기"등의 콘텐츠 소비가
가장 많이 들려오는데, 외국에서는
이러한 행위들을 "타임 킬링"으로 바라보지,
"취미"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운동이 됐든 악기 연주가 댄스가 됐든,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하는 꾸준히 하는 이유는,
취미활동을 하는 본인의 모습이
스스로 꽤나 멋져 보이기 때문에,
본인의 '멋'에 취해서 취미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 같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도,
몸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괜히 미적인 욕심이 나는 법이고,
손에 물집이 잡혀가며 악기를 연습하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하고 싶은 욕구가 있겠으나,
언젠가 남 앞에서 연주를 보여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한 외부적 요인도
분명 한몫할 것이다.
취미에서 조차 사람들이
완벽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현재의 시간과 노력을 들임으로써
완벽이라는 것이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달성한 미래의 내가
"매우"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멋"은,
대부분 현재 내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소유하고 싶거나 동경하는 무언가를 지칭한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가 "멋있다"라고 생각할 때,
우리도 모르게 일상 속에서
이들의 말투나 행동들을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꽤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사람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6년 만에 만난
이 사진작가 형님에게 '멋'을 느꼈다.
본인이 꾸준히 좋아했던 것을 발견하고,
이를 커리어로서 개척해 나가며,
스스로 이름을 걸고 자신만의 온전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그 시작이 아무리 작더라도,
고객들에게 꾸준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노력들은 층층이 쌓여
자신만의 단단한 브랜드가 구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이 형님을 처음 만났던 5-6년 전의 나는
무엇이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떠올려보았다.
당시 나는, 군대를 막 전역하고 복학해서
IT 쪽에서 커리어를 갖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휴대폰 안의 앱 서비스로,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긴 불편함들을 해결하고,
이후에는 해당 서비스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편의 제공을 넘어,
사람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도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나는 비전공자임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IT쪽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었다.
실리콘 밸리로 1년간 인턴을 갔을 때,
당시 나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의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어낸 창업자들,
혹은 초기에 부족했던 서비스를
깊은 고민과 실험을 통해
더욱 훌륭하게 개선해 낸
프로덕트 매니저/디자이너들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5-6년이 빠르게 지나간 지금,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어느새 IT 기업에서
기획자 혹은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달고
몇 년째 그때 멋지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며
커리어를 펼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여전히 재밌고,
욕심과 열정을 갖고 임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산업과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온전히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프로덕트를
세상에 던지고,
차근차근 자신의 브랜드를 쌓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멋지게 다가오는 이유는,
현재의 내가 어떠한 결핍을
느끼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결핍"은 일반적으로
안 좋은 어감을 지니고 있는데,
나는 결핍이 결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핍은 현재의 나를 일깨워주는 신호이며,
사람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료이다.
우연히 약 5-6년 만에
내 멋의 척도가 바뀌었음을 깨달을 때,
나는 현재 내가 무엇에 대해 결핍을 느끼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고,
미래의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나아갈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지금의 내가
5년 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멋짐을 이뤄낸 나를 미래의 나를 보며
꽤나 만족스러워했으면 좋겠는데.
마냥 기대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부담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경험이 5년이나 부족한 주제에,
누가 누구를 보고 만족해하나 싶기도 하고.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 무엇이 멋지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나는 사람의 미래가 그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가설을 조심스레 세워본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멋짐의 척도'가 분명하다면,
인간은 무의식 중에서도
스스로 멋져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누구든,
가슴속에 저마다의 '멋의 기준'을
꼭 하나씩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Matthew McConaughey의 유명한
아카데미 수상소감 영상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