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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Apr 17. 2022

What is "Free Speech"?

기획자가 바라본 일론 머스크, 트위터, 커뮤니티 그리고 표현의 자유


서론: 아이언맨 vs 트위터


전 세계 1위 부자인 Elon Musk가 최근 조용히 트위터 지분의 9.2%를 사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온 세상은 들썩였다.

일론 머스크는 본인이 트위터의 Activist Investor가 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뉴스 보도가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그는 또 하나의 거대한 일을 터뜨렸다.
*Activist Investor: 지분을 매입해 실제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

바로 그가 보유한 트위터 지분 9.2% 외 나머지 모든 지분을 430억 달러(한화 약 52조 7000억)에 사들이겠다고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

21세기 "한다면 하는 남자" 1위



이러한 일런의 행보에 대해서 모든 미디어가 주목하고 있는데, 현재 진행형인 이 사건의 배경은 개인적으로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흥미롭다.

1. 트위터가 추구하는 '이상'
서비스가 처음 2007년에 출시된 이후부터, 트위터는 약 15년이란 시간동안 SNS 뿐만 아니라 "현시점,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일종의 미디어 플랫폼 역할을 함께 수행해왔다.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대형 미디어 업체들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진실"과 "정보"를 확산시키는 힘을 지닌 플랫폼으로 증명되어 왔으며, 그들은 처음부터 모두가 평등하게 발언을 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을 추구해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표현과 발언의 자유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인데,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이 Declaration of Indepence에 "Freedom of Speech"를 인간의 기본 인권이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트위터의 Mission Statement 또한 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모두가 아이디어와 정보를 빠르고 장벽없이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2. 트위터가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

2021년 1월, 미국의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이 트위터에서 영구 정지를 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일반 사람들에게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이 영구 정지되기 전, 버락 오바마의 아내인 미쉘 오바마는 "실리콘 밸리의 IT 대기업들이 트럼프를 영구적으로 쫓아내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본인의 생각을 빠르고, 자유롭게, 장벽없이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이념을 강조해왔던 트위터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의 발언권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Freedom of Speech"를 가장 중요한 인권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그리고 그 이념을 가장 잘 반영하여 서비스로 제공하는 세계적인 IT 기업이, 이러한 독단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과 그것에 열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은 당시 내게 꽤나 놀라운 사건이었다(물론 트럼프 지지와 상관없이 이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3. "완벽한 표현의 자유"를 믿는 현시대 최고의 혁신가

과거 트위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였다면, 그가 추방된 이후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도 일런 머스크일 것이다. 일런 머스크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스타링크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러시아의 통신 공격에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해준 바 있는데, 몇몇 정부에서 러시아의 뉴스 소스를 막으라는 제안이 들어왔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알렸다.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우크라이나가 "선"이고, 이를 공격하는 러시아가 "악"이라는 관점에 대해서 전 세계가 암묵적인 동의를 하더라도, 여전히 "악"이라고 규정된 한쪽의 발언권을 막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한, 그의 트위터 지분 인수 사실이 밝혀지기 전, 일런 머스크는 트위터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인 "Free speech"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지 투표를 올렸고, 투표에 참여한 200만명 중 70%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을 했다.



본론: 'Free Speech'에 대하여


1.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다행히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 제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적어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는 이상, 특정 이슈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갑자기 정부에 의해 납치를 당한다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하지 않는다. 누구나 본인의 견해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법적으로 보장받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 중 하나이다.



2. '표현의 자유'는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법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분명하게 보장받는다. 누구나 본인의 생각과 이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결과 및 책임 또한 개인이 온전히 지게 되어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자유는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논쟁거리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의 발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강력한 확산력을 지니게 되었다. 클릭 한 번으로 개인의 생각이 수천, 수억만 명에게 빛의 속도로 닿을 수 있게 된 반면, 또 다른 개인은 익명성에 숨어 누군가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해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나는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토양이 매우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이를 위한 법규나 제도, 문화, 사람들의 인식 등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서비스 기획자로서 많은 사용자들에게 닿는 콘텐츠들의 추천 로직을 기획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종종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서비스들을 사용할 때 무의식적으로 내 피드에 노출되는 컨텐츠들이 어떤 로직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일지 나름대로 추측해보고는 한다. 이들은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어떤 목적을 갖고 보여주고 싶을까?

눈 부시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전 세계적인 IT 기업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Democratization" 즉, 민주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성장했다.
- 구글은 "정보"를 민주화시켰고,
- 페이스북은 "관계"를 민주화시켰으며,
- 트위터는 "발언"을 민주화시켰고,
- 유튜브는 "콘텐츠 생산 및 소비"를 민주화시켰고,
- 아마존은 "물류 시스템"을 민주화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들은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덩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는데, 대기업들이 그러하듯 서비스의 사이즈가 커지면 자연스레 서비스가 삐걱이지 않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중앙 집권화된 형식의 Governance(통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통제는 결국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장의 이유였던 '민주화'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질을 보이게 되는데, 서비스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천차만별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코드를 열어보지 않는 이상 이를 인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찌 됐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의 피드에 노출되는 콘텐츠들 또한 "누군가가 정의한 규칙"에 의해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며, 사람들은 본인이 인터넷 상에서 보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해보려는 습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특정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거나,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하다 못해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과 잠깐 대화를 하기만 해도, 현재 우리는 심각한 필터 버블에 갇혀있으며, 각자의 확증편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새 주변들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은:
- 연령층에 따라
- 성별에 따라
- 지역에 따라
- 정치 성향에 따라
- 소득 구간에 따라
-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지에 따라
- 크고 작은 이슈에 대한 견해에 따라
- etc.
마치 원자 폭탄이 폭발하는 원리처럼 끊임없이 연쇄적으로 잘게 갈라지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혐오가 짙어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3. 현재 '표현의 자유'와 그 토양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입을 열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거나
- 모호한 이유를 만들어내서 누군가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시키거나
-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낸 사람을 주변을 선동하여 집단 따돌림시키거나

