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가르텐 산책
낮 최고기온 24도 맑음. 며칠간 계속 비가 내린 뒤 오랜만에 쾌적한 하루가 찾아왔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티어가르텐(Tiergarten)으로 산책을 갔다. 티어가르텐은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숲으로, “베를린의 폐” 라고도 불린다. 이곳을 걷다 보면 일상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고, 초록 나무들 사이에서 내 속에 맑은 공기를 채워넣을 수 있다. 그래서 시내에 볼 일이 있을 때면, 겸사 겸사 이곳을 걷곤 한다.
공원에는 숲만 있는게 아니다. 슈프레 강도 흐른다. 숲도 푸르고, 강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나처럼 걷기도 하고, 또는 운동복을 차려입고 뛰기도 한다. 벤치에는 나이 든 부부가 앉아 쉬고 있고, 잔디에는 젊은 여자가 편하게 앉아 책을 읽는다. 청둥오리는 강에서 헤엄만 치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가족 단위로 땅에 올라와 쉬기도 한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귀엽다.
적당히 숲길을 걷고 난 후, 우리는 카페 암 노이엔제(Café am neuen See)에 갔다. 숲 길 끝 지점에 인공으로 조성된 작은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 면해있는 카페 야외 테라스엔 이미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다. 점심은 이미 먹었기에 우리는 음료만 주문하겠다고 직원에게 말하자, 손님이 너무 많아 음료만 주문할 경우엔 야외 비어가르텐(Biergarten)을 이용해달라고 했다. 카페와 비어카르텐의 차이가 크지는 않다. 서빙을 받느냐, 셀프서비스냐 그리고 의자에 등받이가 있느냐 없느냐 정도의 차이. 오히려 비어가르텐이 호수에 가까워 더 운치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음료 주문대에서 아이스 말차라떼 두 잔을 시켜, 호수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솔솔 부는 호수바람도 맞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며 시원한 음료를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햇살이 너무 강해서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나무 그늘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원래 앉았던 자리에는 곧 다른 독일팀이 앉았다. 직사광선에도 꿈쩍 않는 독일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우리와는 다른 신체적, 문화적 이유가 있겠지.
카페 테라스와 비어카르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보트 위에서 노를 저으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사람들. 한 폭의 그림처럼 여유로운 장면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파리 중산층이 야외에서 소소하게 여가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그렸다.
나는 그 중에 르노아르와 모네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제목은 몰라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르노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나, 모네와 르누아르가 동시에 그린 라 그르누예르(La Grenouillère) 같은 그림들이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유사한 정서가 느껴졌다.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차를 두고도,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이미지는 비슷하구나 싶었다. 인상주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여유로움과 행복감을 담은 그림을 보면서, 우리도 역시 여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오늘도 소소하게 행복한 하루였다.