위에 예시로 든 3가지 방식들의 공통점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건전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아래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 1.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는 태도
- 2. 나와 다른 입장에 선 사람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 3. 본인의 의견을 표명할 때 나와 다른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 것
- 4. 반대되는 견해에 대해서 즉시 개인적인 모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하지만 불행히도, 2명 이상의 인간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대화를 할 때, 구성원 모두가 위 4가지 요소를 두루 갖췄을 확률은 대부분의 경우 0에 수렴한다. 우리는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종교'와 '정치' 얘기는 밖에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우는 것일 것이다.


사회적 문화 자체가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서 Openly 대화하도록 장려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프라인이 아닌 인터넷 세상에서 이러한 대화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은, 실제 세상과는 다르게, 온라인 세상은 우리가 보고싶은 것만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우리 주변 세상을 형성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익명성 뒤에 숨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고, 울타리 밖의 다른 세상과는 멀어져 눈과 귀를 멀게 하며, 구성원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만들어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렸다"라는 Toxic trait을 발전시키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이 장기화되면,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까내리기 위해 사실임이 증명되지 않은 유언비어들이 내부에 퍼지기 시작하고, 꽤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스스로 박탈시킨 사람들은, 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도록 하는 일종의 "면역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정말로 무서운 점은, 같은 무리에서도 맹목적으로 방향성을 따르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을 던지는 용기있는 소수가 나타날 때,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무리에서 목소리가 큰 몇몇의 "같은 편"들에게 뭇매를 맞게 된다는 점이다. 비슷한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으나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더 많은 사람들은, 동료가 뭇매를 맞는 것을 보며 목소리가 큰 몇몇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이라고 받아들이게 되고, 개인의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되뇌이며 더더욱 본인의 의견은 입 밖으로 내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한쪽 의견에 과도하게 치우쳐진 집단이 진정한 의미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이 되는 과정이다.



4. '정의'라는 가면 뒤에 숨은 집단 폭력의 위험성
 

Free Speech는 역설적으로, Free Speech를 "남용"하는 이들에 의해 침해를 받는다.
미국에서는 최근 "Cancel Culture" 혹은 "Deplatforming"이 하나의 커다란 소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여기서 Cancel Culture은, 유명인 혹은 영향력 있는 사람의 과거 행위나 발언을 문제삼아 앞으로의 경력을 완전히 망쳐버리려 하는 온라인 상의 "왕따" 행위를 뜻하고, Deplatforming은 특정인들이 아예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어떠한 플랫폼에서 완전히 "추방" 시켜버리는 것을 뜻한다.
 
Cancel Culture는 보통 온라인 상에서 "환경 문제, 젠더 갈등, 소수 인권"등 다소 '정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민감한 주제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많이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약자들을 위해 맞서 싸우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Movement가 실제로 집단으로서의 강력한 힘을 증명하면서, 갈수록 끊임없이 다음 희생자를 찾는 것에 목마른 일종의 '인민재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환경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점진적 잘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최근 몇 년간 무조건적인 탈원전, 탄소배출 0 등을 외쳤던 몇몇 환경단체들과 이를 강행한 정부들은 결과적으로 미친듯이 치솟는 물가의 인플레이션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에 상당 부분 일조하게 됐다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환경 보호를 위해 자체 에너지 생산량을 꾸준히 줄여나가며, 러시아에서의 에너지 수입을 늘려왔던 유럽 연합은, 최근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매우 심각한 Energy Crisis 위기에 봉착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수준으로 피해를 볼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이 시점에, 하늘에 주먹을 치켜들며 환경 보호 팻말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서 사라졌다.

환경보호가 시급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만약 환경 보호를 위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끊어내자는 방향에 누군가가 "잠시만요"라며 목소리를 내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누군가에게 "당장의 이익에 미친 자본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말할 기회를 주며 다른 견해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함께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맺으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부터, 최근에 가깝게 지내게  많은 지인들과 대화를  때도,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슈를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는 사실이 꽤나 놀라웠다. 또한 아무리 사이가 가깝더라도 특정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견해가 다르면, 상대방이 '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떠한 배경이나 사건들이  사람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무작정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서슴없이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들을 보며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도대체 무엇이, 가까웠던 사람들의 관계를  순간에 끊어버리게  정도로, 이들을 분노하게 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미국 속담 중 이런 말이 있다.

"You never really understand a person, until you walk in his/her shoes."
"다른 이의 신발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결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내 맘대로 의역)


당연하지만, 사람들마다 의견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나누고 이해하며, 집단 지성을 활용해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면서, 모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반드시 필요한데, (물론 이는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따라올 수 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갈수록 대화를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정말 필요한 대화조차도 제 때 하지 못하도록 그 기회를 스스로 박탈시키고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Free Speech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Free Speech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의견"과 "내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에는 무조건 이빨을 드러내며 "악"의 프레임을 씌우려는 식의 끔찍한 사고방식은 필요한 대화의 기회들을 모두 차단하며, 결과적으로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잠재적으로 빼앗는다.


한국에서의 Free Speech가,
더욱 성숙한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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